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요리에는 비 전문가만이 낼 수 있는 고수의 맛이 있었다. 엄마는 자신의 음식 앞에 '사이비'를 붙여 불렀다. '사이비 오므라이스''사이비 잡채''사이비 닭볶음탕' 엄마가 붙인'사이비'란 말에는정통요리의 절차를 지키지 않은 멋쩍은 겸허함과그렇지만 맛은 뒤지지 않는다는자부심이 묘하게 뒤엉켜 있었다.
장인은 연장 탓을 안 한다는데 엄마는 재료 탓을 안 했다. 없으면 없는 데로 있으면 있는 데로 요리를 완성했다. 부엌에서 엄마는 빨랐다. 일정한 모양 없이 재료를 동강내고 한 움큼씩 집거나 도마째 들어 냄비에 집어넣었다. 바가지로 아무렇게나 물을 붓고 밥 숟가락으로 혹은 통째 기울여 계량 따위 없이 툭툭 양념을 더했다.
엄마는 음식을 내어놓고 맛이 어떠냐 물으며 "나는 간도 안 봐."라는 말을 자주 했다. 간도 안 보고 하는 엄마 음식은 항상 맛있었다. 어떤 날엔 그런 엄마가 한석봉 어머니보다 대단해 보였지만복에 겨운 자식들이 그렇듯 자꾸 받아특별한 줄 몰랐다. 밥상 하나 차리는데 얼마나 손이 많이 가고 맛있기는 왜 그리 어려운 건지결혼을 하고 내 손으로 밥을 해보고서야 알았다.
엄마가 사이비 요리 교주가 된 건 태어난 순서 때문이었다. 엄마는 딸 일곱 아들 둘, 아홉 남매 중 다섯 째였다. '태어나도 꼭 가운데 번호'라 어려서부터 일복이 터졌다. 위로 언니 넷은 이미 커 시집갔거나 돈 벌러 다니느라 바빴고 아래 동생 넷은 아직 어렸다. '이미'와 '아직' 사이에 낀 다섯째 엄마만 죽어났다. 포대기 둘러 동생을 업어 키우고 우물 가서 물을 길어 와 살림을 했다. 할머니가 시장 장사 마치고 오는 시간에 맞춰 저녁을 짓고 틈틈이 개울가에서 빨래도 했다.
엄마는 매일 하루에 물을 스무 통씩 길었다.공동 우물에서 물통에 물을 담아 집으로 가져왔다. 쪼마난 여자애라 양쪽으로 어깨 지어 나르지 못하고 '빠께쓰'라 불리는 통을 머리에 얹어 날랐다. 스무 통을 채워야 동무랑 놀 수 있었다. 엄마는 한 번에 두 통씩 지면 빨리 끝날텐데 싶어 어깨지기 물통이 부러웠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빨리 끝내려물통을 머리에 이고 계단 있는 오르막 길을 뛰듯이 날아다녔다.
"내가 왜 키가 짝은 줄 아나.하도 물통을 지어서 그래. 무거운 물통이 허구한 날 머리 위에 있는데 키가 어떻게 크겠어."
"그럼 외할머니는 왜 작은데."
"할머니도 그렀겠지.옛날엔 물 다 길어다 먹었어."
"그럼 나는 왜 작아."
엄마의 무김치는 이모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다. 같은 무로 담그는데 '왜 네가 하면 맛이 더 좋냐'며 비법을 가르쳐달라 했다. 입덧할 때 엄마의 무김치가 먹고 싶었다. 적당히 새콤하게 익은 무를 와삭 베어 물면 수시로 뒤집히는 속이 가라앉을 거 같았다. 부산에서 서울로 무김치가 날아왔지만 삼시세끼 무김치만 먹으니 엄마가 아무리 부지런을 떨어도받아먹는 입은 감질났다. 이참에 배울까 싶어 전화로 물었다.
"무김치는 어떻게 해?"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무를 절여. 그리고 무쳐."
나는 그 시간 부로 김치 담그기를 포기했다. '절여'와 '무쳐'가 얼마나 우주적 행위인지 깨달았다.
엄마의 사이비 레시피엔 박멸되지 않은 시간이 숨겨져 있다. 손맛이란 손이 거쳐온 노동의 사리 같은 것. 나는 엄마의 시간이 담긴 요리를 한 그릇 한 냄비 먹으며 한 살 한 살 나이 먹었다. 내 안에는 엄마 음식에 담긴 엄마의 사리가 들어 있다.
언젠가 배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엄마의 사이비 레시피. 언제까지나 먹을 줄 알았던 음식들. 엄마와 나 사이에 남은 시간이 무한할 줄만 알았던 어리석음을 탓하며엄마가 해 주는 요리가 먹고 싶어 흉내 내 본다. 탁탁 툭툭 휘적휘적. 나를 보며 엄마가 '내가 그리 하드나.' 하며 웃는 것 같다. '너도 나 닮아 사이비네.' 놀리는 것 같다. 애써도 낼 수 없는 맛을 뒤로하며 엄마를 닮았다는 말에 그저 좋아 눈물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