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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이 Jul 02. 2023

일기

6월 25일~7월 1일





6.25


초중고 시절엔 6월 25일에 행사가 많았다. 포스터 그리기, 표어 만들기, 글짓기, 웅변대회 등등. 그림도 글도 잘하지 못해 숙제 제출에만 의의를 가졌는데 5학년 때 어쩌다 웅변대회에 나가게 됐다. 놈의 장난꾸러기 짝꿍 때문에. 


몇 날며칠 머리 굴 웅변대회 원고를 썼는데 그게 내 인생 첫 글이려. 경력이 이력이 되어 중고 시절 모두 웅변대회에 나가는 참사가 발생했다. 원고를 다시 쓸 엄두는 안 고 같은 원고 토시만 바꿔 재사용했다. 우려 먹은 덕분에 글이 기억난다.






6.26


부사에 대해 생각한다. 쓰지 말아야지 노력한다. 써 놓은 문장을 읽으며 부사를 지운다. 부사의 과장이 문장을 가볍게 만드는데 동의하지만 말하는 버릇 때문인지 고치기 어렵다.


예를 들면, 이거 중요해?라고 누가 물으면, 어, 아주, 매우, 진짜, 엄청, 억수로, 대단히, 굉장히, 미친 듯이, 어마무시하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부사의 늪이다.






6.27


시험 치고 연락하랬더니 전화하자마자 대뜸 쌤 사랑해요 한다. 그래 그러니까 니 말즉은, 시험을 망쳤단 말이지. 






6.28


53세였다 52세가 됐다. 6개월 더 살았는데 나이는 어려졌다. 그렇다고 젊어진 것은 아니다. 이에 붙이는 이름에 대해 생각했다.






6.29


냉장고가 고장 났다.  일요일에 발견했는데 화요일 출장 점검 수요일 냉매 교체하고도 얼음이 제대로 얼지 않는다. 이삼일 더 지켜보고 연락을 달라는데 아무래도 다시 손 봐야 할 것 같다


한 여름 일주일 가까이 냉장고가 고장 나니 강제 냉장고 파먹기를 할 수밖에 없다. 녹은 생선과 고기를 꺼내 이리저리 요리해 먹었다.


덕분에 냉동실이 텅 비었다. 냉장고가 고장 나서 우짜노 걱정했는데 왠 걸, 싹 비우니 속이 시원하고 기분까지 좋아다.


아, 냉장고를 비우려면 냉장고가 고장 나면 되는구나. 






6.30


장군이와 두 번째 여름을 보낸다. 털 보온이 얇은 패딩 정도라던데 한 여름 패딩입고 지내려면 얼마나 더울까 안쓰럽다. 생각 같아선 바짝 밀고 싶은 미용실에선 자외선에 피부 증이 생길 수 있고 털이 없으면 스트레스를 받을  있다며 권하지 않는다. 결국 1센티미터로 잘랐다.


미용 맡기고 세 시간 가까이 기다렸다. 어제 집에 온 딸이 동무해 주었다.






7.1


그간 남해는 번번이 들르지 못했다. 7월 남해 여행은 소원풀이 차 간 것인데 아들딸장군이 싣고 간다는 사실 말별 감흥이 없었다.


바다 흔한 부산사람이라 바다 봐도 그려려니, 유명하다는 바지락 칼국수 먹고도 시큰둥했는데 숙소 가까이에 갯벌과 죽방이 다. 풍경이 그리 되고서야 아, 남해의 서정이 이런 것인가 싶다.


길거리 옥수수를 오천 원에 사 먹었다. 참외를 거적에 쏟아부어 팔길래 만 원에 큰 봉다리로 하나 담아왔다. 가게 없는 횟집에서 참돔 1.5 킬로그램을 오만 원에 다.


삼동초등학교가 이뻤다. 붙어있는 꽃내 중학교는 이름이 다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붙어 있으면 졸업해도 졸업한 기분이 나지 않겠다.


이성계가 기도를 올렸다는 금산 보리암에 가고 싶었는데 장군이와 갈 수 없어 그만두었다. 리고 매우 더웠다.







두 달만에 온 누나를 보고 좋아서 몇 달만에 비숑타임이 온 장군이. 아빠가 겨우 잡았다.



냉동실이 텅 비었다. 한 여름 냉장고 고장난 보람을 느꼈다.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채워 보리라.




장군이 수박 버젼 코쌈. 아직 피부알러지가 완전히 잡히지 않았다. 귀는 다행히 깨끗. 덥지 장군아. 7월 건강하게 보내자.



오십 넘어도 저런 데만 보면 꼭 올라가 걷는 남자와 다리 짧아도 꼭 걸쳐보는  강아지의 아침산책




생애 첫 수영. 체력이 저질이라 그렇지 재밌어했다. 개헤엄도 제법 잘 하고 꼬리 젓는게 제일 신기했음. 노인지 돛인지.




늦은 오후까지 갯벌이 드러나 있는 바닷가. 멀리 죽방이 보인다.




저녁이 되니 갯벌이 사라졌다. 아침에 찍은 사진인데 풍경이 수묵화같아 고즈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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