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름 제대로 불러줍시다.
내 이름은 원빈인데 '원반아 원반아' 하고 이름을 부른다거나
내 이름은 원빈인데 계속해서 '동건아 동건아' 하고 부르면 기분이 어떤가요?
전자도 기분이 나쁘지만 후자는 참 속상합니다. 괜히 내가 동건이보다 아직 인지도가 떨어지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자존심도 상합니다. 더 열심히 분발하지만 사람들은 또다시 동건아 동건아 라고 부르죠.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동건이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원빈이와 동건이는 다른 존재인데 말이죠.
뜬금없이 무슨 이야기냐고요?
저는 그림책으로 여러 가지 활동을 합니다. 여러 사람들을 만납니다.
대부분 그림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림책을 좋아할 뿐, 그 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는 듯합니다.
매번 이름을 잘 못 부르거든요. 동화책이라고요.
그림책이 동화책이라는 범주에 속하는 걸까요? 동화책이 그림책이라는 범주에 속하는 걸까요?
정답은
누가 누구에게 속하는 관계가 아니라
각자 고유한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동화책의 사전적인 의미는 동화를 쓴 책입니다. 동화는 어린이를 위하여 동심을 바탕으로 지은 이야기를 말하지요. 어린이라는 대상을 분명하게 명시해 놓았습니다. 물론 어른들이 읽을 수도 있지만요. 동화의 내용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대체로 공상적이고 서정적이고 교훈적인 내용이어야 한다는 것이죠.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이니까요. 또 한 가지 특징은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 '글'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림은 부수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더러 있을 수도 또 아예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림책은 0세부터 볼 수 있는 책입니다.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지요. 글을 모르는 누구라도 볼 수 있어요. 그리고 동화와는 다르게 어른들을 위해 무섭고 어둡고 잔혹한 부분을 담은 그림책도 있어요. 어린이만을 위한 책이 아닌 어린이부터 누구나 볼 수 있는 책입니다. 또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그림'이 서사를 이끌어나가는 책입니다. 반대로 글은 없어도 되고요. 그림 속에 숨겨진 의미는 독자의 몫으로 사람마다 상황마다 매우 다르게 해석되기도 합니다.
많은 분들께 동화와 그림책의 범주에 대해 질문을 드리면 당연히 동화를 더 큰 덩어리로 생각합니다. 더 오래되었고, 더 큰 몸집을 가진 독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죠. 하지만 그림책은 결코 동화의 일부분이 아닙니다. 동화와 견주어 본다면 오히려 그림책이 더 넓고 다양한 곳까지 손을 뻗고 있어요. 그림책은 동화와는 서로 다른 독립된 존재입니다. 그림과 글과 책의 질감과 형태에 따라 천차만별로 모습을 바꾸는 그림책만의 독특한 매력을 지녔다는 걸 잊지 마세요.
그리고 꼭, 그림책이라고 불러주세요. 이름을 잘못 부르거나 착각하면 의가 상합니다.
어릴 적 할머니는 제게 언니 이름을 부르고, 언니에게는 사촌언니 이름을 부르고, 사촌언니에게는 막내 이모 이름을 불렀어요. 그런 기억, 다들 있으시죠? 그래서 속상했던 기억이요. 우리 친한 사람들끼리 그러지 맙시다.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그러지 맙시다. 자주 볼 사이끼리 그러지 맙시다. 원빈이는 원빈이고 동건이는 동건이잖아요. 다르잖아요. 잘생겼다는 이유로 착각하지 말아요. 동화는 동화고 그림책은 그림책이니까요.
그. 림. 책이라는 이름으로 꼭 불러주세요.
정중하게 부탁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