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숑을 키우고 있습니다
내 인생에 네가 있을 줄이야
"엄마 강아지 털 무슨 색이 좋아?"
"안 키운다니까!"
"흰색? 아니면 노랑? 갈색? 검정?"
"관심 없다니까 그러네."
"알았어. 그래도 굳이 고르라면."
"뭐, 하얀색이 이쁠까?"
"털이 긴 게 좋아 짧은 게 좋아?"
"안 키운다고!"
딸이 강아지를 키우자 한 건 20년이 넘었습니다. 맨날 하는 소리라 그려려니 했습니다. 제가 질색하니 아들도 남편도 별 말이 없었는데 때가 된 걸까요? 가족들의 성화가 늘고 밥상에서 자꾸 강아지 얘길 꺼내서 우리 집엔 상상반려견이 있다 제가 흉까지 봤습니다.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털 많이 빠지는 건 별로지?"
"털은 길이보단 빠지는 게 문제야. 집에 개털 잔뜩 있으면 아이고 못살아. 나도 오빠도 알레르기 있잖아."
"그럼 크기는? 큰 게 좋아 작은 게 좋아?"
"키울 맘이 없는데 크기가 뭔 상관이야."
"아빠는 큰 개가 좋다던데. 리트리버 같이."
"아파트에서 어떻게 큰 개를 키워."
"그럼 작은 강아지가 좋아?"
"저번에 방송 보니까 너무 작으면 관절이 약하다더라."
"근데 엄마는 키울 것도 아니면서 개훌륭은 왜 그렇게 열심히 봐?"
"재밌어. 쓸모 있고. 그거 보면 개들의 세계가 참 신기해."
그러게 키울 맘도 없는데 왜 그렇게 열심히 봤을까요?
"귀는 뾰족한 애가 좋아 쳐진 애가 좋아?"
"귀가 뭐가 문제여. 강아지는 사람 좋아하고 안물고 순하면 최고야."
"충성심 강하고 집 잘 지키는 강아지는?"
"난 그런 거 별로더라. 아파트 사는데 집을 왜 지켜. 충성심은 부담스럽고. 사람 좋아하고 성격 쾌활하고 강아지도 그래야 귀엽고 이뻐."
며칠에 걸쳐 야금야금 설문조사하던 딸이 드디어 결론을 내렸습니다.
"엄마는 비숑이네."
"뭐라고?"
"이제까지 말한 걸 종합해 보면 엄마한테 맞는 강아지는 비숑이야."
"비숑? 첨 들어보네."
"내가 보여줄게"
"아구 됐어 됐어. 내가 분명히 말했다. 나 강아지 안 키워. 강아지 키울 시간이 어딨어. 필요 없어."
"알았으니까 일단 보라고. 안 키워도 되니까 보기만 봐. 엄청 귀여워. 비숑이 어떤 애냐면, "
제 인생에 강아지가 있을 줄 몰랐습니다. 시간 많고 팔자 편한 사람들이나 키우는 줄 알았는데. 무엇보다 저는 오십 년 넘게 강아지를 못 만지는 사람이었습니다. 겁나고 께름칙하고 이쁘지 않았어요.
그러다 아이들 20년 성화가 갱년기 틈을 비집고 들어와 준비 없이 강아지를 만났습니다.
이런 표현 어떨지 모르겠는데 그야말로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조금 더 북적이고 많이 웃고 훨씬 행복해졌어요. 아들 둘 딸 하나 갖고 싶던 꿈도 이뤘습니다.
처음 봤을 때 너무 얌전했는데
집에 오자 본색을 드러낸 개구쟁이.
장군아
그러고 보면 난 나도 모르게
아주 오래전부터 널 만나고 싶어 했나 봐.
널 맘에 품고 있었나 봐.
널 기다리고 있었나 봐.
내가 꼭 바란 모습 그대로
아무것도 모르는 내게 와줘서 고마워 장군아.
나도 네가 바라는 그런 보호자가 되어볼게.
장군아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