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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Jan 11. 2023

결혼vs 비혼

결코 쉽진 않지만 조금 단순하게

주말 예능프로그램에 '2023 박빙트렌드'란 이름으로 <결혼 vs 비혼>이라는 주제가 나왔다. 가족이 함께 저녁을 먹으며 일요 예능을 보는 것이 우리 집 루틴이었기에 우리 넷은 함께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12살 딸아이는 당연히 결혼할 거라고 말했고, 10살 아들은 엄마와 함께 살겠다고 말했다. (결혼하고 같이 살겠다는 건지 비혼으로 같이 살겠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들아 제발 기숙사 있는 고등학교에 가주면 안되겠니?) 남편은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당연히 '결혼'이라고 했다. 나는 조용히 밥만 먹었다. 그런 나에게 '엄마는?'이라고 딸이 물었다. '글쎄.'




어린 시절에는 요즘 말로는 비혼, 그러니까 독신녀였던 나는 결혼을 하면서 결혼예찬론자이자 아이를 낳으면서 출산예찬론자가 되었다. 그리고 여건이 된다면 꼭 둘 이상 낳으라고 말하고 다니는 오지랖 넓은 옛날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결혼과 출산의 세월이 무색하게 지나버리고 나를 향한 시간이 늘어날수록 결혼을 꼭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하게 되었다.




요즘 남성 중에는 자신이 번 돈으로 여성이 호의호식하며 산다고 생각하며, 이것은 도저히 배 아파서 견딜 수 없다고 여겨 결혼을 기피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돈 버느라 힘은 힘대로 드는데, 집에 오면 온갖 눈치를 봐야 한다고 눈치 보지 않고 살고 싶단다. 또 요즘 여성 중에는 결혼과 출산으로 인한 피해는 자신이 더 많이 입는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집안일은 집안일대로 힘들고, 회사에서도 눈칫밥 먹는 게 싫어서 비혼이 좋다고. 각자 자신이 번 만큼 자신이 즐기며 사는 인생이 좋다고 말한다. 물론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지내는 삶은 자유롭고 평화로운 건 사실이다. 이견 조율이라는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는 커다란 산이 애초에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TV 프로그램을 지켜보면서 결국 나는 '그래도 결혼이지'라고 말했다.  사실 결혼 대표주의자로 보여준 전 야구선수, 이대호 선수 부부의 일상은 우리 부부의 일상과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오히려 너무 괴리감을 느껴서 비혼을 지지하고 싶은 마음이 일 정도였다. 틀에 박힌 여성의 역할을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으니까. (내가 꼬인 사람이라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그 맥락은 통했다. 함께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함께 술잔을 기울일 사람이 있다는 것. 함께 의논할 사람이 있다는 것이 비혼보다 결혼이 좋은 이유라고 생각한다.



물론 답답하고 말 안 통하는 배우자(여보, 당신 이야기 아닌 걸로 해 줄게)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부부의 연을 맺게 되면 같은 방향을 보게 된다. 마주 보던 얼굴을 같은 곳으로 향하게 한다. 손을 잡고 나란히 속도를 맞추어 걷는 것이 결혼이다. 허나 살다 보면 가끔은 누가 앞서가기도 하고, 잡은 손을 놓치기도 하고, 손을 잡고서 딴생각도 하지만, 그럼에도 삶의 온기를 느끼게 해주는, 나를 보듬어주는 커다란 울타리가 결혼이 아닐까 생각한다. 결혼을 통해 이룬 가정도 마찬가지고.



꼰대처럼 나이가 찼으니 '결혼 당연히 해야지!' 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요즘은 결혼을 너무 부정적으로 또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쉽진 않지만 조금 단순하게 생각하면 어떨까? 매일 아침 눈을 떴을 때 엉겨 붙은 떡진 머리에 한쪽 눈만 겨우 뜬 모습을 보고도 한 대 칠 정도로 미운 얼굴이 아니라면, 쩝쩝거리며 먹는 소리가 혐오할 정도로 싫어도 맛있는 음식을 보면 그 사람이 생각난다면, 살이 너무 쪄서 다이어트를 결심했지만 '한잔할래?'라는 말에 같이 마셔줄 의향이 백 퍼센트라면, 그 사람과 결혼하면 좋겠다. 해보고 아니면 헤어지라는 말은 너무 무책임하겠지만 그래도 해보면 좋겠다. 혹시 좋을 수도 있으니까. 힘든 것만큼 좋은 게 또 있으니까.




그러니까 결론은 나는 결혼을 지지한다는 것.

결혼 좋아.

진짜 좋아.

음... 좋다고 시다.


끄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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