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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Oct 20. 2022

포켓몬빵을 대하는 자세

병원에 가기 위해 아이들과 건물 입구로 들어섰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건물이긴 하지만 유난히 붐비고 있었다. 보아하니 건물 입구에 가판을 벌여놓고 무언가를 팔고 있었다. 무엇인지 관심도 없던 나에게 아이들은 팔을 두드리며 다급한 목소리로 불렀다.


"엄마 엄마 엄마 엄마"


갑자기 호들갑인 아이를 보며 도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그제야 고개를 돌려 가판을 자세히 보았다. 각기 다른 세 종류의 비닐봉지가 두 개 정도씩만 올려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아이들이 그렇게도 원하던 포켓몬 빵이었다. 포켓몬 빵 안에 있는 스티커를 100개도 넘게 모은 친구들도 있고, 심지어 친구들 사이에 거래가 된다고 하니 정말 핫하긴 핫했다. 핫한 유행에 1도 관심도 없을뿐더러, 긴 줄을 서서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는 스타일의 엄마는 아니기에 나는 한 번도 포켓몬 빵을 마주할 수 없었고, 아이들은 단 하나의 스티커도 없었다.


그러던 찰나 길거리에서 마주한 포켓몬 빵이라니. 아이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는 혹하는 마음에 얼마냐고 물었다.

"이건 개당 4천 원, 이쪽은 5천 원씩이요."

"아... 네."

순간 당황했다. 2천 원만되어도 사주겠다고, 3천 원만되어도 큰맘 먹고 사주어야지 생각했는데, 5천 원이라는 말에 이건 아니다 싶었다. 나는 단호한 표정으로 아이에게 너무 비싸서 사줄 수 없다고 말했다. 엄마에게 만 원이라는 돈이 있기는 하지만, 단순히 스티커를 갖고 싶다는 이유로, 원래는 천 원 조금 넘는 빵을 오천 원이나 주고 살 수는 없다고 말했다. 내 말을 들은 장사하는 아저씨가 자신도 줄을 서서 소매로 사 온 거라 가격을 싸게 할 수 없다고 했다. 나도 그래서 아이들에게 사 줄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했고, 아이는 단호한 엄마의 말이 절대 결과를 바꾸지 않는다는 걸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에 시무룩해졌다.



아이의 풀 죽은 모습 때문에 잠깐 갈등이 되었지만, 두 아이의 몫을 사면 스티커 두 개가 만 원이다. 이건 교육을 위해서라도 안 되는 거였다. 결국 나는 끝까지 포켓몬 빵을 사지 않았다. 아이에게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발견하게 되면 꼭 사 오겠다고 약속만 했다. 물론 마트에서 포켓몬 빵을 발견하여 내 손에 넣는 일이란 불가능이나 다름없지만 말이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다. 포켓몬 빵의 유행이 조금은 사그라든 느낌이었지만 여전히 포켓몬 빵은 코빼기도 안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약속이 있어 들렀던 지인의 동네에서 포켓몬 빵이 있다는 곳을 소개받았고 내가 지나가는 방향과 다른 곳에 있었지만 기어코 그 편의점에 들렀다. 떨리는 마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 물었다.


"포켓몬 빵 있어요?"


아저씨는 말없이 손가락을 아래로 가리켰고 카운터 안쪽 두 가지 종류의 포켓몬 빵이 위풍당당하게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종류별로 두 개씩 달라고 했고, 총 4개를 7200원에 구매했다. 빵 2개에 만 원을 주고 살

뻔했는데, 나의 소신을 지키며 2개나 더 많은 포켓몬 빵을 사다니 뿌듯했다.



그날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아들에게 포켓몬 빵을 내밀었다. 엄마 최고라며 척척 엄지를 치켜세우고는 찐한 포옹을 해주는 아들. 평소에도 애정표현과 스킨십이 짙은 녀석이지만 이 날따라 찐으로 농익은 애정표현을 해주었다. 그리도 좋을까? 평소에 달달한 빵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아들은 스티커를 가지려면 빵을 다 먹어야 한다는 나의 요구에 초코빵을 순삭 했다. 그러고도 기분이 좋아서 나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엄마, 오늘 왜 이렇게 착해?"



병원에 가던 날, 아들에게 나는 못된 엄마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가 나기보다는 피식 웃음이 났고, 서글프기보다는 귀여웠다. 그럼에도 똑같은 상황이 오면 여전히 나는 못된 엄마가 될 거라고 다짐했다. 몇 백만 원의 낭비도 아닌데, 분명해줄 수도 있었는데, 나는 나의 소신을 지키고 싶었다. 아이들 앞에서 낭비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어떤 게 진짜 소비인지 알려주고 싶었다. 언젠가 아들이 커서 어른이 되어 이 일을 회상한다면, 엄마가 포켓몬 빵을 사주지 않은 날에도 그럭저럭 착했다는 걸 알게 되길 바란다. 그런 날이 언젠가 오면 좋겠다.


"엄마, 나 이거 학교에 가져갈래. 그래도 되지? 애들한테 자랑할 거야."

고작 2개를 들고 가서 자랑한다는 아이가 이해가 되지 않아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음... 상관없는데 근데 친구들은 훨씬 더 많이 갖고 있지 않아?"

"어. 책을 가지고 있는 애도 있어. 스티커 모으는 책."

나는 괜한 놀림과 무시를 당할까 걱정이 일어 아이를 말렸다.

"근데 거기 가져가서 2개 내밀면 애들이 뭐라고 하겠어. 그냥 가져가지 말지?"

그러자 아들은 눈을 똥그랗게 뜨고 이야기했다.

"뭐 어때? 나는 2개 있다고 자랑하면 되지. 히히"

스티커를 바라보는 아들의 눈이 동그라미에서 하트로 바뀌어 있었다.



작은 것에 크게 감사할 줄 아는 아들을 보며, 그날 병원 가던 날 거금 오천 원을 들여서라도 사 줄 걸 그랬나 또다시 흔들렸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날 갖지 못했기 때문에, 아들은 지금 더 행복하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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