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닮녀 Dec 19. 2022

여행지 필수코스, 동네책방 방문기

네모나고 기다란 책상이 정겨운 곳, 그림책방 <소소당>

전주 여행 2일차이자 마지막 날입니다. 어제 남긴 연화정 도서관 방문기에 이어 동네책방 방문기를 남깁니다.





'잠시 뒤, 우회전입니다.'


언제나 신뢰감 넘치는 여성의 목소리는 작은 골목 사이로 우리를 안내했다. 작은 동네 책방은 작고 작은 골목에 있는 법이니까. 그래서 더 정겨운 법이니까. 지난밤 쌓인 눈이 채 녹지 않은 좁다란 골목길로 들어서자 저 멀리 '소소당'이라는 이름의 간판이 햇볕을 듬뿍 받아 빛을 내고 있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답게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신랑은 혼자 차에 둔 채, 아이들과 책방으로 향했다. 입구를 들어가기 전 의자를 지키는 눈사람에게는 입이 없었지만 우리를 향해 싱긋 웃는 듯 느껴졌다. 추운 날씨였지만 눈사람은 전혀 추워 보이지 않았다. 책방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온기를 그대로 받고 있는 듯 보였으니까.



문을 열고 들어서자 네모 반듯한 작지만 어느 한 곳도 허전하지 않게 채워져 있었다. 왼편에는 카페를 위한 부엌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고, 오른쪽에는 책이 삼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가로로 쌓여있기도 하고 전면으로 배치되어 있기도 하고, 세로로 꽂혀있기도 하고, 중간중간 선물박스와 책방지기 추천 책도 큐레이션 되어 있었다. 중앙에는 네모나고 기다란 책상과 의자가 몇몇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책방의 책을 구매해서 보아도 좋고, 자신의 책을 가져와 차 한잔 시켜놓고 오랫동안 즐기다가 가도 좋다는 메모가 적혀 있었다. 그야말로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공간을 내어주고 싶어 하는 책방지기님의 마음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그 네모나고 기다란 책상에 앉아 있던 마음이 따스해 보이는 책방 지기님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반갑게 맞아주셨다.  




"아까 전화한 분이시죠?"

"네. 맞아요."




작은 책방은 방문하기 전, 전화가 필수다. 더구나 신랑과 동행하는 경우에는 허탕을 치게 되면 다시는 책방에 가지 않겠다고 하는 경우가 발생하기에 출발 전 수화기 너머 육성을 확인하고는 책방으로 향했던 것이다. 우리가 올 걸 기다리고 계셨던 책방 지기님은 아이들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며 다가오셨다. 가끔 동네 책방에 가면 너무 시크한 책방지기를 만나곤 한다. 책 사진도 전혀 찍을 수 없고, 책을 넘겨 보는 것도 매서운 눈초리로 지켜보며, 책을 추천해 주실 수 있냐고 물으면 개인의 취향도 모르는 상태에서 함부로 추천하는 건 실례라는 과도한 냉철함을 유지하는 책방지기를 만난 적도 있다. 하지만 소소당의 책방지기님은 전혀 달랐다.




몇 학년이냐고 물으며 다가오셔서는 아들의 취향에 맞게 책을 내미셨다. 네모나고 기다란 책상에 앉아 책을 보라며 환한 미소로 말씀하셨다. 책과 그다지 친하지도 안 친하지도 않은 아들이지만 좋아하는 분야를 만나자 쪼르르 달려가서는 엉덩이를 붙였다. 딸과 나는 책방지기님이 아들과 대화하는 틈을 타 좋아하는 책들을 구경했다. 우리 집에 있어서 반가운 책들을 넘겨보고, 좋아했던 책 시리즈를 발견하고는 서로에게 보여주었다. 소설에 관심이 많은 딸아이가 나와 함께 읽던 <H마트에서 울다>를 들추자 책방지기님은 매력적인 이야기가 담긴 고전을 딸에게 권해주셨다. 요즘 대형서점의 평대를 장식하는 요즘 세대 작가들이 쓴 조금은 자극적인 청소년 소설을 자주 읽었던 딸에게 고전의 가치에 대해 알려주셨다. 엄마 말은 그냥 흘러버리지만, 엄마 말고 전문가의 말은 혹하는 나이이기에, 딸은 고전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아들이 앉아 있는 네모나고 기다란 책상의 한쪽을 차지하고 앨리스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두 아이가 모두 내 손을 놓고 책과 손을 잡자, 나는 그림책 코너에 기웃거렸다. 이 모습을 놓치지 않는 책방지기님은 '엄마는 그림책을 좋아하시는군요'라고 말씀하시면서 몇몇 그림책을 권해주셨다. 좋아해서 이미 소장한 책도 있고, 좋아하지만 소장하지 않은 책도 있고, 표지만 아는 책도 있고, 전혀 모르는 책도 있었다. 전혀 몰랐던 <좋은 순간에...>라는 책과 표지만 알고 내용은 자세히 보지 않았던 <우리의 모든 날들>이라는 책과 좋아하지만 소장하지 않았던 <작은 연못>이라는 책을 택했다.



나도 네모나고 기다란 책상에 앉아 따뜻한 작은 그림책방의 정서를 즐겨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동네 책방에 왔다가 배가 고파지면 차에 앉아 있는 신랑에게 동네책방은 좋은 기억으로 남지 않을 테니까. 다음번에는 차에 앉아 있는 것조차 꺼려할 동거인을 배려해 아이들에게 집에 가서 책을 읽자고 말했다. 동네 책방의 활성화를 위해 더 많은 책을 구매하고 싶었지만 지갑의 사정을 고려해 많이 사지는 못했다. 그래도 동네 책방이 오래오래 남아주기를 바라는, 누구나 네모나고 기다란 책상이 언제나 이 자리에 있어주기를 바라는, 또 그림책 작가님들에게 다음 작품을 만드는 힘을 보태어 주기를 바라는 내 마음이 책방지기님께도 전해졌는지 예쁜 사은품도 넉넉히 담아주셨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한아름 책을 안고 차로 돌아가는데 돈을 지불하고 책을 사 왔지만 뜻밖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듯 마음이 푸근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반가움이 그랬고, 책을 권해주시는 모습에 진심이 담겨있어 그랬고, 네모나고 기다란 책상은 곳곳에 묻어있는 정겹고 아늑한 향이 그랬다. 선물처럼 느껴졌다.




역시 여행지에서의 작은 책방은 옳았다.

언젠가 꼭 다시갈지도.

네모나고 기다란 책상 한 귀퉁이에서 책을 읽을지도.

책방지기님과 마음껏 책 수다를 떨지도.





제가 방문한 곳은 그림책방 <소소당>이라는 곳입니다. 전주에 위치한 작은 동네책방입니다. 일전에 동네책방이 예고 없이 문을 닫아 헛걸음을 한 경험 때문에 불편한 점을 썼는데요, 이곳은 빨간 명절날만 쉰다고 하니 책방지기님의 열정이 느껴지시죠?  그림책방이라고 간판에 쓰여 있지만 그림책뿐만 아니라 다양한 책들이 채워진 곳입니다. 좋아하는 책의 분야를 말하면 재미있는 책을 줄줄이 쏟아내는 책방지기님 덕분에 다양한 책을 만나볼 수 있는 곳이지요. 작가와의 북 토크(저도 출간 후 언젠가 여기서 북 토크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네요. 하핫), 책모임 등 여러 가지 활동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어요. 가까이 사시는 분이 무척이나 부럽습니다. 글에서 등장한 네모나고 기다란 책상에서 꼭 책을 읽으며 차 한잔 하는 시간 가져보시길 권해드려요. 책이 얼마나 다정한지, 동네 책방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책방지기님이 얼마나 진심인지 느끼실 테니까요. 책방에서의 시간이 외롭고 헛헛한 때로는 쓸쓸한 당신의 마음에 포근한 양식이 되어 줄 겁니다.

 

소소당 동네책방(@sosodang_bookcafe) • Instagram 사진 및 동영상

작가의 이전글 한옥 카페 아니고요, 도서관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