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지신지복 잊지 않고 살게

모든 것은 나에게 달려있다

by 책닮녀

'지신지복'


육아휴직을 마치고 발령받아 간 지점에서 만난 k언니가 한 말이었다. 그 지점에서 언니는 거의 왕언니였다. 나이도 많았고 경력도 많았다. 같은 창구에 있었기 때문에 직급은 별 차이 없었지만 은행 내 서열은 매우 보수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언니와 친해지는 건 조금 어려운 일이자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늘 언니들 사이에서 오히려 언니 같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고 수준 높은 정신연령과 올드한 성향 덕분에 내 곁에는 위로 10살은 거뜬히 차이나는 언니들이 많았다. 덕분에 k언니와도 쉽게 친해졌다. 내가 맞받아 친 아재 개그가 언니 취향에 딱 맞아떨어진 것인지, 은행이라는 실적주의 세상에서 실적이라고는 거들떠보지 않는 언니와 나의 성향이 딱 맞아떨어진 것인지 여하튼 우리는 잘 맞았다. 심지어는 생일도 맞았다. 똑같은 날 태어났다니.



은행의 점심시간은 짝을 지어 두, 세명 씩 교대로 이루어졌다. 언니는 늘 나와 함께 먹는 걸 좋아했는데 그날도 아이들 이야기, js고객이야기, 상사이야기, 시댁이야기, 남편이야기 그리고 가끔 실적이야기 등 끊임없는 주제가 우리를 끈끈하게 이어주었다. 당시 나는 복직은 했지만 신랑은 여전히 내가 회사를 관두고 가정에 전념하기를 원했고, 그 불안한 가정을 돌봐주고 있는 건 시어머니였기에 집에 가도 불편함 그 자체였다. 오늘도 일이 끝나면 미친 듯이 뛰어가서 버스를 타고는 아이들 반찬을 해 놓고 빨래를 하고, 아이들 책을 읽어주고, 재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때 언니가 한 말이 '지신지복'이었다.



지신지복:지(자기) 신세 지(자기)가 만들고 지(자기) 복도 지(자기)가 만든다.



그땐 k언니의 말에 푸하하 호탕하게 웃었는데, 이 언니 역시 재밌어하며 넘겼는데, 세월이 지나고도 이 말이 잊히지 않고 남아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지신지복이 딱 들어맞을 때가 너무 많아서 말이다.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아빠는 '모름지기 여자는, 모름지기 남자는'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었다. 이상하게도 딸들에게는 그런 걸 강요한 적은 없었다. 다만 자신의 아내인 나의 엄마에게는 늘 그런 모습을 원했다. 아녀자는 밤늦게 다니지 않을 것, 밖으로 나돌지 않을 것, 다른 남자와 되도록 말을 섞지 않을 것. 엄마는 K장녀로 자라온 터라 아빠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책임감을 잔뜩 짊어진 진취적이고 깨어있는 신여성 쪽에 가까웠다. 하지만 아빠와의 결혼으로 엄마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 만나고 싶은 사람, 배우고 싶은 것들을 꼭꼭 넣어두고 살았다. 이렇게 말하면 아빠는 억울하다고 하겠지만-왜냐하면 엄마가 정말 아주 가끔은 계에서 여행도 가고 동창회도 가고 요가를 배우기도 했으니까-그래도 엄마는 가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참으며 살았다. 엄마는 그렇게 자기 신세를 만들고 자기 복을 담을 만큼만 담았다.




그런 엄마를 보고 자란 나는 '절대 아빠 같은 남자와 결혼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아빠 같은 남자가 아닌 줄 알고 결혼한 이 남자는 아빠 같은 남자는 아니었다. 다만 아빠보다 더 한 남자였다. 이 남자는 내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싫어했(한)다. 연애 때야 늘 둘이 붙어 있으니 이 또한 좋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도 나만의 시간이 필요한 때에도 가족이 다 함께 있기를 원했다. 서점에 가고 싶다고 하면 다 같이 가자고 했고, 카페에 가겠다고 하면 다 함께 가자고 했다. 세상이 흉흉하다며 여자는 늦게 다니지 않기를 원했고, 만나고 싶은 사람은 자신이 아는 사람이길 원했고, 배우고 싶은 것은 아이들이 학교를 간 시간에 배워야만 했다. 엄마를 닮고 싶지 않은 부분까지 닮은 딸이기에, 나는 가정의 평화와 내 도리를 운운하며 조금(?)은 참으며 살았다. 지금도 그렇게 내 신세를 내가 만들고 내 복을 조금씩 자주 퍼 담으며 산다.





지신지복이라는 단어가 딱 떠 오른 건 며칠 전 읽었던 책의 한 구절 때문이었다.



내가 남편의 부속물도 아니고, 남편이 내 상전도 아니잖아? 부부는 '협의'를 하는 거지, '허락'을 맡아야 하는 관계가 아니잖아. '내가 이번 광주에 강연이 있어서 가야 하니까 아이의 식사와 등교 뒷바라지 문제를 협의해서 조정'하는 것이어야 하지 '내가 이번에 광주에 강연이 있어서 가는데 하루 자고 와도 되냐고 허락을 맡아야 하는 일'이 되면 곤란하지. (중략) 기혼여성이 혼자 여행 가는 일을 '자유'라는 단어로 뭉뚱그려서 혹은 퉁쳐서 표현하고 싶지는 않아.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것이 자유로운 영혼을 자동적으로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야. 다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이라는 명분으로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 부부가 서로를 가급적 통제하거나 규제하지 않으면 좋겠어.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요조, 임경선 지음/문학동네/p.66)





얼마 전 나는 가고 싶은 곳이 생겼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이 우리 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옆동네 작은 서점에서 북토크를 연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바로 신청버튼을 누르고 정보를 입력하는 찰나, 토요일 오후라는 점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잠시 신청을 미뤄두고 남편에게 이렇게 문자를 보냈다. '나 토요일 오후 5시 북토크 가도 돼? 마치고 오면 9시 즈음될 것 같아. 저녁은 해 놓고 갈게.' 남편은 자신이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꽁무니를 빼지만 나는 꼭 가고 싶다고 말했고 '허락한 거 맞지?' 라며 못을 박았다. 책을 읽으며 내가 내 신세를 왜 이렇게 만들며 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부간의 관계는 상하관계도 아니고, 남편이 내 상전도 아닌데, 남편은 회사에서 회식을 할 때 나에게 허락을 받지 않는데 말이다. 회식이 일의 연장선이라고 굳이 표현한다면, 나 또한 그림책 활동가로서 어떤 사회생활의 연장선임에 틀림없는데. 나는 나 스스로를 남편의 부속물처럼 만드는 듯 느껴졌다.



임경선 작가님의 말은 내 가슴을 시리고 아프게 했지만 한데 얻어맞고 얼얼해진 가슴은 제정신이 들었다. 지신지복이라는 말처럼 내 신세를 더 이상 남편의 허락을 구하는 존재로 만들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꼭 참여하고 싶은 북토크가 있는데, 토요일에는 시간을 비워두면 좋겠어. 아이들 저녁 한 끼만 부탁해.'라고 말하는 연습을 해 본다. 어색하기 그지없지만 진짜 내뱉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지만, 지 신세 지가 만든다고 하니, 이러한 상황과 위치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은 모두 나에게 있지 않은가.



한 때는 기혼 여성이 홀로 여행을 가는 일을 '자유'를 좇는 맹목적인 무언가로 바라보았던 것 같다.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내가 책임감 있고 강인한 어머니이자 현명한 아내인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기혼 여성이라고 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 만나고 싶은 사람, 배우고 싶은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 모든 것을 장기 밑 깊숙한 어딘가에 꽁꽁 숨겨놓고 있는 것뿐이라는 걸 안다. 나 역시도 그런 것처럼. 그게 미덕이고 기혼여성의 바른생활이라고 무의식적으로 학습되고 강요되어 왔던 것에서 이제는 벗어나고 싶다. 단지 그 생각만으로 현실이 180도 바뀌지는 않겠지만, 지신지복을 다시 읊조리며, 내 신세를 조금은 더 나은 모습으로 만들고 싶다. 내 복을 바가지가 아닌 세숫대야로 퍼 담아야지.





언니, 지신지복 잊지 않고 살게.

잘 지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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