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 좀 해본 엄마가 하는 말
"엄마, 엄마 때도 포카가 있었어?"
여기서 포카는 연예인들의 포토카드를 일컫는 용어다.
"그럼. 당연히 있었지. 엄마는 팬시점에 매일 가서 새로 나온 것들 다 샀어. 또 직찍도 그때는 팔았는데, 직찍은 공연 가서 직접 찍은 사진인데 엄청 비싸서 엄마는 못 샀어."
젝스키스의 팬이었던 나는 라떼 시절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 시절 소녀 감성으로 돌아가서.
"그리고 엄마 때는 연예인들이 나오는 잡지가 많았어. 인기 있는 연예인들 사진과 인터뷰를 담아놓은 책인데, 치과에 가면 있는 책 알지? 화장품 많이 나오는 책 말이야."
"아, 그런 걸 잡지라고 하는구나."
아이는 궁금하다는 듯 눈빛을 반짝이며 내 이야기가 더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잡지를 여러 권 살 수 없으니까 친구들끼리 하나씩 나눠서 사고는, 서로 좋아하는 연예인 부분만 잘라서 바꾸곤 했어. 엄마는 HOT 팬이랑 GOD팬이랑 서로 잡지를 교환하곤 했지. 그러다가 앞면은 젝키인데 뒷면은 god면 서로 줄 수 없다고 싸우고 다른 거 더 줄테니까 꼭 달라고 막 협상하고 했었는데."
"그 포카랑 잡지는 어디 있어?"
결혼할 때 두고 온 포카와 잡지는 엄마 집에 굳건히 자리를 지키다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얼마 전 인테리어를 새로 바꾸며 공사에 들어갈 때 아무래도 어딘가에 버려진 듯했다. 심지어 젝스키스 공식 팬클럽 우비도 집에 고이 두고 왔는데 엄마가 버렸다니 두둥 너무 아까웠다. 당시 유행했던 젝스키스 멤버들의 DNA를 이용한 목걸이도 비싼 돈 주고 구매했는데 그렇게 쓰레기통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드라마 응칠의 한 장면 마냥 펑펑 울며 엄마한테 소리칠 뻔했다는;; 그나마 앨범은 몇 개 건져왔으니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리고 몇 해 전 젝스키스 재결합 단독 콘서트에 가서 구매한 굿즈들은 지금 내 방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소중하게.
그 시절, 부산에서 덕질을 하는 것이란 참 어려웠다. 흔하지 않은 공연에 몇 시간씩 줄을 섰는데 공연이 취소된 적도 있었고, 보수적인 아빠의 허락을 받아 딱 한번 부산 KBS홀에 친구 따라 가게 되었는데, 데려가기로 한 친구와 연락 두절이 되면서(당시에는 핸드폰이 없었고 나는 공연 참가 티켓과 방법은 친구가 알았기에) 실컷 준비한 선물(직접 디자인한 십자수 쿠션이었답니다)조차 전달하지 못했었다. 집에 가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젝키의 갑작스러운 해체로 마지막 직관의 기회인 드림콘서트를 가기 위해 몰래 가출 아닌 가출을 하기도 했었다. 쉽지 않은 덕후의 길이었지만 학생 시절 무언가를 간절히 좋아해 본 기억들, 그걸 얻기 위해 애썼던 마음은 지금도 내 마음을 설레게 만든다.
연예인을 좋아하는 게 뭐 죽기 전에 반드시 해 보아야 할 일은 아니지만, 난 어릴 적 무언가를 미친 듯이 좋아하는 경험이 삶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 누구든지 언제라도 꼭 해보면 좋겠다. 그리고 나의 아이들도 경험해보면 좋겠다. 좋아하면 상대의 단점도 장점으로 볼 줄 알고, 자신이 가진 것들을 아낄 줄 도 알고, 또 자신의 기회비용을 좋아하는 것에 쏟을 줄도 알게 되니까. 좋아하는 감정이 극에 치달았다가 서서히 식어가는 과정도 자연스럽게 배워 가기를 바란다. 좋아하는 대상을 자신만의 소유로 만들 수 없다는 인생의 씁쓸한 현실도 덕질을 통해서 깨우칠 수 있기를. 무언가를 진짜 많이 좋아해 본 경험은 자신의 일과 삶을 사랑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좋은 시행착오가 될 거라 생각하기에 이 세상의 모든 덕질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