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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Nov 12. 2022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다.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도 없고.

지난 금요일, 학교를 마친 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딸은 활기찬 목소리로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겠다고 했다. 금요일마다 일어나는 정기행사 같은 자유시간이었다. 나도 덕분에 나만의 시간을 조금 더 길게 즐기수 있어 좋았다. 얼마 뒤 나의 일을 끝내고 집으로 들어가며 딸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엄마...."


분명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열 달 동안 내 뱃속에 들어가 있었고 만 10년 동안 함께 살았기에 딸의 목소리만 들어도 어떤 상태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깜짝 놀란 나는 대답했다.

"어. 왜? 다쳤어? 싸웠어?"

4학년이 되면서 부쩍 친구들과 소소한 다툼이 많아졌다. 딸아이가 싸움의 당사자가 아니어도 함께 노는 무리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이 발생하고 토라져서 헤어지는 일이 생기곤 했다. 이번에도 그런 일이겠거니 생각했는데 딸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OO이가 내 뒷담화를 했대. 내가 없을 때 나 싫다고 했대. △△이 생일파티에도 나를 초대하지 말자고 이야기했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꾹꾹 눌러왔던 아이의 슬프고 복잡한 감정이 전화기를 타고 흘러간 내 육성으로 인해 팡 터져버렸다. 딸은 펑펑 울었다. 나는 당황했지만 애써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어. 울지 말고 집으로 올래?"



나는 최대한 침착하고 친절한 말투로 딸에게 말했다. 사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도 사람이고 내새끼가 최고인 도치맘이기에 OO 이는 도대체 자기가 뭔데 그런 말을 하고 다니냐고 찾아가 따지고 싶었다. 또 그런 말을 전달한 다른 친구들은, 그 이야기를 왜 쓸데없이 옮겨서 내 딸을 울릴까 하고 화가 치밀었다. 그러다 왜 친구들과 놀면서 이런 분란을 만드는지, 그따위 뒷담화즘이야 그냥 넘겨버리는 게 왜 안되는지 딸아이에게도 답답한 맘이 들었다.


 


곧 딸이 집으로 왔다. 큰 눈에 주렁주렁 매단 눈물이 나를 보고는 후드득후드득 비 오듯 떨어졌다. 자신을 험담 했다는 사실이 큰 충격이었나 보다. 자신은 나쁜 행동을 한 적이 없다고, 하지 않는다고 믿는 (정말 FM 스타일입니다) 딸에게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더구나 앞에서는 하하호호 함께 웃다가 뒤에서는 손가락질하는, 어쩌면 앞으로 살면서 냉혹하게 펼쳐질 우리 사회의 나쁜 단면을 처음 경험한 순간이었기에 아이에게는 무척이나 힘겨웠을 것이다. 나는 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러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어. 그 아이의 행동이 옳다는 게 아니야. 분명히 나쁜 행동이고 너는 절대 그러지 않았으면 해. 하지만 중요한 건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어. 또 그럴 수도 없고."



딸은 내가 하는 이야기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는 듯, 그냥 위로해주면 안 되냐고 말했다. 인생을 조금 더 산 나는 딸이 이 사건을 마음에 오래 담아두지 않기를 바랐고, 그래서 공감하고 토닥여주기보다는 이렇게 하면 된다고, 인생은 원래 그런 거라고, 4학년 아이에게는 눈곱만큼도 와닿지 않을 돌 다듬는 소리를 해댔다. 처음에는 엄마가 무조건 공감해주지 않는 것 같아 섭섭해하는 표정이었지만, 몇 시간 뒤 진정하고 이성을 되찾은 뒤에는 엄마의 말뜻을 알겠다며 OO 이와 부딪히지 않고 싶다고 이 사건을 일단락하겠다고 말했다. 오래 생각하고 자신만의 결론을 내린 딸이, 그리고 현명한 방법을 선택한 딸이 기특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타인의 평가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아무리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삶을 산다고 해도 우리는 함께 사는 사회에서 숨을 쉬고 터를 잡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함께 산다고 한들, 사회의 구성원이라고 한 들, 타인에게 얽매여 좌지우지당하며 살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내 마음의 주인은 나, 내 인생의 주인은 나니까. 다른 사람이 하는 말, 다른 사람의 눈빛은 그냥 흘러가는 장면일 뿐이다. 타인은 내 인생에 지나가는 행인 1 즈음으로 여기고 나의 인생 드라마를 매회 이어가면 된다. 줏대 있게 내 소신대로 스토리를 만들고 메시지를 찾아가면 된다. 그러다 보면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마음을 내어주는 사람을 만난다. 내 인생 드라마를 더 풍요롭고 재미있게 해주는 조연을 만나기도 하고 내 드라마에 좋아요와 댓글을 다는 팬을 만나기도 한다. 그럼, 그 사람들을 챙기고 아끼고 사랑하면 되는 것이다. 모두에게 꼭 사랑받을 필요는 없다. 부디 이 사건이 아이에게 소중한 경험이 되었기를.



그리고 한 가지 더. 내가 사랑을 준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반드시 나에게 사랑을 주어야 하는 건 아니라는 것도 미리 알고 있으면 좋겠다. 받아들이기는 힘들지만 살면서 겪게 될 인생의 씁쓸한 씬들을 너무 아프지 않게 너무 힘겹지 않게 마주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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