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밤이 Jul 05. 2023

라디오의 공로

정지우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둘째를 낳고 한 달쯤 지나 밀레니엄을 맞았다. 지구가 멸망하리란 각종 음모론 예언을 물 먹이며 들어선 2000년. 세상은 환희와 희망으로 가득지만 그 해 나는 몹시 우울했다.  년쯤 지나 털어놨을 때 친구는 산후우울증이라 진단했내 생각은 다. 다락과 나락을 오가던 슬픔과 혼돈의 정체가 모두 보이지 않는 몸속 호르몬 때문이라기엔 눈에 보이는 증거들이 선명했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 후 이듬해 결혼했다. 1 년 뒤 큰 애를 낳고 네 살 터울 둘째를 가졌다. 들 하나 딸 하나 둔 가정의 모습은 평범했다. 엄마와 아내란 이름으로 얻은 안정감과 행복이 없었다면 거짓일 것이다. 밖에서 봤을 때 단란한 모습에 균열을 일으키는 내 우울은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다.

남편과 아이 둘을 가지게 된 댓가로 이름을 잃었다. 꾸밀수록 집은 성이 되고 나는 스스로 만든 성에 갇혔다 . 병리학적으로 산후우울증이라 진단받았다면 쉬웠을까. 그때 나는 내 우울을 설명할 언어를 갖지 못했다.


라디오를 켠 건 어른의 말이 그리서였. 루종일  아이들을 돌보며  동화책을 다시 읽고 같은 동요를 수십 번 르다 보면 광활한 뇌 속은 한 개의 만 활성화되 나머지는 석화 기분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잊던 라디오에 손 갔. 노래를 듣고 사연을 들었다. 라디오는 세상을 구경하는 창이 됐다. 저런 일도 있구나. 이런 사람도 있. 나도 편지를 보내 볼.


키우 밥 하는 일상이 글이 될  몰랐는데 얘기라곤 그뿐이라 그렇게 적어 보냈다. 기대 못했는데 라디오에 편지가 소개됐을 때 쓰가 주는 해방감과 읽히는 환희를 동시에 경험했다. 마 그 쓰기에 반했던 것 같다. 갈구하듯 빠져들어 쓰고 또 썼다. 컴퓨터도 핸드폰도 없던 시절, 연애편지인 양 편지지에 손글씨 보냈다. 늦은 밤 믹스커피에 생라면 부셔먹으며 다. 사연이 라디오에 나오면 초라한 삶에 별 하나 매단듯 설렜다. 환각제처럼 하루가 황홀했다.    


펜이 쟁기가 되어 속살헤집었다. 수록 설움이 드러났다. 무에게도 할 수 없었던 얘기를 모두에게 다. 를 사랑하지만 가끔은 탈출하고 싶고백 편이 있는데 왜 인생이 '혼자 먹는 저녁밥'  물었다. 답을 듣고 싶어 쓴 것은 아니었다. 해받더라도 군가 들어주길 바랐을 것이다. 최소한 한 사람은 공감해주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러고 나면 뭔가 응어리진 게 풀어지는 듯했다.


글은 이상하다. 혼자 쓰고 혼자 울었 떤 친구보다 다정하게 나를 위로. 변두리로 버려진 나를 데려와 너는 소중하다고 말해 주었다. 받은 복 셀 수 있었다. 이전보다 감사할 일이 많아졌다. 누가 흔들어 깨운 것도 아닌데 눈이 떠지고  여 일상 윤기가 흘렀다.  나서야 알았. '말해서는 안된다고 믿었던 진실이 사실은 말해져야만 했던 것이었음을'.(165쪽)


큰 아이가 7살 됐을 때 취업할 수 있던 건 라디오의 공로가 컸다. 쓴다는 행위는 인생의 서술권을 임받는 일이 앞으로의 인생도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됐다.

'덜컹덜컹 세월이 흘렀다.' 오랫동안 쓰지 않았다. 바빴고 세상에 군분투했고 엄마가 아팠다. 기다리는 사람이 나뿐인 글은 쓰지 않아도 살 만했다. 엄마가 죽고 1년이 지을 때 명치에 통증을 느꼈다. 일 년이 지나 다시 엄마가 떠난 4월이 을 땐 전보다 더 아팠다. 리석게 그제야 통증의 의미를 알아챘다.


슬픔이 물리적으로 작용다. 명치를 눌렀다. 엄마는 혈당수치를 재기 위해 아침마다 바늘로 손가락을 찔렀다. 한 방울의 피. 엄마의 핏방울이 가슴에 모여 내려가질 않았다. 야 했다. 손가락 따듯 가슴 따끔거리는 글을 쓰고 나면 울렁이던 속이 가라앉았다. 내가 엄마를 우려먹어 글을 쓰는 건지 엄마가 나를 울려 쓰게 만드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숨을 쉬려면 살려면 글로 가슴을 따야 했다.


글을 쓰는 이유는 여럿일 것이다. 나는 혼자 그러고 만다. 쓰는 사람은 외롭다고. 아프다고. 그럴 이유 하나 없어 보이는 사람도 외롭지 않면 쓸 리 없다고 아프니까 쓴다고  맘대로 다. 는 사람 같아 고 있는 이를 보면 두 손 부여잡고 쓰라고 위로한다. 눈물로 퉁퉁 부어오른 흉터가 써야 할 증거 얘기한다. 나는 울음이 터지는 지점에 연대한다. 


'열 줄만 쓰고 그만두려 했던 시를 평생 쓰는 이유를 묻지 말라'던 시인의 문장에 감히 기댄다. 밤마다 한 장이라도 더 읽고 쓰기 위해 애쓰던 오래전 나를 떠올린다. 그렇게 밤 사이 비축한 안간힘으로 하루를 산 시절이 있었다. 으로도 그럴 것이다. 열 번만 보내려던 편지를 매일  열 번만 쓰고 그만두려 엄마 얘기를 평생 쓰리라 예감다. 


훈민정음 스물네 글자 이리 꿰고 저리 맞춰 매번 새로운 글을 만드는 일은 어렵다. 잘 쓴 글 보면 부럽고 좋은 글 읽으면 영혼이 기죽지만 쓴다. 누구도 대신 정리해 줄 수 없는 삶의 페이지를 기록한다. 등뼈처럼 지고 가는 기억을 더듬고 '시간을 회수하여 의미 있는 무언가로 빚어줄 또 다른 나'(43쪽)를 기대한다.








작가의 이전글 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