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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Jan 30. 2023

여행지 필수코스, 동네책방 방문기 2

풍경소리가 향기로운 곳, 경주 <누군가의 책방>

갑작스럽게 찾은 경주였다. 오며 가며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단 하루만의 시간, 그것도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15시간도 안 되는 여정 중에 책방을 꼭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책에 그다지 관심 없는 동거인의 입에서 '바쁜 와중에 거기에 꼭 들려야 하겠냐'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최대한 동선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위치의 책방을 검색했다. 두 책방이 등장했다. 한 곳은 재작년 경주를 방문했을 때 가보았던 서점으로 새롭게 지점을 열어 더 크고 화려하게 운영하고 있는 곳이었다. 재작년 방문 당시에도 참 좋았고, 그림책 전문 서점이라 가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거의 마음이 기울던 찰나 다른 책방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보았다. 담백하고 무심한 듯한 책 소개가 나를 끌어당겼다. 독립서점이었다. 그림책활동가로서 그림책 전문 서점에 가 보는 것도 좋겠지만, 작은 출판사에서 작지만 꼭 필요한 이야기를 출판할 작가로서 독립책방에 더 마음이 끌렸다.



박물관투어 하나를 끝내고 식당으로 향하는 길에 책방에 들러야 한다고 했다. 다행히 아무 말 없이 운전을 해준 동거인. 하지만 작은 골목에 위치한 책방은 역시나 동거인의 신경을 곤두세웠고, 아니나 다를까 책방의 간판이 도드라지지 않아 헤매는 바람에 동거인을 더 예민하게 만들었다. 나는 급히 책방에 전화를 걸었다. 이런 전화를 받지 않았다. 차를 마을회관 앞 공터에 세워두고 나 홀로 차에서 내려 동네를 걸어 다니며 책방을 찾았다. 다행히 인스타에서 보았던 책방의 마스코트 '호두'라는 개가 나를 보고 반갑게? 맞아주었다. 덕분에 책방지기는 뛰쳐나와 문을 열어 주었다. 가족과 함께 오겠노라 인사를 나누고 아이들을 데리고 책방으로 향했다. 동거인에게는 달콤한 자유시간을 선사한 채.


반갑게 나를 보며 짖던 호두는 아까 보고 다시 봐서 그런지 전보다 훨씬 다정하게 짖어주는 듯했다. 호두에게 인사를 나누며 기와집으로 발을 들였다.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한옥 주택에 아기자기하게 진열이 된 책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대형서점에서 흔히 봐왔던 책들은 눈을 씻고 찾아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았다. 조금 낯선 책들이지만 표지와 제목에 이끌려 책을 집어 들었고, 살짝 넘겨 읽어볼 때마다 재미있을 것 같은데? 하는 책들이 하나 둘 늘어갔다. 조용한 책방지기는 아이들을 데리고 온 나를 전혀 부담스럽게 하지 않고 천천히 둘러보게끔 내버려 두었다. 가끔 작은 책방에 가면 너무 부담스럽게 말을 거는 책방지기가 있는가 하면, '불편하니 얼른 나가줄래?'라는 느낌으로 레이저를 쏘는 책방지기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의 책방의 책방지기는 그저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다. 덕분에 한옥의 고즈넉한 정취와 햇볕을 드리운 서가와 색다른 소재가 즐비한 책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 다양한 직업에 대한 인터뷰, 소수의 취향을 담는 매거진 등 쉽게 볼 수 없는 책들이었다. 집에 있던 책이 여기에도 있다며 둘째가 알려주어 보았더니 <동쪽 수집>이라는 그림책이었다. 재작년 그림책방에서 독립출판사에서 만든 그림책이라는 말에 별생각 없이 집어 들었다가, 그림에 매혹되어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구매하게 된 작품이었다. 여기서 만나니 더 반가웠다.  첫째는 한쪽 나무 벤치에서 자신이 고른 책을 읽느라 정신이 없었다. 책을 좋아하는 첫째는 들어오자마자 또 읽고 싶다고 타령을 한 <아몬드>를 찾았지만, 쓱 둘러보고는 자신이 읽을만한 책이 없는 것 같다고 했지만, 내가 골라주지 않아도 알아서 읽고 싶은 책을 고르고 즐기고 있었다. 첫째가 책을 고르는 동안 나와 둘째는 둘째가 읽어도 좋을 만한 책을 찾아보았다. 다행히 둘째가 좋아할 만한 느낌의 책이 있었고, 책을 그다지 즐기지는 않는 둘째도 그 책은 좋다고 했다. 나도 그 책이 마음에 들었다. (책 소개는 따로 하겠습니다)


한쪽 벽면에는 사용하지 않는 종이가방과 폐지, 노트 등을 활용해 직접 바인딩 노트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었다. 환경에 관심이 많으신지 환경에 관한 책들도 꽤 많았다. 작은 공간에 옹기종기 붙어 있는 책들이 정겹고 다정했다. 얼핏 보면 책 종류가 얼마 없어 보이는 것 같지만, 보면 볼수록 보고 싶은 책들이 많은 서점이었다. 손님이 없는 날이면 책방지기는 한옥의 방바닥에 누워 책을 읽을까? 아니면 마당의 잔디에 놓인 의자에서 자연을 벗 삼아 호두와 함께 책 산책을 할까? 궁금했다. 또 부러웠다.




이번달은 책 지출이 있는 편이라 두 권의 책만 구매했다. 책을 구매하고 나서며 책방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여쭈었다. 흔쾌히 찍어도 된다고 하는 책방지기는 여전히 부담스럽지도 불친절하지도 않게 딱 적당한 선으로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나는 사진을 찍고 미닫이 문을 열고 신발을 갈아 신고 나왔다. 이제는 나를 보고 짖지도 않는 호두가 오랫동안 봐온 사이처럼 친근했다. 마당에서 호두를 바라보며 서 있는데 바람이 일렁이고 풍경소리가 들렸다. 책방에 있는 동안 은은한 소리가 향기롭게 느껴졌는데 이제 보니 풍경 소리였다. 처마 밑에 매달린 풍경과 바람이 만날 때마다 아름답고 향기롭게 울렸다. 누군가의 책방의 비지엠이었다.




누군가의 책방에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립서점에 갈 때면 사실 작은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다녀오며 기분이 좋지 않은 적도 있다. 무언가 부담스럽고 날카로운 눈초리로 보는 느낌이 불편하고 답답한 공기를 느낀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책방은 정말 누구에게나 책방이 되어 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동거인과 아이들을 데려오지 않았다면 날씨가 조금만 덜 추웠더라면(참고로 이 날 경주의 날씨는 영하 10도였습니다) 누군가의 책방에서 누군가가 되어 책 좀 읽다가도 되겠냐고, 책방지기에게 너스레를 떨었을지도 모르겠다.






매대에 누워 있는 책들이 조금은 식상해졌다면, 내가 모르는 내 관심사가 궁금하다면, 조용히 천천히 아름답게 책 읽는 시간을 누리고 싶다면 누군가의 책방에 들러보기를 권합니다. 이 모든 사항에 해당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경주에 들르셨다면, 무열왕릉 한바퀴돌고 책방에서 잠시 쉬어 가는 건 어떨까요? 오전 11시부터 18시까지, 매주 수요일 정기휴무라고 합니다. 인스타나 전화로 꼭 공지 확인하시고 방문하시기를. 앗 그리고 저처럼 못 찾아서 헤매지 마시고요, 서악 큰 마을경로회관에 주차하시고 조금 걸으시면 됩니다^^ 아주 조금이요. 풍경소리가 비지엠이 되어 줄 거예요.


 누군가의 책방(@someonebookshop) • Instagram 사진 및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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