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다와 하다를 혼동하지 않기를
"그럼 OO 이는 꿈이 뭐꼬?"
판사, 변호사, 검사, 의사를 들이밀었지만 전부 싫다고 대답하는 딸에게 나의 엄마가 물었다.
"잘 모르겠어요."
꿈이 직업이라는 잘못된 오류를 설정한 질문에 딸아이는 딱 알만은 답을 말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꿈꾸는지 명확히 알고 있는 초등학생은 몇 되지 않을 것이다.
"선생님은 어떻노? 그럼 뭐 하고 싶은데?"
선생님도 절대 싫다는 딸아이. 꼭 반드시 되고 싶다고 정해놓은 직업은 없지만 관심 있는 직업은 무엇인지 알기에 내가 대신 답했다.
"OO 이는 파티시에나 피아니스트가 좋대."
"빠띠세? 그게 뭐꼬"
"제빵사. 케이크, 쿠키 이런 거 디자인하는 거 좋아하거든"
내 말이 끝나기 무섭기에 엄마의 답변이 돌아왔다.
"빵집 한다고? 안 된다. 우리 손녀딸 서울대 가야지."
엄마의 두서도 없고 논리도 없고 맥락도 없는 공격에 딸아이는 제대로 받아쳤다.
"서울대는 갈 건데요, 파티시에도 하려고요."
명문대를 졸업하여 '사'자 들어간 직업을 가지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거라는 옛 어른들의 고정관념을 그대로 담은 할머니의 공격을, 아직 서울대쯤이야 껌으로 아는 12살이 제대로 받아친 것이다. 이 대화가 어찌나 재미있던지. 한방 먹은 엄마에게 나는 한방 더 날렸다.
"대학 안 가도 돼. 행복한 일 하며 살면 되지. 빵집이 뭐 어때? "
보란 듯이 배운 척, 생각 있는 척한 나의 대답에 12살이 다시 어퍼컷을 날렸다.
"엄만 그러면서 맨날 공부하라고 하잖아. 숙제하라고."
그래. 맞다. 행복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한다며 일정 수준 이상은 해야 한다며 작은 습관이 잘 잡혀있어야 한다며 아이를 몰아세우기도 했다. (근데 딸아, 엄마 진짜 안 시키는 건데.... 너도 친구들 보면 알지 않니?)하지만, 딸이 만약 자신의 꿈을 위해 공부보다는 다른 것에 매진하겠다고 한다고 하면 그 손을 들어주고 싶다. 아직은 빵 기술을 배워 실전에 투입하기에는 작고 여린 몸이라 관심 있는 이야기를 즐겨보고 그려보고 꿈꾸는 것으로만 응원하고 있지만, 인문계 고등학교 대신에 제과제빵고등학교에 진학한다고 해도 나는 반대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다져본다.
꼭 무엇이 되어야 할까?
내가 졸업 후 작은 잡지사에 출근하게 되었을 때, 엄마는 축하한다는 말 대신 "그래서, 방송국은 언제 갈끼가?"하고 물었다. 엄마는 내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으니 최소한 뉴스에 나와서 "KBS뉴스 김신지입니다"라고 말하거나 "이거 우리 애가 만드는 거잖아" 자랑할 수 있게끔 엄마가 즐겨 보는 TV프로그램 감독이나 작가쯤 될 거라고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런 엄마에게 인디 뮤지션들을 인터뷰하고, 제주에 다녀와서 여행기를 쓰는 내 일에 대해 설명하기란 힘들었다. 그 후로도 엄마는 내가 옮겨 다니던 회사의 이름을 좀처럼 외우지 못했다.
"니 그냥 방송국 다닌다 카믄 안 되나? 마이 다르나?"
어쩌면 인생은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부모가 보았을 때 '별다른 것이 되지 못한' 삶을 사는.
평일도 인생이니까(김신지 에세이/알에이치코리아/p.31)
우리 엄마도 그랬다. 내가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아나운서가 되겠다고 큰소리쳤으니 밀어주지는 못했도 아나운서가 되길 바랐다. 아나운서를 준비를 그만두고 은행에 취직했을 때 엄마는 더 좋아했다. 누구에게 말해도 잘 모르는, 심지어 엄마가 살고 있는 지역에는 방송이 되지도 않는 라디오방송국에서 리포터로 일을 하고 있다고 설명하는 것보다는, 우리 딸이 누구나 다 아는 은행에 다닌다고 하는 게 더 자랑스럽게 느껴졌던 것 같다. 아이 때문에 은행을 그만둔다고 했을 때에 가장 섭섭하고 서운해하던 사람도 엄마였다. 나에겐 너무나도 싫었던, 이름만 번지르르하고 까뒤집어보면 속이 문드러져가던 은행원이라는 탈은, 엄마에게는 최고의 자랑거리였던 것이다.
최근에 원고를 쓰고 마음고생하며 노력에 노력을 기울여 투고에 성공했을 때에 엄마가 제일 기뻐해주기를 바랐는데 엄마의 반응은 생각보다 시큰둥했다. 엄마는 목욕탕에 가면 '누구 딸이 어디다닌다, 누구 손자가 명문대에 갔다'는 자랑을 한다며 아닌 척 부러워했다. 그런 엄마에게 엄마도 딸이 작가 되었다고 자랑하라고 말했지만, 엄마는 사람들은 그런 거 모른다며 반가워하지 않았다. 그럴지도 모른다. 부모가 보았을 때는' 별다른 것이 되지 못한' 그냥 혼자 하릴없이 글을 쓰는 사람으로 보일지도.
'되다'와 '하다'를 혼동하지 않으면 70점은 문제가 되지 않는 거였다. 그러니 좋아하는 일 앞에서 우리가 물어야 하는 건 성공 여부가 아닐지 모른다. 되고 싶어서인가, 아니면 하고 싶어서인가 하는 것.
우리를 지치게 하는 것은 되려는 욕심이지,
좋아하는 일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평일도 인생이니까(김신지 에세이/알에이치코리아/p.34)
내가 어린 시절 아나운서가 되지 못하고 대신 은행원이 되어서 실패한 인생이라고 여겼던 것도 되다와 하다를 혼동했기 때문이다. 나는 방송이 하고 싶었고, 다른 사람 앞에서 전달하는 사람이 하고 싶었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물어보고 들어주는 일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누구나 알아주는 방송사에 다니며 누구나 알아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되려고 했으니 부족한 내 재능이 성에 차지 않았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살아온 만큼 이제는 '되다' 보다는 '하다'에 집중하려고 한다. 최근에도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꼭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고 강박에 시달렸다. 공부를 했으니 투자를 했으니 성과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배움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그냥 해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지 않을까? 꼭 무엇이 되어서 누군가에게 박수를 받고 촉망받아야 대단한 성공을 얻는 게 아닌데 말이다. 나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함으로써 성장하고, 한발 나아가며 만족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게 진짜 좋아하는 일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베스트셀러 작가는 되지 못할 거라 생각하면서도 언젠가는 엄마가 인정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엄마가 '우리 딸 작가잖아'라고 말하게 해주고 싶었다. 이제는 욕심을 버리고 매일 조금씩 글 쓰는 인생을 즐기려 한다. 베셀은 감히 넘볼 수 없는 영역이기도 하니까. 본인의 글을 70점짜리 재능이라고 표현한 김신지 작가님을 보며 지금 내가 가진 재능은 40점이나 될까 하며 작아지지만, 작가님 말씀대로 70점이든 40점이든 하고 싶은 일을 즐긴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냥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려고 하면 된다. 자격증을 따면서 꼭 대단한 성과를 이루어 수익을 내야지 하는 욕심을 버리고 지치지 않게 나를 가꾸어야지 하고 다짐해 본다.
무언가가 되고 싶어 하기보다는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머리로 새기고 마음으로 느끼며 살아가야지.
딸아이가 무엇을 하든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면 좋겠다. 그래서 행복하면 좋겠다.
단지 그 삶이 경제적으로 너무 힘이 들지 않기를 바랄 뿐.
그래서 말인데, 딸아, 숙제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