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포 선라이즈>를 좋아했던 건 "나랑 같이 비엔나에서 내려요" 란제시의 말을 듣고 따라 내린 셀린때문이었다. 우연의 형식으로 다가온 필연을 눈치채고 무모함을 찬란한 기회로 만드는 사람. 나는 어느 쪽이냐면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나오는 프란체스카다. 인생에 단 한번 있을까 말까 한 감정이라 확신하면서도 생각이 많다. 주저한다. 결국 신호대 앞에서 기다리는 로버트를 놓치고 평생 그리워만 한다. 이성 간의 사랑으로만 해석하지 말지니 저지르며 살아야 한다. 못 그럴 이유가 무엇인가.
'자기 영혼의 떨림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9월 13일
함께 글쓰기를 하고 있다. 함께하기로 했을 땐 나의 나태가 함께하는 타인에게 분명히 전해진다 생각한다. 같이 읽고 쓰고 격려한다. 목적 없는 글쓰기지만 글은 스스로의 생명력으로 어딘가에 다다를 것이다.
9월 14일
중1아이에게 '꼬인 위치'에 대해 가르쳤다.
"그러니까 공간에서 두 직선의 위치가 평행하지도 만나지도 않을 때 꼬인 위치라고 한다."
"아, 저 알겠어요 쌤. 그래서 쟤랑 저랑 꼬였나 봐요"
"............. 웃으라고 한 말이냐 지금. 꼬인 위치가 만만해?"
나중에 생각해 보니 웃겼다. 평행하지도 만나지도 않는 사이. 아, 꼬인 관계란 그런 것인가. 보기보다 똑똑한 녀석이었다.
9월 15일
글을 잘 쓰고 싶어 하는 건 욕심이 아니다. 글을 잘 쓰지 못해 괴로워하는 순간 욕망으로 변모한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건 스스로의 한계를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자신의 이상형을 마음에 만들어놓고 다그치면 안 된다. 노력이란 야단치며 하는 게 아니라 달래 가며 하는 것이다. 지키기로 한 목표는 이룰 수 있는 것으로 시작해라. 결심한 후엔핑계 대지 말고 그냥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