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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May 22. 2022

일요일 아침, 야생동물 구출 대작전

동물농장 보려다 동물농장 찍은 날

 아침 설거지를 마치고 점심때까지는 요리를 하지 않으리라! 개운한 기분으로 부엌문을 닫으며 돌아섰다. 창가를 내다보는데 유난히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다른 풍경들은 고요한데, 그 나뭇가지만은 바람에 춤을 추는 게 이상해서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나뭇가지 사이로 까만 물체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까치 한 마리가 푸드덕거리고 뒤 이어 요동치듯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따라 내 마음도 흔들렸다. 설마... 하며 창가 쪽으로 바짝 다가 살피자 까치가 아닌 다른 새가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찌 된 영문인지 새는 거꾸로 매달린 채 푸드덕푸드덕 날갯짓을 해댔고 까치가 마치 공격하듯이 그 새 주변을 위협적으로 날아다녔다. 다행히 나뭇가지에 있던 새와 같은 종류의 새가 와서는 까치를 내쫓았다. 여전히 그 새는 나뭇가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나뭇가지에 걸려버린 거다.



 몇 주 전 집 앞 나무에 길게 늘어진 실을 보며 누가 여기에 이런 걸 걸어놓았나 생각을 했었다. 누군가 이불을 털다가 떨어졌나 하고 생각을 했었다. 실을 치우고 싶었지만 쉬이 손이 닿지 않는 곳이라 그냥 내버려 두었다. 바람에 날려 떨어지겠지 하고 말이다. 그런데 그 실이 그 새의 발목을 감싸고 있었다. 탈출하려고 애를 쓰다가 오히려 꼬리 깃도 걸렸는지 약간 상처를 입은 듯이 보였다. 안간힘을 다해서 탈출하려고 발버둥 치지만 실은 좀처럼 새를 놔주지 않았다.




  몇 분이 흐르고 다시 까치는 그 새를 찾아왔다. 호시탐탐 공격하려고 노리고 있었다. 까치가 잡식성이라고는 알았지만 막상 같은 새롤 공격하는 모습을 보니 무서웠다. 인간의 실수라고는 하지만 우리가 벌인 일 때문에 동물이 고통받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뭐라도 해야 했다.



 우리 집은 1층이지만 생각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베란다 앞 화단과는 성인 남성의 키를 뛰어넘는 높이였다. 더구나 섣불리 도와주려다가 오히려 새들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직접 도와줄 수는 없는 상황. 먼저, 119에 전화를 걸었다. 혹시 동물 구조를 해주시냐고 묻자, 인명피해와 관련 없는 단순한 동물 구조는 하고 있지 않다며 죄송하다는 말을 뒤로 통화를 마쳤다. 동물구조단체에 전화를 걸었지만 일요일인 오늘은 낯선 기계음만이 답변으로 돌아왔다. 아파트 경비실에라도 연락을 취해야겠다 생각했다. 전화를 받은 경비원 아저씨가 오셨지만, 성인 남자의 키로도 역부족이었고, 구조 가능한 곳에 연락을 해보겠다면 돌아가셨다.



 하지만, 한참이 흘러도 별 다른 연락이 없어 다시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농장에라도 연락하고 싶은 맘이 굴뚝 같았다. 인터넷을 샅샅이 뒤졌다. 시청으로 전화를 하면 된다는 글들을 보았다. 일요일이라 연락이 닿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전화를 걸었다. 담당 부서는 일요일이라 연락이 안 되었지만, 24시간 민원 센터는 연락이 닿았고, 구조 가능한 곳에 연락을 하겠다는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다. 그렇게 또 한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 까치가 또 한 번 찾아왔고, 친구 새가 또 한 번 구해주었다. 그리고 발이 묶인 새는 조금씩 힘이 빠졌지만 여전히 온 힘을 다해 날갯짓을 했다가 또 몇십 분은 멍하니 앉아있다가 부리로 묶인 실을 쪼아보았다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했다.



 그때, 벨소리가 울렸다. 일이 있어 늦게 확인하는 바람에 지금 출동을 하고 있다는 구조 단체의 사무장님이 전화를 주셨다. 현장이 집 앞이라 계속 보고 있다고, 지금 여전히 묶여 있는 상태라고 알려드렸다. 그리고 중년 남성 한분이 곧 우리 집 베란다 앞에 사다리를 들고 등장하셨다. 새의 사진을 몇 장 찍으시더니 성큼성큼 사다리를 올라 새를 풀어주려 했다. 하지만 새는 자신이 공격당할까 봐 무서워 몸부림을 치며 손을 쪼으려고 했다. 다시 안전 장갑을 착용하고 부드럽게 새를 감싸 작은 나뭇가지를 꺾어내었다.


 

 새의 발목에는 생각보다 실이 복잡하게 엉켜있었다. 아마 사람의 힘이 아니었다면 절대 혼자서 나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날 밤 고양이의 먹이가 되거나 까치와 까마귀의 생존을 위한 희생양이 되었으리라. 칭칭 매여 아팠을 실을 말끔히 풀어주었다. 그래도 생각보다 깃을 다치지 않아서 잘 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손을 놓으며 힘껏 하늘을 향해 밀어주니 새는 푸드덕푸드덕 날갯짓을 하더니 조금 더 높은 나무에 잠시 앉았다. 나뭇가지에 앉아서 우리 집을 지그시 쳐다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어디론가 훨훨 사라져 버렸다.  



 인간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 같아서, 나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 같아서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웠는데, 그래도 인간의 힘을 빌어 다시 구조된 새를 보니 다행이다 싶었다. 일요일이라는 이유로, 다들 외면한다는 이유로 포기하고 싶었지만,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에 연락했던 곳이 이렇게 구조를 해줄 줄이야. 비록 새는 제비도 아니었고, 내가 직접 아픈 다리를 고쳐주지는 않았지만 흥부가 된 것처럼 마음이 넉넉해졌다. 어쩌면 저 새가 우리 집에 행운의 박 씨를 물어다 주지 않을까? 오늘 우리 가족에게 더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좋은 일이 생긴다면 모두 새 덕분이 아닐까? 생각했다.



 오늘 내가 응원하는 야구팀이 경기 내내 뒤지고 있다가 9회에 점수를 내고, 수비를 잘해서 승리를 거두었다. 행운이 찾아왔구나, 박 씨를 물어다 주었구나! 오늘 우리 집 앞 나뭇가지에서 생사를 오가던 빨간 깃털이 예쁘던 그 새의 얼굴이 떠올랐다. 고마워.







+오늘 저희 집 앞 나무에서 구조된 새는 '어치'라고 하는 까마귀과의 한 종류로 산에 사는 까치라고 합니다. 야생동물을 구조해야 할 일이 생기면 일단 해당 지역 시청에 연락을 취하시면 담당하는 구조 협회로 연락을 해주신다고 합니다. 주변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야생동물들이 있다면 모른 척하지 마시고, 잠시 시간을 내어 연락을 취해주시길^^ 나의 손길이 닿은 그 야생동물이 행운을 가져다줄 테니까요. 함께 사는 세상 만들어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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