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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Nov 03. 2022

생애 최후의 날 당신은 무엇을 먹을 건가요?

수능시험보다 어렵고 면접시험보다 난해한 질문

나이 들면 맛있는 게 없어진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열과 성의를 다해 건치를 자랑하며 LA갈비를 뜯으시던 아빠. 그 모습 때문에 나이 든다고 맛있는 게 없어질 리가 없다고 철석같이 믿고 살았다. 그런데 아직 불혹도 되지 않은, 얼마 먹지 않은, 어른의 나이에서 애송이에 불과한 나는 요즘 딱히 먹고 싶은 게 없다. 옛날엔 안 그랬는데, 나이 드니 먹고 싶은 게 없어져 간다. 이렇게 말하면 혹자는 배부른 소리 하고 있다고 말하겠지. 너무 풍족해서 그런가 하는 질문을 던져 생각을 더듬어 본다. 랍스터, 참돔 회, 대게, 최고급 스테이크,  중식 코스 요리 같은 건 코빼기도 잘 못 보는 사람인데.... 풍족해서, 배불러서, 등따셔서 그런 게 아니라 진짜 나이 들어서 그런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 또 이 논리를 적용시키기에는 무엇 하나도 맞지 않는 한 인간이 있었으니. 함께 사는 동거인이자 40대 중반을 열심히 항해하고 있는 신랑은 나이를 거꾸로 먹는지, 아니면 장인어른의 허풍을 점점 더 닮아가는지, 딱히 먹고 싶은 게 없다고 말 만한다. 입맛이 없다고 묻지도 않은 말을 강조한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청국장을 밥에 비비고, 계란 노른자를 터뜨려 입안 가득 음미한다. 파김치, 젓갈, 김치볶음 등 밥도둑은 절대 놓치지 않는다. 짠맛 다음에 단맛을 찾고 단맛 다음에는 짠맛을 찾지 않으면, 혓바닥과 위장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며 평소 나에게는 지키지도 않는 예의를 꼭 지킨다. 그런 광경을 매일 마주하니 나이가 든다고 맛있는 게 없어지는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도대체 뭐가 맞는 건지 모르겠지만, 날이 갈수록 딱히 먹고 싶은 게 없어지는 요즘. 나의 식욕을 돌게 한 질문이 있었다. <오무라이스 잼잼> 책을 덮은 순간 마주한 질문. 책을 읽는 동안에 어떤 음식의 그림과 묘사에도 쉬이 흔들리지 않았는데, 뒤표지의 한마디가 나를 흔들어 놓았다.



생애 최후의 날 당신은 무엇을 먹을 건가요?



이런. 수능보다 어려운 질문이 여기 있구나. 면접보다 난해한 질문이 여기 있구나 싶었다. 오늘 먹고 못 먹는 다면, 지금 이 한 끼가 마지막 식사라면 먹어야 할 게 너무 많았다. 그래서 처음엔 뷔페를 가야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뷔페 좀 다녀온 사람들은 알 터이다. 이것저것 다양하게 맛볼 때는 좋지만, 뷔페를 나서면서는 항상 기분이 나쁘다. 섞어 먹어서 기분이 나쁘고, 배가 너무 불러서 기분이 나쁘고, 그 덕분에 살살살 아파오는 아랫배 때문에 기분이 나쁘다. 생의 마지막 식사를 나쁘게 끝낼 순 없었다.



그럼 뭘 먹어야 하지? 가장 비싼 걸 먹자. 비싼 5성급 미슐랭 레스토랑에 가서 코스요리를 시켜먹는 건 어떨까? 적당히 양도 조절해 주니 기분 나쁘지 않게 다양한 맛을 맛볼 수 있지 않을까? 근데 그건 미지수였다. 내가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모르는 맛. 사람은 모르는 맛은 평생 안 먹어도 그리 섭섭하지 않지만, 아는 맛은 못 참지 않는가. 한번 도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다는 맛집의 수식어가 괜히 붙은 게 아니다. 내가 아는 그 맛들 대신에 오성급 미슐랭이라는 이름 아래 금가루가 뿌려진, 식용꽃이 올려진, 티스푼으로 먹어도 한 숟갈에 끝날 음식을 먹으며 생을 마감할 텐가? 아니 아니, 절레절레. 절대 그럴 수 없었다.



이번엔 아는 맛 중 최고를 찾아보기로 했다. 아는 맛 중의 최고는 엄마가 해준 밥이라는 말은 뻔한 거짓말이고, 엄마 손맛 같은 반찬이 정갈하게 차려진 솥밥 한상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평소 솥밥을 먹고 나면 거하게 먹은 것 같으면서도 더부룩하지 않고 소화가 잘 되어 나이가 들수록 좋아하던 메뉴였다. 하지만 그럼 내 소울 푸드인 후라이드 치킨과 맥주가 울고 있을 것 같았고, 맥주를 떠올리니 맑디 맑은 소주 생각도 났다. 평소에는 뒷날을 생각하여 쉬이 먹지 않는 소주를 생애 마지막 날에는 뒷날을 생각하지 않고 먹어도 된다고 생각하니 침이 꼴깍 넘어갔다. 알탕과 함께 홀짝홀짝 입안을 소독하는 알코올의 향도 놓칠 수가 없었다. 아... 생애 최후의 날 무엇을 먹을지는 도저히 결정할 수 없는 거였다. 이게 수능시험 문제였다면 나는 탈락하고 말겠다고 생각하며 더 이상 답을 찾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사는 동안 알차게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아는 맛은 아는 맛이라 먹고, 모르는 맛은 모르고 떠나면 아쉬우니까 먹어야겠다고. 그리 생각하니 갑자기 입맛이 돈다. 밤 11시 38분인데.......




혹시 나이가 들어 '요즘은 먹고 싶은 것도 없어'라는 생각을 한다면, 이 질문을 꼭 해보길 바란다.

없던 식욕도 생겨 다이어트는 내일부터라는 인생 진리를 깨우치고,

없던 의욕도 일어나 다시 걸어 나갈 삶의 활력을 찾게 될 테니까.



근데,,,, 생애 최후의 날 진짜 뭐 먹고 싶으세요?

딱 한 끼만 먹을 수 있다면, 뭐 드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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