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하지 못한 나는 평균 일 년에 한 달 글을 쓴다. 남들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 할 때 나는 한 달 글쓰기를 한 셈이다. 엄마가 죽은 후론 4월이 되면 쓰고 싶은 욕망에 시달린다. 그야말로 쩔쩔맨다. 공책에 블로그에 팬 카페에 얼마 전엔 개 카페에, 도리없어 가리지 않는다.
황인숙 시인의 《좋은 일이 아주 없는 건 아니잖아》 를 읽다 국어사전을 들고 왔다. 시인이 쓰는 산문이 궁금했는데 시인의 생활은 특별하지 않아 시 같았다. 무엇보다 아름다우면서 적합한 단어가 즐비했다. 가령 아치. 아치를 무지개 모양의 구조물로만 알고 있었는데 '아치를 더했다'란 구절을 읽고 무슨 뜻인지 몰라 어학사전을 검색했다. '아치'에는 '아담한 풍치'란 같은 말 다른 뜻이 있다. 이때 아치는 길게 발음해야 한다. 아;치. 아치에는 어금니란 뜻과 함께 '늙은이의 이가 빠지고 다시 난 이'라는 장수의 징조를 가리키는 또 다른 의미도 있었다.
낮술을 마시고 붉어진 얼굴을 '불콰'라는 한 낱말로 표현한 것도 좋았다. 알고 있었지만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다.'고샅고샅'이란 말도 있었는데 좁은 골목길 좁은 골짜기 사이를 뜻하는 말로, 처음 배웠다. 고샅고샅, 어감만으로도 뜻이 그대로 전달된다.
알고는 있지만 자주 쓰지 않는 단어, 읽을 순 있지만 무슨 뜻인지 모르는 말, 같은 모양 다른 뜻이 더해지는 낱말을 만나면 서먹하다 소중해 반갑다. 소리 내지 않고 읽는 중인데 입천장과 머리 그 사이 어디쯤에서 기분 좋게 발음되는 단어. 기어코 소리 내어 읽게 되는 낱말을 보면 흐뭇하고 다정해진다. 그런 날엔 드넓은 해변가에서 눈에 띄는 돌멩이를 발견한 기분이다. 처박아 둘 게 뻔하지만 기어코 탐내어 주머니에 넣어오는 돌멩이.
국어사전을 펼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인터넷 어학사전을 손에 쥐고 있지만 기역니은 순서로 적힌 두꺼운 사전을 양 쪽 엄지 손가락으로 세심히 가르고 집게손가락을 위에서 아래로 다시 옆으로 훑어가며 의미를 찾는 것이 마땅한 단어를 만났으니 당연했다. 그것은 어렵게 익히고 고심하여 골라 고이 품었다 귀하게 내어준 글쓴이에 대한 감사이기도 하다.
타로카드 고르듯 잠시 눈을 감고 느낌 가는 대로 하지만 신중하게 사전을 가른다. 편다. 펼쳐진 두 면 가득 빼곡한 글자들. 아는 단어가 많을까 모르는 단어가 많을까. 오늘은 비읍의 어느 쪽이 펼쳐졌는데 그중 '병렬'이란 단어가 눈에 띄었다. 일전에 '감히 병렬적으로 적는다면'이란 표현을 읽고 멋있어서 언젠가 써먹어야지 했는데 아직 주머니 속 돌멩이다.
일 년에 한 달 쓰는 주제에 사전을 뒤적인다. 야윈 내 글 통통하게 살찌울 단어 어디 있나 두리번거린다. 글감 기록해 보겠노라 들인 노트는 매 년 한 권씩 앞 다섯 장만 채우고 글쓰기 책은 집 여기저기를 어지르고 있다. 어제는 책상이 어둡게 느껴져 거실에 놓아둔 전등을 갖고 들어왔다. 엉덩이 아플까 봐 있는 의자 중 제일 좋은 것을 방으로 들였다. 책상엔 녹차와 커피 흔적 남은 컵 두 개가 올려져 있다. 노트북이 없어 핸드폰으로 쓰고 아들에게 물려받은 탭에 작은 자판을 연결해 사용하는데 그제던가 노트북을 하나 살까 하다 도리질하였다. 너는 너를 믿니? 이번엔 제발, 그냥, 좀, 꾸준히나 쓰려무나. 주머니에 돌멩이만 모아놓은 주제에 유세가 다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