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좋은 걸 어떡해
"빨리 먹어."
"도대체 언제 먹을 거야?"
"1시간씩 밥 먹는 건 너무하지 않니?"
"물지 말고 씹으라고."
육아는 흐름이 있다. 신기하게도 첫째가 말을 잘 들으면 둘째가 지지리도 말을 안 듣는다. 첫째가 밥을 안 먹고 속을 썩이면 둘째는 기가 막히게 밥을 잘 먹는다. 둘이라 서로의 상황에 맞게 눈치를 보며 적응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둘이 상대적이라 비교가 되니 내가 그렇게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 보면 결론은 육아는 쉴 틈 없이 힘들다는 것이다.
아이나 다를까 먹는 것에 예민 왕이었던 첫째가 십 대가 되자 민감도가 조금 누그러졌다. 새로운 음식도 맛은 보고 싫어하는 음식도 최대한 먹곤 했다. 이제 좀 살 것 같구나 하고 생각하는 찰나, 둘째가 치고 들어왔다. 새로운 반찬만 찾는, 반찬 투정에 입에 물고 씹지 않는 건 주 특기고, 30분 동안 수다 떨며 놀다가 10분 만에 밥을 쑤셔 넣으니 케케켁 하기도 일쑤였다.
요 며칠 태권도 학원 일정으로 저녁 6시에 등원하게 된 터라 학원에 가기 전, 일찍이 밥을 먹였다. 4시 40분에 차려주었는데 식사를 끝낸 시간은 5시 40분. 정말 꼬박 한 시간을 밥 먹는데 들였다. 달래도 보고 혼도 내보고 잔소리도 해 보고 회유도 해보았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귀여워서 죽고 못 사는 둘째지만 이럴 때는 정말 눈도 마주치기 싫을 정도로 얄밉다. 밉고 미워서 나는 손도 잡지 않고 아이와 집을 나섰다. 아이는 모르는 척하는 건지, 알면서도 그러는 건지 평소처럼 나에게 다가와 작은 손을 내 손바닥에 꼭 맞추어 잡았다. '너 너무 미워'라고 외치며 얼어 있던 내 마음이 손의 열기를 타고 스르르 스르르 녹고 있었다. 나는 살며시 말을 걸었다.
"어휴, 엄마가 정말 너 때문에 못살겠다."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헤헤헤"
"진짜야. 너 때문에 엄마 진짜 힘들어."
눈에 한가득 담았던 웃음을 지우고는 아이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엄마."(꼭 잘못했을 때만 존댓말을 씁니다. 눈치 9단)
순간 웃음이 새어 나오려는 걸 억지로 눌러가며 나는 쏘아붙였다.
"뭐가 죄송한데? 무엇 때문에 엄마가 힘든지 알아?"
"밥 늦게 먹는 거요."
"또?"
"엄마 말 안 듣고 장난친 거요."
맙소사. 이렇게 잘 알고 있는데 도대체 왜 안 듣는 걸까? 나는 아이가 얄미워 태연스럽게 물었다.
"또? 또 없어? 또 없냐고?"
내 맘이 누그러진 걸 어떻게 알았을까? 눈치 백 단인 아이는 눈웃음을 잔뜩 장착하고는 말했다.
"귀여워서?"
풉.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둘째이자 막내라 엄마도 아빠도 누나도 귀엽다 귀엽다했더니 이런 부작용이 있을 줄이야. 아이는 내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진짜 귀여워서 못살겠다는 말이 마음속에서 흘러나왔다. 그렇게 아들과 나의 신경전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일단락되고는 우리는 손을 꼭 붙잡고 걸었다.
이 맛에 육아를 하는 거지. 하루에 몇 번씩 '맙소사'를 외치고 '오! 주여'라는 주문을 외우게 하지만, 고된 하루의 중에 건넨 한마디에 피식하고 웃음을 머금게 하는, 손만 잡고 있어도 심장까지 후끈후끈해지는 게 육아다. 육아는 흐름이라는데 사실 흐름 탈 겨를도 없이 쉴 틈 없이 바쁘지만, 나를 바라봐주고, 내가 주는 사랑을 알아주고, 나에게 받은 사랑을 다시 곱절로 표현해주는 아이들 덕분에 꽤 해 볼만한 게 육아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요. '맙소사!'
글 쓰기 전에 밥차려줬는데
아직도 먹고 있네요.
'오! 주여'
그래도 귀여우니 봐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