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의 공로
정지우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둘째를 낳고 한 달쯤 지나 밀레니엄을 맞았다. 지구가 멸망하리란 각종 음모론과 예언을 물 먹이며 들어선 2000년. 세상은 환희와 희망으로 가득찼지만 그 해 나는 몹시 우울했다. 십 년쯤 지나 털어놨을 때 친구는 산후우울증이라 진단했고 내 생각은 달랐다. 다락과 나락을 오가던 슬픔과 혼돈의 정체가 모두 보이지 않는 몸속 호르몬 때문이라기엔 눈에 보이는 증거들이 선명했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 후 이듬해 결혼했다. 1 년 뒤 큰 애를 낳고 네 살 터울 둘째를 가졌다. 아들 하나 딸 하나 둔 가정의 모습은 평범했다. 엄마와 아내란 이름으로 얻은 안정감과 행복이 없었다면 거짓일 것이다. 밖에서 봤을 때 단란한 모습에 균열을 일으키는 내 우울은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다.
남편과 아이 둘을 가지게 된 댓가로 이름을 잃었다. 꾸밀수록 집은 성이 되고 나는 스스로 만든 성에 갇혔다 . 병리학적으로 산후우울증이라 진단받았다면 쉬웠을까. 그때 나는 내 우울을 설명할 언어를 갖지 못했다.
라디오를 켠 건 어른의 말이 그리워서였다. 하루종일 살림하고 아이들을 돌보며 읽은 동화책을 다시 읽고 같은 동요를 수십 번 부르다 보면 광활한 뇌 속은 한 개의 점만 활성화되고 나머지는 석화된 기분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잊었던 라디오에 손이 갔다. 노래를 듣고 사연을 들었다. 라디오는 세상을 구경하는 창이 됐다. 저런 일도 있구나. 이런 사람도 있네. 나도 편지를 보내 볼까.
애들 키우고 밥 하는 일상이 글이 될 줄 몰랐는데 할 얘기라곤 그뿐이라 그렇게 적어 보냈다. 기대 못했는데 라디오에 편지가 소개됐을 때 쓰기가 주는 해방감과 읽히는 환희를 동시에 경험했다. 아마 그때 쓰기에 반했던 것 같다. 갈구하듯 빠져들어 쓰고 또 썼다. 컴퓨터도 핸드폰도 없던 시절, 연애편지인 양 편지지에 손글씨로 보냈다. 늦은 밤 믹스커피에 생라면 부셔먹으며 썼다. 사연이 라디오에 나오면 초라한 삶에 별 하나 매단듯 설렜다. 환각제처럼 하루가 황홀했다.
펜이 쟁기가 되어 속살을 헤집었다. 쓸수록 설움이 드러났다. 아무에게도 할 수 없었던 얘기를 모두에게 말했다. 아이를 사랑하지만 가끔은 탈출하고 싶다 고백하고 남편이 있는데 왜 인생이 '혼자 먹는 저녁밥' 같나 물었다. 답을 듣고 싶어 쓴 것은 아니었다. 오해받더라도 누군가 들어주길 바랐을 것이다. 최소한 한 사람은 공감해주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러고 나면 뭔가 응어리진 게 풀어지는 듯했다.
글은 이상하다. 혼자 쓰고 혼자 울었는데 어떤 친구보다 다정하게 나를 위로했다. 변두리로 버려진 나를 데려와 너는 소중하다고 말해 주었다. 쓰면서 받은 복을 셀 수 있었다. 이전보다 감사할 일이 많아졌다. 누가 흔들어 깨운 것도 아닌데 눈이 떠지고 지겹게 여기던 일상에 윤기가 흘렀다. 쓰고 나서야 알았다. '말해서는 안된다고 믿었던 진실이 사실은 말해져야만 했던 것이었음을'.(165쪽)
큰 아이가 7살 됐을 때 취업할 수 있던 건 라디오의 공로가 컸다. 쓴다는 행위는 인생의 서술권을 위임받는 일이고 앞으로의 인생도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됐다.
'덜컹덜컹 세월이 흘렀다.' 오랫동안 쓰지 않았다. 바빴고 세상에 고군분투했고 엄마가 아팠다. 기다리는 사람이 나뿐인 글은 쓰지 않아도 살 만했다. 엄마가 죽고 1년이 지났을 때 명치에 통증을 느꼈다. 일 년이 지나 다시 엄마가 떠난 4월이 왔을 땐 전보다 더 많이 아팠다. 어리석게 그제야 통증의 의미를 알아챘다.
슬픔이 물리적으로 작용했다. 상실이 명치를 눌렀다. 엄마는 혈당수치를 재기 위해 아침마다 바늘로 손가락을 찔렀다. 한 방울의 피. 엄마의 핏방울이 가슴에 모여 내려가질 않았다. 써야 했다. 손가락 따듯 가슴 따끔거리는 글을 쓰고 나면 울렁이던 속이 가라앉았다. 내가 엄마를 우려먹어 글을 쓰는 건지 엄마가 나를 울려 쓰게 만드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숨을 쉬려면 살려면 글로 가슴을 따야 했다.
글을 쓰는 이유는 여럿일 것이다. 나는 혼자 그러고 만다. 쓰는 사람은 외롭다고. 아프다고. 그럴 이유 하나 없어 보이는 사람도 외롭지 않다면 쓸 리 없다고 아프니까 쓴다고 내 맘대로 그런다. 우는 사람은 나같아 울고 있는 이를 보면 두 손 부여잡고 쓰라고 위로한다. 눈물로 퉁퉁 부어오른 흉터가 써야 할 증거라고 얘기한다. 나는 울음이 터지는 지점에서 연대한다.
'열 줄만 쓰고 그만두려 했던 시를 평생 쓰는 이유를 묻지 말라'던 시인의 문장에 감히 기댄다. 밤마다 한 장이라도 더 읽고 쓰기 위해 애쓰던 오래전 나를 떠올린다. 그렇게 밤 사이 비축한 안간힘으로 하루를 산 시절이 있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열 번만 보내려던 편지를 매일 썼듯 열 번만 쓰고 그만두려 한 엄마 얘기를 평생 쓰리라 예감한다.
훈민정음 스물네 글자 이리 꿰고 저리 맞춰 매번 새로운 글을 만드는 일은 어렵다. 잘 쓴 글 보면 부럽고 좋은 글 읽으면 영혼이 기죽지만 그래도 쓴다. 누구도 대신 정리해 줄 수 없는 삶의 페이지를 기록한다. 등뼈처럼 지고 가는 기억을 더듬고 '시간을 회수하여 의미 있는 무언가로 빚어줄 또 다른 나'(43쪽)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