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만날까'라는 질문에 '콜'할 수 있는 사이

마음 조각을 맞추어 주는 그런 사이

by 책닮녀

학창 시절에야 어릴 적부터 살던 동네였기에 오랜 친구도 있었고, 학원 친구, 성당 친구 다양한 친구들이 있었다. 내가 만나고 싶으면 그중 한 명을 선택해서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면 되는 거였다. 먼저 연락한 친구가 상황이 여의치 않아도 다른 친구에게 연락할 수 있는 선택지가 꽤 다양했다. 어른이 되고 직장에 다니면서부터는 친구들도 먼 지역에 살게 되고 각자의 스케줄에 얽매여 '오늘 만날까'라는 질문에 선뜻 대답할 수도, 또 선뜻 그런 말을 건넬 수도 없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저만,,, 그런가요?)



이제 나이가 들고 보니 동네에서 친해진 아이의 친구 엄마는 그저 아이의 친구 엄마 일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이들의 사이가 소원해지면 자연스레 멀어지고, 이사를 가면 연락이 뜸해지고 소원해졌다. 때로는 어떤 엄마들은 아이들 간의 경쟁에 열을 올리며, 자신의 아이가 경쟁에서 뒤처지면 질투와 분노로 연을 끊어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아이와 얽혀 있기에 속마음을 모두 보이는 건 패를 모두 까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드라마 속 장면에 학습되어 있었다. 때문에 아이 친구의 엄마와는 진심이 오가는 사이를 유지하는 게 참 어려웠다.




그 어려운 일을 내가 해냈다. 아이가 7살일 때, 유치원에서 만난 아이의 친구 엄마. S언니와는 별다른 접점이 없었는데 아이들 덕분에 자주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유치원을 마친 후 더 놀고 싶어 하는 바람에 서로의 집을 열어주었다. 어색하지 않은 듯, 어색한 사이로 그저 그런 아이의 친구 엄마로 지내왔다. 아이들이 8살이 되면서 S언니는 가까운 옆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아이들이 서로 떨어지게 된 사실이 아쉬워 이사 간 집에 몇 번 놀러 가면서부터 우리는 더 찐한 사이가 되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남편들의 성향도 비슷했고, 언니와 내가 가진 육아관이나 가치관도 비슷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만났지만 우리는 아이들의 교육 이야기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었고, 서로가 좋아하는 것, 서로가 먹고 싶어 하는 것에 더 관심 있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아이들 없이 만나는 것이 더 편한 사이가 되었다. 아이들은 방학 때 한 두 번 보는 사이가 되었지만, S언니는 마음을 터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나의 친구가 되었다. 그렇게 그 어려운 일을 제가 해냈지 말입니다.(물론 저 말고 다른 분들도 많이 해내셨겠지요???)




바쁘게 돌아가는 요즘 너무 피곤했다. 에너지가 안으로 향하는 I성향인 나는, 평소에 잠이 많기도 하고 잠을 많이 자야 생각이 또렷해지는 것 같아, 이번 주 휴일에는 푹 잘 거라고 마음속으로 혼자 약속을 해 왔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오전 스케줄이 꽉 차있었다. 금요일 단 하루만 달콤한 휴식 타임이 주어지는데, 어쩔 때는 공사다망한 주부이기에 이것저것 처리하느라 이마저도 쉬지 못하곤 했다. 이번 주 금요일, 그러니까 내일은 다행히 아무 일도 없어 반드시 푹 쉬고야 말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 맛있는 것도 먹고 싶고 사람도 만나고 싶다는 작은 속삭임이 들렸다. 당장 내일인데 누구에게 연락을 할까 생각하던 찰나, S언니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마침 언니에게 빌린 물건도 있었다. 다른 사람의 물건을 빌렸으면 얼른 돌려주어야 한다는 내 삶의 소신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잠을 포기하고 메시지를 보냈다.


"언니, 내일 시간 있어요?"

쏜살같이 답장이 도착했다.

"있지 있지."



물건을 돌려주겠다는 핑계로 우리는 급 번개 모임을 정했고, 내일 맛있는 밥을 먹으러 갈 예정이다. '오늘 만날까?', ' 내일 뭐해?'라는 갑작스러운 문자에도 거리낌 없이 콜을 외칠 수 있고, 또 때로는 거절도 쿨하게 외칠 수 있는 사이가 몇이나 될까? 나이 들면 친구 사귀기가 어려워진다는데 아이의 친구 엄마로 시작한 우리 사이가 이제는 아이가 없어도 돈독한 아니 더 끈끈한 사이가 되어서 좋다. 다음번엔 S언니의 '오늘 어때?' 문자가 오면 만사 제쳐두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음.... 근데 계획형 인간이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나저나 아이러니한 사실은 물건을 돌려주려는 목적으로 만나자고 했는데, 목적지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하기로 하면서 S언니는 물건은 다음 만남에 달라고 했다. 덕분에 또 만나야겠구나. 사람 만나는 걸 그리 즐기지 않는 내가 이 사람과의 만남은 참 좋다. 꾸밈이 없는 사이, 마음을 주고받는 사이, 내일은 또 어떤 마음 조각을 서로의 퍼즐에 맞추어 줄까? 두근두근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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