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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이 Sep 01. 2023

금세 지저분해지는 존재



한 달간 쓰지 않았다. 적고 나니 우습다. 아이고, 누가 보면 평생 꼬박꼬박 쓴 줄 알겠네. 부끄러우니 고쳐야겠다. 뭐라고 해야 할까. 



8월 날씨는 극렬하고 변덕스러웠지만 일상은 단조로웠다. 비슷한 오전을 보내고 출근하면 어제 같은 오후가 이어다. 퇴근하면 그제와 다를 거 없는 저녁이었다. 모든 것은 그대로인데 읽기와 쓰기만 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글쓰기 모임이 종료됐고 핑계가 됐다. 빠진 자리 대신 블록 맞추기 게임을 끼워 넣었다. 학생 때 했던 테트리스 실력이 녹슬지 않았더라. 브런치 대신 유튜브 보며 락실 '공산당' 발언에 깔깔대고 넷플릭스로 영화 몇 편을 시청며 저녁을 보냈다.



지지난 주였던가. 침대에 누워 태블릿으로 '무빙' 시리즈를 보는데 문득 이것도 루틴이라면 루틴 아가란 생각이 들었다. 전엔 강아지와 꽁냥 거리고 저녁엔 빈둥거리고. 루틴이 별 건가 반복하면 루틴이지.  운동하고 읽고 써야 하나. 묻지도 않은 질문을 만들어 자답한 걸 보면 의식 너머 저 '아담아,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는 태곳적 질문이 울렸 모른다. 골치 아픈 질문은 변명이 답이다. 귀찮아 접었습니다. 안 쓰니 편안하네요. 책 대신 옥수수 삶 먹고 글 대신 돈 쓰며 인터넷 쇼핑을 했다.



년기가 시작읽어야 잠들기 쉬웠는데 안 읽자 하니 읽지 않만했다. 박완서 선생님은 전쟁통에 활자가 그리워 천장 도배지로 붙여놓은 신문을 의자에 올라가 읽으셨다던데. 아, 역시 작가는 뭐가 달라도 다르지. 안 읽어도 아무 일 없는 나는 다행이었다. 읽기는 그나마 낫다. 쓰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손해다. 품이 많이 들고 그에 비해 초라하기 일쑤 아닌가. 이게 글인가 싶은 자괴감까지 계산에 넣면 쓰지 않아 얻을 이득이 더 많을지 모른 결론도 내렸다.



한 달이 흘렀다. 읽느라 쓰느라 뺏긴 시간을 자고 논다 탕진했는데 거 참, 희한하네. 왜 더 피곤하고 심심한 걸까. 고작 4,5 주 사이 나는 금요일만 기다리는 직장인이 됐다.



"금요일만 기다리지 마. 화요일 저녁에 네가 하고 싶은 운동을 해 봐. 그럼 화요일이 기다려지겠지. 목요일 하고 나면 듯하거나 설레는 모임에 참여해 봐. 목요일 금요일 하루 전으로만 여기지 않게 될 거야. 금요일만 는 삶은 일주일을 너무 지루하고 의미 없게 만들기 쉬워. 요일마다 설레는 일이 있으면 좋겠지만 최소한 이틀이라도 의미를 부여해 봐. 일주일이 다를 거야."



직장인 선배고 아들 딸 입사할 때 한 조언인데 이럴 때 쓰라고 이 말이 나온 모양이다. "너나 잘하세요." 《성공하는 사람의 7가지 습관》을 쓴 스티븐 코디가 파산했다는 소식에 뭐니, 했는데 남 얘기할 때가 아니다. 창피하지만 나 역시 곤해 따분해를 연발하며 주말에만 목매는 사람이 됐다.






시를 쓰는 건 자기 정화예요.

화장실에 볼 일 보러 가듯이 밥 먹은 다음에
양치질하듯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할 일이에요.

우리는 그러지 않으면 금세 지저분해지는 존재예요.


- 이성복, 《불화하는 말들》 25쪽






'시' 대신 '읽기'와 '쓰기'를 넣어본다. 

읽는 건 자기 정화예요. 쓰는 건 자기 정화예요.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할 일이에요. 우리는 그러지 않으면 금세 지저분해지는 존재예요.



'이문세의 두 시의 데이트'에서 상품으로 컴퓨터를 받 온라인 글쓰기 시작다. 이십 년 넘다. 햇수는 긴데 남은 글 별 없다. 잡설이라 가치 없고 탈퇴한 카페와 사라진 블로그 따라 연스럽게 폐기 처분됐다. 쓸모없는 일에 필요 이상 시간과 정성을 쏟았다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월급 같은 것이었다. 고생한 만큼 받지 못하고 통장에 오래 머물지도 않지만 고 입고 아이 키우 살림비용이 된 것처럼 글도 다. 그나마 이만큼 살 수 는 건 글의 공이다.



더 지저분해지기 전에 읽어야겠다. 내 강아지도 하루 한 번 양치질하는데, 물론 제 발로 안 하고 내가 해주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고 볼 일 보러 가듯 양치질하듯 써야겠다. 렇지 않으면 우리는 금세 지저분해지는 존재니까.






그 사이 쓰던 테블릿이 사망했다.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액정이 깨졌다. 애들이 새 것을 보내며  엄마, 좋은 글 많이 써 한다.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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