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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Dec 29. 2022

여러분의 여름은 어떠셨나요?

겨울에 꺼내먹는 여름의 맛-『끼룩끼룩끼룩』

"엄만 여름이 좋아? 겨울이 좋아?"

아이가 물었다. 대답이 빠르게 나오지 않았다. 나는 되물었다.

"너는 뭐가 더 좋은데?"

"나는 겨울"

"왜? 왜 겨울이 좋아?"

아이의 얼굴에는 이미 겨울을 만끽하는 웃음이 가득 차 있었다.

"겨울에는 내 생일이 있잖아. 크리스마스도 있고. 겨울방학도 있고."

아,,, 그런 거였구나. 20대까지만 해도 나의 최애계절은 여름임에 틀림없었다. 옷 입기가 편해서, 그다지 더위를 많이 타지 않아서, 극도로 추위를 타는 스타일이라서 여름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내 생일이 있기 때문이었나 보다. 그러고 보니 방학도 있었고 여름휴가도 있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여름과 겨울, 어느 한 곳에 정을 붙이기란 어려웠다. 더운 여름 조금만 나가 걷다가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면 겨울의 차가운 공기가 그리워지고, 눈이 펑펑 온 거리를  걸어 손발 끝이 얼어버릴 것 같은 추운 겨울이 되면 여름의 뜨거운 태양아래 철썩철썩 파도치는 소리가 그리워진다.




지겹도록 눈이 오는 이번 겨울, 그런 내 마음에 쏘옥 들어온 책을 만났다. 차재혁 작가가 글을 쓰고, 최은영 작가가 그림을 그린 <끼룩끼룩끼룩>. 제목의 글씨체부터 여름스러운 것이 추위에 떠는 내 마음의 온도를 1도 상승하게 했다. 바닷가를 향해 뛰어가는 형제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책이지만, 책 속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바닷가 한편에서 울타리에 페인트를 칠하는 아저씨, 해먹에 누워 바다를 즐기는 아저씨, 검게 그을린 안전 구조 요원, 뜨거운 태양을 만끽하는 노부부, 왁자지껄 시끄럽게 노는 아이들, 그런 아이의 모습을 사진 찍는 부부, 배 깔고 누워 독서하고 있는 아저씨, 이젤 위 캔버스에 바닷가를 그리는 아저씨, 펍에서 술을 마시는 남자 등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바닷가를 즐기는 그들의 모습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페인트 칠하는 아저씨는 실수로 자신의 옷에 묻히기도 하고, 잠이 든 노부부는 이렇게 저렇게 자세를 바꿔가며 편히 쉬고, 아이들은 시도 때도 없이 몸을 움직이고 새로운 놀이를 시도한다. 독서를 하던 아저씨는 책을 코에 박고는 잠에 빠져들고, 하얀색 도화지에는 어느새 바닷가 풍경이 멋지게 그려져 있고, 펍에서 술을 마시던 남자는 곯아떨어져 버렸다. 바다를 배경으로 각각의 인물들이 어떤 시간의 변화를 겪고 있는지 살펴보다 보면 내 시간이 가는 줄 모른다. 시간이 흐를수록 햇볕에 그을린 피부까지도 섬세하게 표현했다.



책 내지에는 작가님의 사인이 그려져 있다. '책닮녀 님의 여름은 어떠셨나요?'라고 쓰인 페이지를 한 참을 들여다보았다. 나의 여름은 어땠더라...? 생각하며 타임머신을 타고 추억여행을 떠난다.

 



2022년 8월 첫 주, 속초.

바닷가보다는 수영장이 익숙한 아이들에게 바다 수영을 하게 해 주고 싶다는 남편의 소망을 존중해 나는 짐을 바리바리 챙겼다. 수영장보다 바닷가는 더 많은 짐이 필요한 법이니까. 하지만 아이들은 너무 덥다며 바다 수영을 굳이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4학년이 된 큰 아이는 바닷가보다는 바닷가 앞 통창 카페에서 책을 읽고 싶다고 했다. 결국 아이들의 거부로 호텔방에 바리바리 싸 온 짐을 고이 두고는 바닷가를 앞둔 뷰 맛집 카페로 향했다. 그런데  카페로 가려면 모래사장을 밟아야만 갈 수 있었다. 둘째는 모래를 밟자마자 모래놀이를 하고 싶다고 했다. 커다란 파라솔과 여러 장의 수건, 튜브, 여분의 옷, 공 등은 호텔에 두고 왔는데 모래놀이 도구는 차에서 내리지 않은 걸 눈여겨본 것이다. 다시 차로 돌아가 모래 놀이 도구를 들고 왔고, 차에서 미처 내리지 않은 구명조끼도, 차에 늘 두는 돗자리도, 비상시 사용하는 장우산 까지 챙겨 바다로 왔다.




그렇게 계획에 있었지만 없어졌던, 준비물이 부족한 바닷가 물놀이가 시작되었다. 구명조끼만 있어도 아이들은 너무 신나게 놀았다. 갈아입을 옷이 차에 없다는 사실은 엄마만 불안하게 할 뿐, 아빠와 아이들은 짭조름한 소금물을 먹어가며 달콤한 추억을 만들었다. 그동안 나는 돗자리에 앉아 낮잠을 청했다. 우산 속에 얼굴을 집어넣고 누워 있노라면 뜨거운 태양이 내 다리를 괴롭혔다. 그러다 갑자기 불어온 거센 바닷바람은 휘리릭 우산을 날려버렸다. 우산을 꼭 붙들고 누워 있어야만 했다. 그렇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나는 가방을 베개 삼아 양산을 파라솔 삼아 눈을 붙였다. 뜨뜻미지근한 바닷물에서 나온 아이들이 마실 것을 찾자 신랑이 시원한 음료를 사 왔지만, 몇 분이 지나자마자 바닷물처럼 뜨뜻미지근한 음료수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미지근해도 좋았다. 음료수도 바다도. 바다에 절대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하던 모습은 온 데 간데없고 그야말로 바닷속에서 바다와 한 몸이 되어 즐기고 있었다. 깔깔깔! 아악! 와우! 와아! 비명과 감탄사가 적절히 버무려졌던 그날의 시간은 나의 추억 저장소에 고이 간직되어 있다.




다만 이 모든 걸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려고 하는 순간부터 현실을 직시하고 진땀을 흘렸지만 말이다. 노팬티에 수건으로 똘똘 감싼 채, 차에 앉아 곯아떨어진 아이의 얼굴이 검게 그을렸지만 행복해 보였다. 아무리 빨아도 빨아도 계속 나오는 모래는 마치 소금 만드는 맷돌처럼 멈추는 주문을 잊어버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었는데도 헛웃음이 계속 나왔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구명조끼를 다시 세탁하려고 보니 조끼의 틈으로 온갖 자갈이 들어가 있는 걸 발견했다. '악! 역시 바다 수영은 향후 5년간 금지야' 하고 외치기도 했지만 이 역시도 지금 생각해보면 키득키득 웃음이 새어 나오는 장면이다.






여러분들도 그림책 타고 여름의 추억으로 떠나볼까요?

여러분의 여름은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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