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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Dec 07. 2022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내가 내 감정을 휘두르지 않기 위해

"악! 어떡해?"

등교 준비를 하고 있던 딸아이의 방에서 흘러나온 소리였다. 헹구던 접시를 내려놓고는 수도꼭지를 잠금쪽으로 돌렸다. 손에 묻은 물기를 바지에 대충 닦으며 딸아이의 방에 뛰어갔다. 

"왜? 왜? 무슨 일인데?"

비명 외에는 어떤 말도 이어지지 않아 느낌이 싸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딸아이의 방 한쪽에 깨진 유리가 흩어져 있었고, 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이 침대 맡에 올려둔 크리스마스 장식품인 워터볼이 산산조각 나 있었다.



"뭐야? 조심했어야지! 엄마 오늘 빨리 나가야 하는데!!!!"

괜찮냐는 말을 먼저 했어야 했는데, 괜찮아 보이는 모습을 눈으로만 확인하고는 날 선 언어를 내뱉었다. 더구나 오늘은 아이들을 보내자마자 처리할 업무 때문에 외출을 앞두고 있던 터라 더 예민하게 반응이 나왔다.

"......"

딸은 말이 없었다. 뜻하지 않게 일어난 일 때문에 딸도 적잖이 놀란 듯했다. 엄마에게 혼날까 봐 걱정하며 떨고 있는 걸 알면서도 나는 더 쏘아붙였다.

"왜 하필이면 오늘이야? 지금 나가야 하는데. 왜 하필이면 오늘이냐고! 가방 가지고 나가!"

속에서는 부글부글 화가 치밀어 오르고 왜 그렇게도 조심성이 없을까 아이가 이해되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해야 하는 일을 화내지 않고 하면 내 감정이 덜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화내면 화낼수록 내 기분만 상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씩씩거리며 깨진 조각을 치우기 시작했다. 휴지로 조각을 닦아내고, 다시 걸레로 바닥을 훔지고, 청소기를 돌려 완벽하게 깨끗한 상태로 만드는데 고작 10분이 흘렀다. 많이 늦어지지는 않았지만, 예상보단 늦어진 출발 시각에 서둘러 길을 나섰다. 



운전대를 잡고도 나는 계속 화가 났다. 한숨을 푹푹 내쉬며 길을 떠났다. 내비게이션의 도착 시간만 확인하느라 라디오를 켤 여유도 없었다. 적색 신호를 받고 나서야 겨우 라디오의 온 버튼을 눌렀다. 늘 듣던 라디오 프로그램이 오프닝을 시작했고, 곧이어 오프닝 곡이 흘러나왔다. 마치 내 맘을 알기라도 하는 듯, 내가 사랑에 마지않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건 바로 젝키의 <커플>. 아이와의 뜻하지 않은 소란으로 쩍쩍 갈라지고 쌩쌩 찬바람이 불던 마음에 단비가 내리고 햇살이 내리쬐는 것 같았다. 혼자 있는 차 안에서 노래를 크게 따라 불렀다. 가슴 아래 배에서 울리기 시작한 소리가 목구멍을 타고 나와 입 밖으로 퍼지면서 내 안에 응어리져 있던 무언가도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듯했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그제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에게 보여준 내 행동이 조금 부끄러웠다. 지난주에 내가 실수로 시간을 착각했을 때, 남편에게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따졌다. 어제만 해도 아들이 핸드폰을 놓고 갔다는 전화를 받고는 잔뜩 화가 난 남편에게 실수로 그런 걸 뭘 그렇게 화내냐고 되물었다. 그래 놓고선, 내 몸을 움직여 치워야 한다는 이유로, 내 계획을 흐트러 놓았다는 이유로 아이를 몰아세웠다. 실수해도 괜찮다고 말하고 다니면서 사소한 실수에 불같이 화를 내고 마음을 끓이고 감정을 허비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는 걸, 실수해도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또 설령 큰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책임지고 다시 옳게 만들면 된다는 걸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한결 가벼워진 기분으로 젝키의 커플을 흥얼거리며 목적지에 도착한 나는 빠르게 일을 처리했다. 비록 계획한 시간보다 늦게 출발했지만 일을 끝낸 시간은 오히려 예상보다는 5분 정도 빨랐다. 아이의 작은 실수 덕분에 나는 착오 없이 일을 처리하려고 심혈을 기울였고, 더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였으며, 그 덕분에 일을 모두 마칠 수 있었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내가 내 감정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 이 말을 다시 내뱉어 본다. 타인의 행동이 나의 마음을 옥죄어 올 때, 내가 하려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마음만 급하게 달려 나갈 때, 화가 나서 답답할 때 외쳐야지.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딸에게 웃으며 물었다. 도대체 어쩌다가 깨트리게 되었냐고.

그리고 딸에게 말했다. 안 다쳐서 다행이라고. 다음부터 조심하자고.

딸은 실수로 건드렸다고,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나는 다시 대답했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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