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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이 Sep 20. 2023

여름산의 윤리



둘째 날 아침공양 후 달마고도에 올랐다.  달마고도는 미황사와 큰 바람재, 노지랑 골, 몰고리재 등 달마산 주 능선을 아우르는 17.74킬로미터의 둘레길이다. 우리가 도착하기 삼일 전까지 일주일 내내 달마산에 폭우가 내렸다고 한다. 당일은 30도가 웃도는 뜨거운 날씨였지만 여전히 빗물을 머금 길은 젖어 있었다. 둘레길에는 12개의 암자가 있는데 욕심내지 않고 3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관음암자터까지만 다녀오기로 했다.



여름 산에 어떻게 라갈까 한 걱정은 산이 해결해 주었다. 나무가 햇빛을 가리고 흙은 열기를 흡수며 땅보다 시원했다. 과거 선인들이 걷던 옛길을 장비 없이 조성다는 산길은 인간의 손덜 탄 모습이었다. 길은 직선과 곡선이 반복되고 경사가 일정하지 않았다. 오르막이라 하여 올라가는 길만 있지 않 돌산답게 돌로만 이어지기도 했다. 산길은 산과 인간의 대화 말이 들어맞았다.



어디쯤일까 싶을 때 이정표가 이곤 했다. 인간의 두려움은 비슷한 걸까. 시간이 지날수록 여기가 어얼마큼 높이 오른 건지 알 수 없었다. 좁고 험한 길을 걸으며 천 년 전 산을 넘던 사람들의 발걸음을 떠올렸다. 산을 넘어 도솔암엘 가고 암자로 수련 가며 느꼈을 깨달음이 곳곳에 숨겨 있을 터였다. 얼마큼 올랐을까. 돌과 나무이던 눈앞에 예고 없이 산 아래 정경이 다. 한참 아래 마을과 멀리 다도해가 눈에 들어왔다. 언제 이 오른 걸까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펼쳐진 정경이 힘들었던 걸음 내려진 자연의 표창장 같았다. 







산을 오르고 내릴 때엔 다른 생각하기 힘들다. 생각할 수 없으므로 순간순간 생각이 찾아온다. 생각을 비우는 시간을 명상이라 한다면 산은 오르는 행위자체가 명상이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 발생한 공백 속엔 짧은 깨달음이 일어난다.  삶 연관지은 관용구가 많은 것은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산길은 호락호락하지 않 적당히 고독했다. 셋이 같이 오르고 드문드문 다른 일행을 만났지만 나란히 걸을 수 없었다. 길은 좁고 미끄러워 발 밑을 조심하느라 사소한 수다를 나누지 않았다. 미황사가 묵언수행으로 이름난 이유가 당연하단 생각이 들었다. 달마산이 이끄는 자연스러운 묵언의 세계에서 침묵으로 소통하고 간격으로 서로를 돌봤다. 그래선지 고독했으나 외롭지 않았다.



처처에 작은 돌탑이 보였다. 지나는 길에 쌓인 것은 그렇다 치지만  닿기 어려운 절벽 가까이 놓인 돌을 보며 저기까지 어떻게 갔을까 놀랐다. 무엇이 저기까지 가게 했 궁금했다. 호기였을까 간절함이었을까. 높은 산까지 이고 지고 온 마음의 흔적들은 이제 산에 담겨 산이 됐다. 산은 가득 차 있지만 비어있고 열려 있지만 가둔다. 산에 갇힌 나를 산이 보호다.






큰 바람재는 이름에 맞게  큰 바람이 불었다. 잠시 머물러 얼굴을 식힌 후 입구처럼 만들어진 으슥한 좁은 길을 잠시 걸으니 관음암자터에 닿았다. 터는 커다란 침대 하나 정도 크기였다. 그곳에 있었을 작은 암자를 눈으로 그렸다. 그 안에서 새벽을 맞고 밤을 지새웠을 누군가를 상상했다. 깊은 산속에 고요히 머물며 그는 세상 번뇌를 모두 끊어냈을까.  



암자 앞 풍경이 아름다웠다. 그곳에 머문 이들이 자주 풍경에 눈과 마음을 뺏겼으리라. 암자터를 한 바퀴 돌 옆에 있는 샘으로 갔을 땐 너무 맑아 감탄했다. 어찌나 투명한지 손을 담가도 괜찮을까 조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손끝만 닿았는데 온몸이 시원다. 팔토시를 벗어  적셔 끼웠더니 얼음팩을 붙인 것과 다름없었다. 름 해에 지지 않는 작은 샘의 꼬장꼬장함이 대단했다.



여름산의 윤리를 배웠다. 밖으로 더운 바람 뿜어대며 닫힌 문 안에서 누린 이기적인 여름 반성했다. 산이 베푸는 시원함은 오감으로 다가왔다. 경으로도 시원해지고 소리로도 시원해지는 해치지 않는 청량함. 샘이 준 소박하고 너그러운 위력을 느끼며 어쩌면 이 물을 보기 위해 여기까지 온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황사로 돌아오는 길은 도리어 쓸쓸했다. 산을 내려가면 세상으로 돌아갈 것이고 산에서 뱉어진 순간 마음의 공백은 다시 세상으로 채워질 것이다. 뻔뻔하게 살아갈 것이다. 남들도 그렇지 않냐며 이기적으로 살 것이다. 고작 한 번의 수업으로 산의 윤리를 어찌 배우겠는가. 그러니 때마다 산에 오르고 고백해야 할지 모른다.



눈앞을 나는 벌레를 두 손으로 휘휘 저으며 쫓다 산의 객은 나인데 산에 사는 주인에게 이렇게 굴어도 되나 싶었다. 충을 혐오하고 혐오하는 것 뒤에 충을 붙이는 인간의 저속함을 산은 모르길 바랐다. 좁은 길이 굽어지길 반복하며 복잡한 생각들을 쫓아냈다. 생각이 달아난 순간 다시 찾아온 평안 속에서 산은 우리를 덤덤하게 아래로 세상으로 인도했다.



108 계단을 올라 도착하니 경내에 불경 외는 소리가 울렸다. 세심당 근처엔 점심공양을 준비하는 고소한 냄새가 흘렀다. 기분 좋은 허기를 느끼며 쪽마루에 등을 대고 누웠다. 아직 몸 안에 산이 담겨 있었다. 여름산의 윤리를 떠올리며 등이 천천히 시원해질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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