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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이 Jun 08. 2023

사이비 레시피





엄마의 요리에는 비 전문가만이 낼 수 있는 고수의 맛이 있었다. 엄마는 자신의 음식 앞에 '사이비'를 붙 불렀다. '사이비 오므라이스' '사이비 잡채' '사이비 닭볶음탕' 엄마가 붙인 '사이비'란 말에는 정통요리의 절차를 지지 않은 멋쩍은 겸허함과 그렇지만 맛은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이 묘하게 뒤엉켜 있었다.


장인은 연장 탓을 안 한다는데 엄마는 재료 탓을 안 했다. 없으면 없는 데로 있으면 있는 데로 요리를 완성했다. 부엌에서 엄마는 빨랐다. 일정한 모양 없 재료를 동강내고 한 움큼씩 집거나 도마째 들어 냄비에 집어넣었다. 바가지로 아무렇게나 물을 붓고 밥 숟가락으로 혹은 통째 기울여 계량 따위 없이 툭툭 양념을 더했다.


엄마는 음식을 내어놓고 맛이 어떠냐 물으며 "나는 간도 안 봐."라는 말 자주 했다. 간도 안 보고 하는 엄마 음식은 맛있었다. 어떤 날엔 런 엄마가 한석봉 어머니보다 대단해 보였지만 복에 겨운 식들이 그렇듯 꾸 받아 특별한 줄 몰랐다. 밥상 하나 차리는데 얼마나 손이 많이 가 맛있기는 왜 그리 어려운 건지 결혼하고 내 손으로 밥을 해보고서야 알았다.

엄마가 사이비 요리 교주가 된 건 태어난 순서 때문이었다. 마는 딸 일곱 아들 둘, 아홉 남매 중 다섯 째였다. '태어나도 꼭 가운데 번호'라 어려서부터 일복터졌다. 위로 언니 넷은 이미 커 시집갔거나 돈 벌러 다니느라 바빴고 아래 동생 넷은 아직 어다. '이미'와 '아직' 사이에 낀 다섯째 엄마만 죽어났다. 포대기 둘러 동생을 업어 키우고 우물 가서 물을 길어 와 살림을 했다. 할머니가 시장 장사 마치고 오는 시간에 맞춰 저녁을 짓고 틈틈이 개울가에서 빨래도 했다.


엄마는 매일 하루에 물을 스무 통 길었다. 공동 우물에서 물통에 물을 담아 집으로 가져왔다. 쪼마난 여자애라 양쪽으로 어깨 지어 나르지 못하고 '빠께쓰'라 불리는 통을 머리에 얹어 랐다. 스무 통을 채워야 동무랑 놀 수 있었다. 엄마는 한 번에 두 통씩 지면 빨리 끝날텐데 싶어 어깨지기 물통이 부러웠다고 한다조금이라도 빨리 끝내려 물통을 머리에 이고 계단 있는 오르막 길을 뛰듯이 날아다녔다.


"내가 왜 키가 짝은 줄 아나. 하도 물통을 지어서 그래. 무거운 물통이 허구한 날 머리 위에 있는데 키가 어떻게 크겠어."


"그럼 외할머니는 왜 작은데."


"할머니도 그렀겠지. 옛날엔 물 다 어다 먹었어."


"그럼 나는 왜 작아."



엄마의 무김치는 이모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다. 같은 무로 담그는데 '왜 네가 하면 맛이 더 좋냐'며 비법을 가르쳐달라 했다. 입덧할 때 엄마의 김치가 먹고 싶었다. 적당히 새콤하게 익은 무를 와삭 베어 물면 수시로 뒤집히는 속이 가라앉을 거 같았다. 부산에서 서울로 무김치가 날아왔삼시세끼 김치만 먹으니 엄마가 아무리 부지런을 떨어도 받아먹는 입은 감질났다. 이참에 배울까 싶어 전화로 물었다. 


"무김치는 어떻게 해?"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 절여. 그리고 무쳐."  


나는 그 시간 부로 김치 담그기를 포기했다. '절여'와 '무쳐'가 얼마나 우주적 행위인지 깨달았다.


엄마의 사이비 레시피엔 박멸되지 않은 시간이 숨겨져 있다. 손맛이란 손이 거쳐온 노동의 사리 같은 것. 나는 엄마의 시간이 담긴 요리를 한 그릇 한 냄비 먹으며 한 살  살 나이 먹었다. 내 안에는 엄마 음식에 담긴 엄마의 사리가 들어 있다.


언젠가 배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엄마의 사이비 레시피. 언제까지나 먹을 줄 알았던 음식. 엄마와 나 사이에 남은 시간이 무한할 줄만 알았던 어리석음을 탓하며 엄마가 해 주는 요리가 먹고 싶 흉내 내 본다. 탁탁 툭툭 휘적휘적. 나를 보며 엄마가 '내가 그리 하드나.' 하며 웃는 것 같다. '너도 나 닮아 사이비네.' 놀리는 것 같다. 애써도 낼 수 없는 맛을 뒤로하며 엄마를 닮았다는 말 그저 좋아 눈물이 난다. 




열 살. 엄마와 무를 다듬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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