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는 신도시에 살고 있다. 네모 반듯하고 널따란 길과 양 길가를 단정하게 둘러싼 나무들이 즐비한 곳. 하지만 내 어릴 적 고향은 피난민들이 내려와 터전을 잡고 살았던 부산 끝자락으로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곳이었다. 그런 우리 동네에는 공공도서관이 없었다. 도서관에 가려면 버스를 타고 옆 동네에 나가야 했다. 정류장에 내려서는 가파른 언덕길을 한참 올라가야 했다. 날씨가 좋은 계절은 괜찮았지만, 학생인 내가 도서관을 찾는 시즌은 그것도 옆동네 도서관까지 가는 시즌은 주로 방학인 여름과 겨울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거나 이를 덜덜 떨며 도서관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곤 했다.
신도시에 살게 되어서 가장 좋은 점은 동서남북 어느 방향으로 가더라도 조금만 가면 도서관이 있다는 사실이다. 도세권은 아니지만, 차로 10분 거리에 도서관이 사방으로 즐비해 있어 나는 지금의 우리 동네가 좋다. 물론 어릴 적 말뚝박기 하고 땅따먹기 하는 골목의 추억이 그리워지기도 하지만, 그 시절 도서관이 이렇게 가기 쉬운 곳에 있었다면 나도 골목쟁이가 아니라 도서관 쟁이가 되지 않았을까? 책과 조금 더 빨리 더 많이 친해지지 않았을까? 도서관 매점이 이렇게도 싸고 맛나다는 사실을 일찍 알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도 살짝 든다.
요즘 나는 일주일에 3번은 도서관에 간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기 위해서 가기도 하고, 수업에 필요한 자료를 찾기 위해 가기도 하고, 아이를 위해 신청한 책을 가지러도 간다. 도서관에 가면 마음이 푸근해지기도 하고 답답해지기도 한다. 조용하고 고즈넉한, 도서관으로 내리쬐는 햇살이 나를 따스한 사람으로 비추어주는 것 같아 푸근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많은 책을 또 어떻게 가지고 가나 하는 마음에 답답해지기도 한다. 늘 조금만 빌려야지 하는 마음과는 헤어질 결심을 하고 양손 가득, 두 어깨 가득 책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도서관은 참 좋다. 도서관에 들어서면 종이에 입혀진 쾌쾌 묵은 냄새가 나는 참 좋다. 그 냄새는 비 오는 날 창문을 살짝 열고 뜨끈한 전기장판에 몸을 누이고는 책을 코에 박고 잠을 자던 내 유년시절을 불러오는 듯하다. 언제나 소리에 예민해서 음악도 주로 가사가 없고, 가사가 있더라고 조용히 읊조리는 곡을 좋아하는 내게 도서관은 ASMR만이 존재하는 곳 같다. 에어컨과 공기청정기, 난방기의 백색소음으로 둘러싸인 곳. 그 와중에 사락사락 책장 넘기는 소리가 겹겹이 쌓이는 곳. 도서관에서 바라보는 뷰는 어떠한가. 나는 내가 자주 가는 도서관의 자유열람실의 창가 한쪽을 사랑한다. 아이들 때문에 오래 머무를 수 없는 공간이지만, 언젠가는 이 통창의 여유와 매력을 하루의 매 시간마다 몸소 만끽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혹적이다. 책을 읽고 성장하는 푸른색과 책을 생각하면 붉어지는 마음의 색이 시시각각 변해가며 섞여 있는 곳이다.
도서관의 매력포인트들을 뒤늦게 알아버려서 아쉬운 점이 너무 많지만, 어쩔 수 없이 지금은 아이들이 하교하는 시간에 쫓겨 책을 빌리는 데에 급급하지만, 언젠가 땡전 한 푼 내지 않아도 누구 하나 자릿세를 요구하지 않는 통창 뷰를 마주하고 앉고 싶다. 좋아하는 책의 쾌쾌한 종이 눅은 냄새, 세월이 쌓여가는 냄새를 만끽하며 사르륵 찰랑의 소리를 나의 귓가에 쌓고 싶다. 어디에나 총량의 법칙은 존재하기에 어릴 적 멋모르고 놓쳐버렸던 도서관의 매력에 이제야 흠뻑 빠져들고 있다.
그래,
내일 또 도서관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