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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Nov 11. 2022

엄마의 유서는 궁금하지만

이왕이면 다음 기회, 이왕이면 한참 뒤에

지난주, 언니의 전화가 왔다. 평소 카톡에서 대화는 하지만 전화는 자주 하지 않는 현실 자매였기에 화면을 보자마자 무슨 일이 있구나 하는 예감이 들었다. 언제나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그랬다. 엄마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는 소식이었다. 뜻하지 않게 한 엑스레이 촬영에서 유방에 무언가가 보인다는 소견을 들었고, 전문 병원에서 종합 검사를 하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다. 평소 죽는 건 괜찮지만, 아파서 고생하면 온 가족이 힘들다며 건강에 관심을 많이 갖는 엄마셨다. 이곳저곳 아픈 곳은 많았지만 이렇다 할 큰 병은 없었던 엄마는 엑스레이에서 보이는 무언가가 크게 다가왔었나 보다.



엄마는 엄마 집 맞은편에 살고 있는 언니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병원 예약을 부탁했다. 그리고 하나 더 부탁했다. 엄마의 집으로부터 387km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나에게는 이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했다. 내가 알아봤자 멀리 있어서 할 수 있는 것도 없는데 괜한 걱정만 시킨다며 말하지 말라고 했다. 정확한 결과가 나오면 말하자고 부탁했다. 하지만 언니는 나에게 전화를 했고, 나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엄마 말을 듣지 않는 언니가 고마웠고, 나는 걱정을 했고,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엄마의 예상대로였다.




다음 날, 언니는 엄마와 아빠와 함께 병원에 갔다. 초음파와 조직 검사를 마친 후 만난 의사는 자신의 소견으로는 그리 나쁜 상황이 아니라고 말했다. '모양과 위치가 예쁘지 않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으레 '암'일 경우 의사들이 표현하는 그 묘사가 나오지 않았다. 의사들은 최선의 상황보다는 웬만해서는 최악의 경우를 상상케 하는 답변을 한다. 그럼에도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다행이었다. '조직 검사 결과가 나와봐야 정확하게 알겠지만요'라고 덧붙였지만.




희망적인 이야기를 주로 들었지만 나는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언니의 말에 따르면 엄마는 병원에 가기 전 유서도 다 써놓았다고 한다. 밤새 한 숨도 자지 못한 것 같다고. 있지도 않은 집의 유산을 정리하고, 홀로 남을 아빠의 밥을 어떻게 하면 좋을 것인지, 둘 밖에 없는 자매에게 줄 것은 또 무엇이 있을지 궁리하고, 자신의 흔적을 정리하며 시간을 보냈을 엄마를 생각하니 마음이 찡했다. 아직 그리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데, 엄마는 무엇이 두려웠을까? 무엇이 그리 급했을까? 결혼과 출산을 경험하고 엄마의 손이 필요한 부분은 어느 정도 벗어난, 다 큰 딸 둘의 무엇이 걱정되어 한 숨도 잠을 이루지 못했을까? 라는 물음표가 둥둥 떠다녔다. 눈물이 돌았다.



조직 검사 결과는 일주일 뒤에 나왔다. 그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언니와 엄마와 아빠는 일주일 전보다는 조금 성긴 마음이었지만 역시나 쫀쫀하게 긴장된 마음으로 병원에 갔다. 결과는 일시적인 호르몬의 변화로 생길 수 있는 것으로 6개월 뒤 검사를 거쳐 별 이상이 없다면 안심해도 된다고 했다. 6개월 뒤,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는 없지만 현재 암세포나 특별한 이상소견이 없다는 말은 우리의 쫀쫀한 마음을 한결 느슨하게 풀어주는 말이었다. 아무렇게나 구겨진 옷을 수증기를 내뿜는 스팀다리미가 다려주는 것처럼 촉촉하면서도 뜨뜻했다. 마음의 주름이 펴지는 것 같았다.

 



질병이 내 삶을 헤집고 들어올 때, 그것을 잘 다루기 위해서는 일단 두려움부터 넘어서야 한다. 두려움은 처음부터 없애야 할 감정이 아니라. 생길 때마다 다스리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 감정마저 거세된 삶을 바란 건 아니니까 말이다. 그럴 수도 없고.

                                                                      슬퍼하긴 일러요(수달 지음/느린 서재/135쪽)



 최근 읽었던 『슬퍼하긴 일러요』에서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두려움을 넘어야 했다. 결과가 나오기 전 미리 걱정하며 내 삶을 헤집을 필요는 없었다. 두려움 없는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도전과 시작과 꿈 그리고 소중한 것이 있다면 두려움은 늘 따라오는 것이 당연하다. 엄마가 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엄마가 아픈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두려움에 움츠러들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결과가 나오면 그때 생긴 두려움을 잘 다스리면 되는 것이라는 말이 나를 토닥토닥해 주었다. 



사람들은 질병을 질병으로 그 자체로 보지 않는다. '질병이 왜 내게 왔을까? 도대체 왜 하필 나일까? 내가 무엇을 잘못했길래?' 하는 생각에 얽매이곤 한다. 그러다 질병이 선물이고 축복이라는 이상한 결론에 도달하기도 한다. 하지만 질병은 그냥 질병일 뿐.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하나의 병일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걸 잊지 말자. 질병으로 인해 자신에게 축복이고 감사한 존재를 찾아내는 능력이 조금 더 빨리 많이 발휘될 뿐이다. 질병이 나에게 주는 의미를 찾느라 부디 귀한 인생을 흔들지 말기를. 그래서 나도 엄마의 병을 너무 앞서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6개월 뒤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아직은 모르지만 두려움을 덥석 붙잡고 불안이라는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나의 일상을 단단히 살아나가기로 마음먹었다.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고 나서야, 엄마는 언니에게 이제는 나에게 말해도 된다고 했단다. 언니의 문자를 받고 나는 천연덕스럽게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리 알고 있었지만 마치 하나도 몰랐던 것처럼 엄마에게 물었다. 괜히 엄마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엄마 뜻대로 해주고 싶어서, 결과를 들은 오늘에서야 모든 사건의 전말을 안 것처럼 이야기했다. 그리고 다행이라며 아빠 밥 차리느라, 집안일하느라 아등바등하지 말고 조금 더 편히 살라고 했다. 그리고 다시 평소 엄마와 통화할 때처럼 별일 없는 수다를 떨었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맞장구쳐 주고, 웃어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어서 할 수 있는 것을 최선을 다해 행동에 옮겼다.




아직 슬퍼하긴 일러요라는 제목이 유난히 맘에 들어온다. 아직은 엄마가 내 옆에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아이를 키우는 눈물 많은 30대 딸이다.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엄마와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게 좋다. 막막하고 답답할 때 전화해서 물어보면 무어라도 대답해 줄 엄마가 있다는 게 좋다. 유서를 쓰며 닥쳐올 미래를 조금은 두려워했을 엄마를 마음으로나마 안아주고 싶다. 



"엄마, 아직 슬퍼하긴 일러요. 우리 두려움이 닥치면 그때 다스려봐요.

두렵다는 건 아직 살고 싶다는 거니까. 우리 더 잘 살아봐요.

아, 그리고 엄마의 유서는 궁금하지만 다음 기회에 볼게요. 이왕이면 한참 뒤에 보여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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