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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이 Sep 18. 2023

미황사 개 아미




해남에 있는 미황사에 갔을 때 가장 먼저 반겨준 건 108 계단이었습니다.(아민 줄 아셨죠? 아미는 뒤에 나옵니다^^)




천천히 오르도록 굽이굽이 어지는데

처음엔 이런저런 생각이 들겠지만 오르다 보면 주위 정경에 마음이 가라앉고 조금씩 숨도 차고 다리 아파지며 생각이 없어겠죠.





하지만 저는 가벼워지지 못했습니다. 올라갈수록 오히려 무거워졌죠.  캐리어를 들고 올라갔든요.


30도가 넘는 7월 말이습니다.

평소 운동 상태 만 올라가도 허덕거릴 수준인데

저걸 들고 올라가려니 극기체험현장 따로 없었습니다.


숨이 턱까지 오르고

땀이 비 오듯 내리고

얼굴은 빨갛게 달궈지고

여기까지 저걸 이고 지고 온 게 부끄럽고


마음을 비우는 게 아니라 영혼이 가출할 듯싶을 때

아미를 만났습니다






108 계단이 끝나는 곳에서 헉헉거리며 올라오는 저를 보고 있더라고요.

인간, 뭘 그렇게 이고 지고 올라오나.


제 냄새를 한참 습니다.

아침에 집을 나서며 며칠 못 볼 거라 아쉬워

장군이와 한참 작별인사를 나눴데,


나한테 개 냄새나지?

맞아. 우리 집에 장군이라는 개가 있어. 

너는 이름이 뭐야?

장군이는 다리짧고 하얀 비숑이야. 

보고 싶다.




종무소에 들어가 미황사 소개를 듣는데

아미가 익숙하게 제 집처럼 들어가더라고요.


미황사에는 원래 열네 살 개가 한 마리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라졌요.

그러다 한참 지난 올해 사월초파일 개 한 마리가 다시 나타났는데

처음엔 생김새가 너무 닮아 같은 개인 줄 아셨다네요


다시 보니 개였고 계속 절에 산답니다. 주지스님께서 아미라는 이름을 지어 주셨고 하네요.



낙조를 보러 올라갔을 때 전각 사이 아미 집이 보였다. 이것이 평화인듯 무척 아름다웠다.


아미는 순하고 영특했습니다.

이튿날 달마고도에 오를 때 앞서 올라간 일행을 따라 산행 가고

들며 나는 절 손님 등산객들 사이를 조용히 거닐고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이박삼일 머무는 동안 아미를 자주 봤습니다.

동해 번쩍 서해 번쩍 자유로웠고 느긋했어요.


숙소인 세심당과 공양간 사이 작은 풀밭이 있는데

그곳에 자주 누워 있었습니다.


처음엔 이 더위에 어쩌누 걱정했는데

돌, 풀, 그늘, 흙

시원한 곳을 잘 알고


달마산 바람을 즐길 줄도 알더 군요.




풀밭에 맘대로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미뿐이었습니다.

풀에 사는 벌레를 밟으면 안돼서 우리는 마당을 빙 둘러 다녔거든요.


마당은 숙소인 세심당과 공양간 사이에 있는데

공양을 마치고 나오면 언제나 그 앞에 있었습니다.





처음 혹시 뭐가 먹고 싶어 그런가 했어요.

집에 있는 장군이 생각이 나서 저녁공양에 나온 제 밥을 조금 남겨 작은 주먹밥 만들어 줬는 안 먹더라고요.


바나나도 손가락 한 마디쯤 남겨 줬는 안 먹었어요.





다음 날 아침 공양에 나온 빵을 조금 남겨 주었

빵은 먹더라고요.


손에 올려진 빵을 아주 조심스럽게 가져다 먹었습니다. 아하, 너 빵 좋아하는구나.





아미 장군이가 생각났습니다. 

하지만 아미에게 애정을 갈구하진 않았어요.(단호) 저한텐 장군이가 있으니까요.


아미는 이쁘지만 만지지 않고 귀찮게 굴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하긴 제가 자주 바라봐 눈길이 귀찮았을지 모르겠네요.


미황사에 가서 개를 만날 줄 몰랐는데

아미가 있어 좋았습니다.

산과 절과 사람과 개

이런 게 평화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오는 날도 아미가 배웅해 주었습니다.

아미야 안녕 하니 누워있다 눈으로 흘낏 한 번 보요.







아미가 건강하게 래오래 미황사에 머물면 좋겠습니다.


대웅전 보수공가 끝나면 5년 안에 한 번 더 오자 약속하며 돌아왔는데

다시 갔을 때도 아미가 반겨주면 좋겠습니다.


아미야 건강게 지내.

장군이한테 네 얘기해 줬어.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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