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밤이 Aug 01. 2021

머리카락을 잃고 갱년기를 얻다

 

 한 달 전 펌을 한 머리는 윤기가 사라졌다. 갈라지고 거칠어지더니 상태가 심각했다. 원래부터  '엘라스틴 했어요' 같은 찰랑 머리는 아니지만 퍼석하다 못해 제멋대로 흩날리는 이주일 아저씨 스타일 그래도 좀 심하가. 


감을 때마다 말릴 때마다 거슬리다 못해 스트레스  위험 수위에 닿았 때 도저히 참을 수 없 미용실 예약을 했다. 



 "아무래도 펌이 못된 거 같아요. 머릿결이  정도 아니었거든요."  


 노란 머리의 헤어 디자이너는 내가 하소연하는 동안 아무 말없이 하얗고 긴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올리고 만지고 졌다. 손상머리 복구, 염색 전문이란 말에 찾고 찾아 예약한 곳다.



 "어떻게 복구가 될까요 선생님"


 대답을 기다리며 거울에 비친 내 푸석한 머리와 노란색 디자이너의 머리를 번갈아 혹은 동시에 바라봤다. 디자이너는 한참 살피던 내 머리에서 손을 떼고 유치원 아이처럼 짧은 망토를 두른 채 앞에 앉아 있는 를 보며 물었다.



 "혹시 갑상선 안 좋으세요?"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미용실에서 건강상담을 받을 줄 몰랐는데.



 "아뇨."



 디자이너는 포기하지 않고 다.   



 "그럼 최근에 새로 드시는 약 있으세요?"

 "아뇨"



 나는 마치 두통약을 사러 왔다 미처 모르던 종양의 실체를 만난 심정이 되어갔다. 이 이상한 질문의 요지가 무엇일까. 디자이너는 그게 아니라면 이제 남은 건 하나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혹시 갱년기세요?"



 물음과 동시에 나는 기대 있던 허리를 쭉 펴며 고개를 돌렸다. 내 뒤에 서있는 디자이너를 놀란 얼굴로 쳐다봤다.



 "네 맞아요 선생님. 저 갱년기예요. 갱년기인 거 같아요."



 나는 마치 사주나 관상만 보고 나만 아는 출생의 비밀나 얼마 전 사건군가 알아 맞췄을 때나 나올 법한 얼굴이 되었다. 여기는 미용실인가 점집인가. 그렇다. 나는 갱년기다.



 "몸속 호르몬이 불균형하면 뇌가 판단을 해요. 지금 몸이 힘드니까 조금 덜 중요하다 생각하는 곳에 영양소를 덜 주죠. 그게 머리카락인 경우가 생각보다 많아요. 지금 보면 상한 원인이 시술로 보이진 않거든요. 시술해서 상한 건 좀 다른 모양이에요."


 "그럼 어떡하죠."



 나는 울상이 되어 부적을 쓰라면 쓰고 굿을 하라면 굿을 할 심정이 되어 물었다.



 "이럴 땐 아무것도 안 하시는 게 좋아요. 지나가길 기다려야죠. 시간이 지나면 몸이 적응하고 머리카락도 다시 좋아질 거예요. 갱년기에 좋은 음식 많이 드시요."


 그냥 팔자려니 참고 살아.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을 거야 라는 말을 들은 기분이었다. 리카락 상담 갔다 인생 상담 하고 온 느낌이라니. 갱년기가 머리카락에도 영향을 끼칠 줄 몰랐다. 머리카락으로 갱년기를 확인받을 줄은 더 몰랐다.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는 나이 싶더니 파마할 수도 염색할 수도 없는 아니지, 밀 수도 길 수도 없는 머리니.



 인어공주는 목소리를 잃고 다리를 얻었는데 난 머리카락을 잃고 갱년기를 얻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그렇듯 긴가민가하던 사실이 확정판결을 받으면 모든 상황은 급물살을 탄다. 년기도 그렇다.







작가의 이전글 빗소리 결핍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