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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Dec 26. 2022

내가 청소를 하는 이유

외출하고 돌아오자마자 옷을 벗어 걸어두고 팔을 걷어붙였다. TV장에 놓인 자질구레한 아이들의 용품을 아이들 방으로 갖다 놓거나 서랍 안으로 숨겼다. 소파 뒤 공간에 아무렇게나 잔뜩 쌓아놓았던 캠핑 용품도 차곡차곡 정리해 밖에서는 보이지 않도록 만들었다. 온 가족이 마스크를 사용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어둔 마스크를 가지런히 정리했다. 책장에는 뽀얗게 먼지가 내려앉은 부분이 많았다. 작은 청소기로 빨아들이고 쓱쓱 닦았다. 거실에 놓인 책상에 마구잡이로 쌓여있는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들은 한쪽으로 옮겨 정리했다. 책상 위에는 여전히 레고가 있어 지저분해 보였지만 그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부엌으로 향했다. 부엌옆에 딸린 작은 베란다가 우리 집의 유일한 베란다, 즉 잡다한 모든 것의 저장 공간이었다. 몇 달째 나뒹굴고 있던 다 먹은 쌀통을 싱크대로 가져와 씻어 엎어두었다. 냉장고를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냉장고까지 정리하는 건 차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냉장고는 내가 열면 되지 뭐라고 생각하며 미련 없이 마음을 접었다. 대신 보이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정리하기로 했다. 베란다에 마구잡이로 쌓아놓았던 커피, 두유, 간식 등등을 부엌 어딘가에 쏙쏙 넣었다. 켜켜이 쌓아둔 영수증은 갈기갈기 찢어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부엌 정리가 끝났다고 생각한 찰나, 주방 후드가 눈에 들어왔다. 몇 주 전부터 닦아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냥 생각만 하고 있었다. 실행할 때가 되었음을 직감하며 후드를 분리하여 베이킹 소다를 푼 물에 푹 담그고 매달려 있는 부분은 되는 만큼 닦았다. 담가두었던 후드가 때를 약간 떼어낸 상태가 되자, 칫솔로 박박 문질렀다. 좀 더 시간을 두고 더 세게 문지르면 상태가 더 좋아지겠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적당히 닦아 물이 빠지게 한쪽에 세워두었다.



아까 주방 후드 청소를 위해 베이킹 소다를 가지러 세탁실에 갔다가 세탁실 상태도 눈에 밟혔다. 바닥 타일에 낀 까만 때가 눈에 아른거려서 하는 수 없이 물을 틀고 빗자루를 쥐었다. 조금만 힘주어 문지르니 금세 새 하얗게 보였다. 춥고 귀찮기는 했지만 막상 새하얀 바닥상태를 보니 기분이 좋았다. 다음은 화장실로 향했다. 제멋대로 놓여 있는 욕실 비품들을 정리했다. 열을 맞추지는 않아도 나름대로 분류하여 정리했다. 그러곤 하수구 청소를 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청소 중에 하나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러하겠지만. 하수구 속까지 칫솔로 털어내고 화장실 바닥에 비누를 풀어 정리했다. 집안의 모든 쓰레기통을 비웠다. 속이 시원해지는 듯했다. 아이 방의 책장과 내 방의 화장대까지 정리하고는 청소를 마쳤다. 



이렇게도 열심히 청소를 한 까닭은 내일 엄마가 집에 오기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난 시어머니가 오실 때는 청소를 이렇게 열심히 하지 않는다. 먼지를 극도로 싫어하시는 어머님이 보셨다면 속으로 헉하고 외치실 집안 포인트가 많은데도 시어머니의 방문에는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나에게 별다른 말씀을 하지는 않으시기에 적당히 치워둔다. 하지만 친정엄마가 오는 날이면 이상하게도 더 신경이 쓰인다. 엄마 역식 내 집의 상태에 대해서 이래라저래라 말을 한 적이 없음에도 나는 왠지 모르게 구석구석 더 치우게 된다. 엄마가 보지 않을 안방 화장대 서랍과 아이의 책장까지도. '너 이러고 사니?', '이거 엄마 얼굴에 먹칠하는 거야.'라고 속으로 생각하실까 봐 엄마가 오는 날이면 평소에 손을 대지 않던 부분까지 먼지를 닦고 각을 맞추고 서랍을 단정히 정리한다. 



내일 엄마가 오시면 우리 집 상태를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실게 분명하다. 오히려 너무 청소하다가 늙어서 고생한다며 나에게 청소 적당히 하라는 잔소리를 하시겠지. 하지만 청결하고 정갈한 상태를 보고 '역시 우리 딸은 보고 배운 대로 깨끗하게 해 놓고 사는구나'하고 속으로 생각하실 것이다. 엄마가 늘 그렇게 손을 보태고 땀을 기울여 집을 돌본 것처럼 나도 우리 집을 가꾸어본다. 단 하루를 우리 집에서 머무시지만 깨끗하고 따뜻한 공간에 엄마를 모시고 싶다. 엄마에게 만나면 기분이 상쾌해지는, 그래서 뿌듯해지는 그런 딸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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