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천탕에 몸을 담갔다. 하늘은 뚫려있었고 차가울 것만 같았던 10월 오후의 공기는 후끈후끈한 노천탕의 공기에 맥없이 물러났다. 뚫려있는 하늘을 가로지르는 조명 불빛. 몸을 담그고 있는 맑은 물에는 조명의 빛이 비치어 반짝반짝 빛났다. 갑자기 손으로 잡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을 들어 꽉 쥐어보는 순간. 물은 스르르 빠져서 사라졌다. 다시 한번 양손 가득 반짝임을 들어 올려 내 안에 가두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소리도 없이 물은 흘러 없어져 버렸다.
문득 인생도 물과 같구나 생각이 들었다.
손에 꽉 쥐려고 하면 도망간다. 내 손안에 넣고 내 맘대로 쥐락펴락 하려고 하면 달아나고 없다. 컵에 담아 놓아도 어느 순간 스멀스멀 증발해 사라지고 만다. 사라지는 것이 싫어서 뚜껑을 꼭 잠가 두면 물은 썩은 채로 고여있는다. 인생도 손아귀에 넣으려고 애를 쓰면 애를 쓸수록 어긋난다. 그저 물처럼 흐르는 것은 흐르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오히려 내 곁에 두는 방법이 되는 것.
반짝임이 예뻐서 손아귀에 쥐고 있으려는 마음을 접고 찰랑이는 물을 그대로 천천히 들어 올렸다. 슬며시 들어 올리니 오랫동안 내 손에서 머물다 슬그머니 사라졌다. 그 형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하니 고유한 반짝임을 더 오랫동안 손에 담을 수 있었다. 인생도 그저 흘러가는 대로 즐기고, 반짝임을 느끼고 싶을 때는 천천히 다가가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또 사라지면 다시 살짝 손을 건네면 되는 것. 아름다움을 가두려 하지 말고 그 속에 풍덩 빠져들어 물 흐르듯 인생을 맡기면 되는 것.
물을 손아귀에 꼭 쥐려고 하는 마음에서 조금 벗어났지만, 아직도 사라지면 사라지는 대로, 흐르면 흐르는 대로 인생을 온전히 즐기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인생의 순리를 되새기며 흘러가려고 한다. 그래서 반짝거리는 하늘을 담은 물속에 몸을 담그고 그 흐름에 리듬을 맡겨본다.
물처럼 맑고 깨끗하게 찰랑이고 있는 인생을 있는 그대로 즐기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