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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황사 개 아미

by 밤이




해남에 있는 미황사에 갔을 때 가장 먼저 반겨준 건 108 계단이었습니다.(아민 줄 아셨죠? 아미는 뒤에 나옵니다^^)




천천히 오르도록 굽이굽이 어지는데

처음엔 이런저런 생각이 들겠지만 오르다 보면 주위 정경에 마음이 가라앉고 조금씩 숨도 차고 다리도 아파지며 생각이 없어겠죠.





하지만 저는 가벼워지지 못했습니다. 올라갈수록 오히려 무거워졌죠. 이 캐리어를 들고 올라갔든요.


30도가 넘는 7월 말이습니다.

평소 운동 상태만 올라가도 허덕거릴 수준인데

저걸 들고 올라가려니 극기체험현장이 따로 없었습니다.


숨이 턱까지 오르고

땀이 비 오듯 내리고

얼굴은 빨갛게 달궈지고

여기까지 저걸 이고 지고 온 게 부끄럽고


마음을 비우는 게 아니라 영혼이 가출할 듯싶을 때

아미를 만났습니다






108 계단이 끝나는 곳에서 헉헉거리며 올라오는 저를 보고 있더라고요.

인간, 뭘 그렇게 이고 지고 올라오나.


제 냄새를 한참 맡습니다.

아침에 집을 나서며 며칠 못 볼 거라 아쉬워

장군이와 한참 작별인사를 나눴데,


나한테 개 냄새나지?

맞아. 우리 집에 장군이라는 개가 있어.

너는 이름이 뭐야?

장군이는 다리가 짧고 하얀 비숑이야.

보고 싶다.




종무소에 들어가 미황사 소개를 듣는데

아미가 익숙하게 제 집처럼 들어가더라고요.


미황사에는 원래 열네 살 개가 한 마리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라졌요.

그러다 한참 지난 올해 사월초파일 개 한 마리가 다시 나타났는데

처음엔 생김새가 너무 닮아 같은 개인 줄 아셨다네요


다시 보니 른 개였고 계속 절에 산답니다. 주지스님께서 아미라는 이름을 지어 주셨고 하네요.



낙조를 보러 올라갔을 때 전각 사이 아미 집이 보였다. 이것이 평화인듯 무척 아름다웠다.


아미는 순하고 영특했습니다.

이튿날 달마고도에 오를 때 앞서 올라간 일행을 따라 산행 가고

들며 나는 절 손님 등산객들 사이를 조용히 거닐고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이박삼일 머무는 동안 아미를 자주 봤습니다.

동해 번쩍 서해 번쩍 자유로웠고 느긋했어요.


숙소인 세심당과 공양간 사이 작은 풀밭이 있는데

그곳에 자주 누워 있었습니다.


처음엔 이 더위에 어쩌누 걱정했는데

돌, 풀, 그늘, 흙

시원한 곳을 잘 알고


달마산 바람을 즐길 줄도 알더 군요.




풀밭에 맘대로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미뿐이었습니다.

풀에 사는 벌레를 밟으면 안돼서 우리는 마당을 빙 둘러 다녔거든요.


마당은 숙소인 세심당과 공양간 사이에 있는데

공양을 마치고 나오면 언제나 그 앞에 있었습니다.





처음 혹시 뭐가 먹고 싶어 그런가 했어요.

집에 있는 장군이 생각이 나서 저녁공양에 나온 제 밥을 조금 남겨 작은 주먹밥 만들어 줬는 안 먹더라고요.


바나나도 손가락 한 마디쯤 남겨 줬는데 안 먹었어요.





다음 날엔 아침 공양에 나온 빵을 조금 남겨 주었

빵은 먹더라고요.


손에 올려진 빵을 아주 조심스럽게 가져다 먹었습니다. 아하, 너 빵 좋아하는구나.





아미를 보 장군이가 생각났습니다.

하지만 아미에게 애정을 갈구하진 않았어요.(단호) 저한텐 장군이가 있으니까요.


아미는 이쁘지만 만지지 않고 귀찮게 굴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하긴 제가 자주 바라봐 눈길이 귀찮았을지 모르겠네요.


미황사에 가서 개를 만날 줄 몰랐는데

아미가 있어 좋았습니다.

산과 절과 사람과 개

이런 게 평화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오는 날도 아미가 배웅해 주었습니다.

아미야 안녕 하니 누워있다 눈으로 흘낏 한 번 보요.







아미가 건강하게 래오래 미황사에 머물면 좋겠습니다.


대웅전 보수공가 끝나면 5년 안에 한 번 더 오자 약속하며 돌아왔는데

다시 갔을 때도 아미가 반겨주면 좋겠습니다.


아미야 건강게 지내.

장군이한테 네 얘기해 줬어.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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