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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Nov 24. 2022

이변 뭐 그게 별건가요?

그까짓거 우리가 하면 되죠!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부산의 언덕 위에 자리한 한 고등학교, 한가로운 월요일의 오후가 이어지던 그때. 와아~~! 학교와 뒷산이 동네가 떠나갈 듯한 함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네, 2002년 월드컵 조별 리그 두 번째, 미국과의 경기가 있던 날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고등학생이었고요. 뜨거운 함성이 가득 찬 거리에 나가 응원하지는 못했지만, 수업시간에 학교에서 각 교실마다 커다란 TV를 틀어놓고는 한마음 한뜻으로 대한민국을 응원했지요. 당시 저는 방송실에서 축구 중계 송출을 담당하느라 선배 몇몇과 동기들과 함께 있었는데요. 전반 미국의 선두로 의기소침해 있던 대한민국, 후반 테리우스 '안정환'선수의 동점골로 학교가 휘청거리는 걸 몸소 느꼈답니다. 우당탕탕 쾅쾅하는 소리와 모든 음역대의 소리를 아우르는 함성은 이러다 16강 출전도 못 보고 학교가 붕괴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답니다. 무승부로 끝이 나긴 했지만 앞으로 일어날 4강 신화는 눈곱만큼도 꿈꾸지 못한 채, 그저 기쁜 맘으로 두 팔을 높이 들고 소리를 질러댔었죠. 



2002년의 열기는 지금의 MZ세대는 상상도 못 할 만큼 뜨거웠습니다. 사실 저도 고딩이라 차에 올라가는 경험을 하진 못했는데요. 저와 함께 사는 동거인은 당시 대학생이었기에 버스에 올라가 소리치는 사람들의 장단에 맞춰 오늘만 살 사람처럼 열심히 응원했다고 합니다. 월드컵 응원 이야기만 나오면 '라떼는 말이야'가 멈추지 않을 정도랍니다.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부둥켜안고는 어깨동무를 하고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아침을 맞이했다는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저는 대학생이 되고 난 후 2006년 월드컵 응원을 거리에서 해보았는데요, 2002년만큼의 감동이 없었던지라 솔직히 조금 아쉬웠습니다. 당시 같이 응원하던 사람들이 전부 CC였고 저는 솔로였기에 더 재미없게 느껴지던 것도 있었고요, 골을 넣어도 부둥켜안을 사람이 마땅히 없더라고요. 하하. TMI는 여기까지 하는 걸로 할게요.




오래 기다렸습니다. 2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한국 축구는 우리의 기대에 많은 상처를 냈습니다. 우리의 믿음에 많은 의심의 혹을 붙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또 믿고 기대하고 응원합니다. 졌잘싸라는 말이 있지요? '졌지만 잘 싸웠다.' 과정의 의미를 두는 표현이 참 좋습니다. 하지만요 이번에는 이잘싸가 되면 좋겠습니다. 이겼고 잘 싸웠다고요. 모쪼록 어느 누구 하나 다치지 않고 오랫동안 바라 왔던 꿈의 무대에서 자신의 역량을 훨훨 펼치면 좋겠습니다. 




월드컵의 매력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이변의 향연이지요? 랭킹과는 무관한 경기 결과가 우리에게 뜻밖의 기쁨을 또 나아갈 희망을 안겨주곤 합니다. 지난 월요일을 시작으로 진행되고 있는 조별 리그에도 이변이 속속들이 출현하고 있어요. 피파랭킹 51위 사우디아라비아는 강력한 우승후보이자 랭킹 3위 아르헨티나에게 짜릿한 역전승을 했고, 대부분 독일의 승리를 점쳤던 피파랭킹 11위 독일과 24위 일본의 경기는 우리의 라이벌 일본이 예상을 깨고 승점을 챙겼습니다. 오늘은 우리 차례입니다. 랭킹 28위가 14위를 넘어서는 경기를 마주하기를, 2002년의 고등학생 때 느꼈던 그 짜릿함을 아줌마가 되어서도 다시 한번 느껴보기를 간절히 바라며 대~ 한민국! 짝짝짝 짝짝!




이변 뭐 그게 별건가요?

그까짓 거 우리가 하면 되죠!


대한민국 파이팅입니다.





덧: 오늘 밤 치킨 주문 예약하셨나요? 예약 안 하시면 오늘 안에 못 먹어요. 지금 서두르세요!



*사진출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인스타그램 @thek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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