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흔적』(한밤비/ 브론테살롱)
영원한 것보다 사라질 것들이 더 눈부시다.
책장을 넘기다 마주한 이 말이 참 좋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라지는 것보다 영원한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 오랫동안 지속되어 길이길이 남는 것에 숭고한 뜻을 새기고 우러러 바라본다. 하지만 작가는 그런 영원한 것보다 이내 사라질 것들이 더 눈부시다고 말했다. 아름답다고 말했다. 사라진다 하더라도 그 흔적들이 남기에 머물러 갔던 온기가 느껴진다고. 그 온기로 나를 채우며 일상의 순간에 작은 힘을 얻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밤비 작가의 그림책 『흔적』은 우리 일상의 흔적들을 담았다. 아침에 일어나 매일 마주하는 창문 너머의 빛. 그리고 익숙한 뒷모습과 그 주변으로 퍼져 나오는 고소한 밥 냄새. 아이들이 어지러 놓은 마루. 커피 한잔을 옆에 두고 소파에 앉아 늘어지게 보던 책. 동네 뒷산을 오르며 보았던 나무 틈새의 빛. 운동장에서 왁자지껄 뛰어노는 아이들. 그 공간의 장면에는 나는, 우리는 보이지 않는다. 어디론가 이미 떠나버렸다. 그곳에서 사라졌지만 내가 머물렀던 곳에는 나의 향기와 나의 온기가 남아 흔적을 이룬다. 그 흔적들이 모여 평범한 하루하루가 되고, 그 하루가 모여 매일의 내가 살아간다.
어릴 적 나도 특별한 삶을 꿈꾸었다. 요즘 말로는 비혼, 그 시대에는 독신녀를 꿈꾸며 화려한 커리어 우먼이 되기를 소망했다. 설날에도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 나 오늘 못 가! 특집 있어.'라고 말하는 아나운서의 삶을 그리곤 했었다. 조금 고독해도 머리칼 휘날리며 멋있게, 뜨거운 조명을 받으며 화려하게 사는 게 진짜 삶이라고 생각했다. 매일매일 집에서 나를 돌보며 가족을 가꾸어가는 엄마와 우리를 위해 땀 흘리는 아빠의 삶은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지만, 썩 부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인생에 중요한 의미가 빠진 것처럼 보였다. 좌절을 겪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지 10여 년이 흐른 이제야, 그때의 엄마 아빠의 삶을 따라 걸어가고 있는 나를 토닥여 줄 수 있게 되었다. 특별한 성과가 보이지 않아도 남들이 인정해 주지 않아도 나는 내 삶의 흔적을 매일 남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흔적이 쌓여 지금 내 삶을 만들어 나간다는 사실도.
찰칵, 찰칵.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식사를 할 때면 우리는 인증숏을 찍는다. 젓가락을 가져가기 전에 포토타임을 가지고 그 사진을 보며 순간을 기억하려 한다. 하지만 맛있는 식사를 끝낸 후 남은 빈 접시를 카메라에 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빈 그릇을 보며 기억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없다. 물론 단지 기억을 위해서라면 전자를 찍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작가는 음식이 채워진 모습보다는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식사를 마친 빈 그릇이 훨씬 더 정겨웠다고 했다.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던 빈 의자가 더 따스하게 느껴져 그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그래서 이 그림책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도 흔적들이 더 사랑스러운 순간들이 있다. 학교를 떠난 아이들이 허물 벗듯 고이 벗어두고 떠난 잠옷을 볼 때, 별 반찬 없이 밥을 주어도 한 그릇 뚝딱한 밥풀하나 없는 신랑의 밥그릇을 볼 때, 엄마가 머물다 간 고이 접어 놓은 이부자리를 볼 때, 현관을 나서며 발로 차버려 현관 끝에 가 뒤집혀 있는 슬리퍼를 볼 때, 함께 차 마시며 이야기 나누던 친구가 두고 간 동전 초콜릿을 볼 때, 영화 보며 평평 우느라 코 푼 휴지가 잔뜩 쌓인 내 책상을 마주할 때,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좋아하는 그림책을 잔뜩 꺼내 읽고 쌓아둔 그림책탑을 볼 때. 그런 사소한 흔적들이 때로는 나의 헛헛한 일상을, 때로는 나의 외로운 시간을 채워주는 것 같아 살아있는 듯 느껴진다. 흔적 덕분에 뻥 뚫린 구멍이 메워진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작은 일상이 쌓여 나를 만들어준다. 내 인생을 아름답게 해 준다. 아니 아름답다는 말은 부족해서 찬란하게 만들어 준다고 표현하는 게 더 좋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렇게 글로 흔적을 남겨 본다. 내가 머문 온기가 글 속에 고이 스며들면 좋겠다. 세월이 흘러 언젠가 마주한 이 글을 보며 내 삶이 소중하다고 느끼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