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에서 종으로 고개의 방향이 바뀔 때
나이가 들고나니 이제야 이해되는 엄마의 행동들이 몇 가지들이 있다. 당시에는 엄마는 왜 저럴까? 하는 물음표에 어떤 답을 해 보아도 납득할 수가 없었다. 세월이 흘러 엄마가 되고, 나이가 들고나니 나에게서 똑같은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이제야 그때 엄마가 그래서 그랬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을 짚어보려 한다.
1. 엄마는 왜 밥을 저렇게 드실까?
우리 집에는 무려 6인용 식탁이 있다. 기다란 벤치 의자에 개인의자만 해도 3개나 비치되어 있다. 식탁은 6인용인데 사람은 4인이니 솔직히 넉넉하게 쓰고도 남는다. 그런데도 나는 굳이 아이들 밥을 차리며 싱크대에서 끼니를 대충 해결하곤 한다. 사실 잘 안 챙겨 먹는 날이 더 많기도 하지만, 아이들에게 줄 고기를 굽다가 질겨서 못 먹을 거 같아 미리 잘라낸 부분에 김치를 얹어 밥을 먹는다. 식탁의자에 앉아 식탁에 놓인 몇 첩 반상으로 밥을 먹는 게 번거롭고 귀찮아 커다란 국그릇에 밥과 국을 담고는 대충 쓱쓱 비벼, 부엌 정비를 하며 밥을 몇 숟갈 집어넣고는 식사를 마무리한다. 커다란 식탁이 있어도 싱크대에서, 좋은 반찬이 있어도 찌개 하나로 밥을 먹는 엄마가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이제 내가 그러고 있다. 잠깐 엉덩이 붙였다 떼는 게 귀찮아서, 한번 앉아 있다 보면 쌓인 설거지가 더 하기 싫어져서, 내가 조금 덜 먹으면 이미 만들어 놓은 반찬을 아이들에게 더 줄 수 있어서 그래서 대충 끼니를 때운다. 그때의 엄마처럼.
2. 엄마는 왜 병원에 안 갈까?
나이가 꽤 드신 엄마는 이제 예전보다 병원에 잘 가신다. 가끔 허리나 다리가 아프면 한의원에 가서 침도 맞고, 감기 몸살로 몸이 찌뿌둥한 날에는 보험 처리가 가능한 병원에 가서 포도당 주사도 한 병 맞고 오신다. 하지만 내가 어릴 적 우리 엄마는 정말이지 병원에 가지 않는 사람 중 한 명이셨다. 머리가 아프면 머리에 끈을 싸매고 주무셨고, 다리가 아프면 고사리 손 같은 나의 안마로 만족하셨다. 한 숨자고 일어나면 낫는 다며 괜찮다 하셨다. 요즘 나는 30대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이가 시려 차가운 물은 마시지도 못한다. 김치냉장고에서 막 꺼낸 깍두기를 깨물 때는 큰 용기를 내야 한다. 그런 나에게 '엄마는 왜 병원에 안가?'라고 딸이 물었다. 그제야 알았다. 엄마가 병원에 가지 않고 꾹 참으셨던 이유를. 살기 바빠서였다는 것을. 죽을병이 아니기에 조금 참으면 또 잠깐은 잊히는 고통이기에 그냥 묻으셨다는 것을 엄마가 되고 알았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 있을 때는 나의 개인적인 일들을 처리하느라 바쁘고, 학교를 마치고는 아이를 케어하느라 바쁘다. 저녁이 되면 식사 준비, 설거지, 빨래 등 복합적인 집안일이 밀려오며 내 몸을 건사하는 시간을 가질 틈이 없다. 그래서는 안 되는 건데, 내 몸뚱이는 우선순위에서 가장 나중으로 밀려나게 된다. 요즘 엄마는 내게 그런 말씀을 많이 하신다. 늙어서 골병들지 않게 미리미리 병원에 가라고. 그게 서로를 위한 일이라고. 강의와 바쁜 일정이 마무리되는 12월에는 큰 맘먹고 치과 예약을 잡아야겠다.
3. 엄마는 왜 나에게 늘 예쁘다고 할까?
학창 시절 화장품과는 거리가 먼 학생이었다. 교복도 줄이지 않고 살짝 헐렁하고 단정하게 입는 게 좋았다. 그런 나에게 엄마는 늘 화장 안 해도 예쁘다고 말해 주었다. 얼굴에 왕여드름이 올라와 농익으면 학교에 어떻게 가지? 하는 걱정에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변하곤 했는데, 엄마는 그것도 모두 예쁘다고 해주었다. 고현정 뺨치게 뛰어난 미모도 아니었는데도, 엄마는 진짜 진짜 내가 예쁘다고 해주었다. 그 시절엔 내가 예뻐서 예쁘다고 해주는 줄로만 알았는데, 이제 엄마가 되고 보니 엄마는 나를 사랑하는 거였다. 사랑의 콩깍지가 씌면 무엇이든 예뻐 보이기 마련이니까.
막상 엄마가 되고 보니 내 자식이 제일 태권도를 잘하는 것 같고, 내 자식이 피아노를 제일 잘 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나도 있다. 무얼 해도 예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예쁘다. 어떻게 해도 그냥 후광이 비치는 느낌이다. 그래, 엄마의 '예쁘다'는 무한한 사랑이었다. 그 사랑 덕분에 나는 나를 믿고 아끼며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삐뚤어지지 않고 잘 클 수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늘 예쁘다는 말을 쏟아주려고 애쓴다. 받은 만큼 아니 받은 것보다 더 돌려주고 싶어서. 엄마의 '예쁘다'를 번역기를 돌리면 아마도 세 글자로 나오지 않을까? '사. 랑. 해'라고, 또는 '괜. 찮. 아'라고, 또는 '널. 믿. 어'라고.
지금 엄마는 왜 병원에 안 가냐고 묻는 나의 딸도 나이가 들면 나의 마음을 이해할까? 횡으로 흔들던 고개를 종으로 흔들 수 있을까? 아직 엄마의 맘을 다 헤아리기에는 갈길이 멀지만, 조금씩 엄마를 이해하게 되는 나이 먹어 가는 과정이 좋다. 엄마는 이게 맛있고 편하다는, 엄마는 괜찮다는, 엄마는 네가 제일 예쁘다는 그 새빨간 거짓말들이 사랑을 듬뿍 담은 찐 빨강이라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