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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Feb 22. 2023

평생고민, 뭐 해 먹고 살지?

『뭐 해 먹고 살지?』김도경 그림책/달그림

점심식사를 마치고 설거지까지 끝낸 다음 커피 한잔을 하고 있습니다. 여유로워 보이는 이 시간 글을 쓰며 지금 든 생각은 '저녁 뭐 해먹지?'입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저는 아이들 방학을 맞이하여 삼시 세끼를 준비하는 날을 54일째 맞이하고 있는데요, 물론 그 와중에 여행도 갔었고 외식에 기대어 보기도 하고 배민을 찬양하기도 해 보았지만, 어찌 되었든 끼니에 무엇을 해 먹어야 할지를 고민하고 그 어려운 일을 대략 150번째 즘 해내고 있단 말입니다.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 말이 있는데, 이렇게 음식만 하다가 죽으면 제 영혼에서는 온갖 김치와 고기가 버무려지는 맛있는 한식 냄새가 맴돌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포장하지 말고 직접적으로 말하면 음쓰 냄새와 기름기 꾀쬐쬐한 얼굴이 영혼의 때깔이 될 거라고 짐작이 된다는 거죠. 아마 지금 저의 뇌를 열어 단면으로 볼 수 있다면 '뭐 해 먹고 살지'가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겁니다.




제가 이런 넋두리를 하면 신랑이며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지요. 일주일 뒤면 끝날 방학이라고요. 근데요 제가 좋아하는 야구 명언 중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명언이 있습니다. 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또 방학이 끝나도 아침저녁은 집에서 먹잖아요. 평생 자신의 입에 풀칠도 해야 하고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고민, 평생 해야 할 인생고민이 '뭐 해 먹고 살지?'가 아닐까요?



그림책 '뭐 해 먹고 살지?'는 글 없는 그림책입니다. 책 속에서는 공사장에서, 숲 속에서, 염전에서, 훈련소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 먹고 사는지를 보여줍니다. 각각의 장소에서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고요. 그 사람들의 땀으로 하나의 메뉴가 탄생합니다. 공사장에서 흙을 다지고 그 위에 벽돌을 쌓고 무언가를 만드는 것처럼, 김을 깔고, 수레에 담긴 하얀 밥알갱이를 올리고, 포클레인으로 색색의 재료까지 쌓고, 둥그렇게 말아주면 김밥이 완성된답니다. 숲 속에서는 한 자객이 등장하지요. 풀숲에 숨겨진 상대를 향해 화려한 칼솜씨를 자랑합니다. 순식간에 길쭉하게 썰어진 풀과 당근과 고추는 지글지글 기름으로 들어가 맛있는 부침개가 되고요. 책 제목의 '뭐 해 먹고 살지'라는 질문은 어떤 메뉴를 해 먹을 것인지라는 고민과 또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어떤 맛난 음식을 먹을까를 위트 있게 풀어내면서도,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는 철학책 같았습니다.



100세 시대 아니 150세 시대에 들어가며 인생에서 무엇을 해서 어떻게 살 것인가는 중요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20대에 가진 직업으로 150세까지 살아가기에는 너무 어려워졌으니까요. 저의 20대에 가진 직업은 아이를 낳으며 유지할 수 없는 사회 시스템에 의해 이미 버려진 지 오랩니다. 덕분에 이렇게 글을 쓰고 강의를 하고 그림책 이야기를 하며 하고 싶은 일에 다가설 기회를 갖긴 했지만요, 그럼에도 여전히 나 뭐 해 먹고 살지?라는 질문에 선뜻 답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프리랜서로 일하며 나를 불러주는 곳이 계속 있을까?라는 걱정을 불안을 끊임없이 안고 산답니다.



정답은 없지만요. 그림책을 보며 느낀 점은 있었습니다. 모두들 묵묵히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지요. 자신에게 주어진 무언가를요. 염전에서는 바다밭을 가꾸고요, 훈련소에서는 훈련을 하고요, 세차장에서는 깨끗하게 씻어내는 일을 하지요. 자신이 있는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합니다. 살면서는 다른 장소로 가고 싶기도 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모르는 곳에 갑자기 뚝 떨어지기도 하지요. 당황하고 어렵고 두려워서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순간도 물론 있습니다. 그럼에도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꾸준히 해 나가는 것, 그게 뭐 해 먹고 살지라는 물음의 나만의 답을 찾는 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매일 아침 인스타그램에 그림책을 소개하고, 그림책 강의를 준비하고, 그림책 모임을 기획하고, 책을 읽고, 또 그런 저의 생각들을 글로 풀어내며 저의 주어진 자리에서 애쓰다 보면 그림책 속에서 그랬던 것처럼 나만의 메뉴도 탄생해 있을 거예요. 또 앞으로 해 먹고 싶은 신메뉴도 그려지지 않을까요?



근데 도무지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는요.

늘 저녁 메뉴입니다.

저 오늘 저녁에 뭐 해 먹고 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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