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는 한 아이가 어른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른들은 어떤 사람인지 알려준다. 어른들은 우리의 행복을 바라지만 우리를 힘들게 하고, 우리를 혼내는 걸 좋아하며, 심술쟁이이고, 끈기가 부족하고, 항상 몸이 쑤시고 아프며, 그럼에도 모여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라고 말한다. 글과 어우러진 그림을 보고 있으면 얼굴이 벌게지며 화끈거릴지도 모른다. 마치 내가 싫어하던 어른의 모습을 내가 그대로 갖고 있는 것 같아서. 그 모습을 그림책에 고스란히 담아놓은 것 같아서 말이다.
토요일마다 성당에서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며 봉사 활동하고 기도하는 게 좋았던 내게, 엄마는 주말에도 학원을 가라고 하셨다. 나는 절대 가고 싶지 않다고 성당에 계속 나갈 거라고 했다. 엄마는 학원을 안 갈 거라면 집에서라도 공부하라며 대학생이 되거든 그때 다시 성당에 가도 하느님이 이해해 주실 거라고 했다. 그렇게 나를 들여앉혔다. 그게 네가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겪어야 하는 과정이라고 말하셨다.
글쓰기를 많이 하면 삶에 도움이 된다며(근데 지나고 보니 이건 진리가 맞아요!) 먼 훗날 행복한 삶을 꾸리기 위해 그래서 행복한 학벌을 얻기 위해서 글을 짓는 과제를 많이 내어주시던 선생님을 정말이지 싫어했다. 저주할 수 있다면 저주하고 싶을 만큼.(선생님 죄송해요. 그랬던 제가 이렇게 글을 쓰며 살고 있네요. 사람 일 모른다는 말이 이런 데서 비롯되는 거겠죠?)
친구 집에 가서 파자마 파티를 하며 하룻밤을 보내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았는데, 아빠는 너의 행복한 삶을 위해 그런 위험한 일은 절대 허락할 수 없다고 하셨다. 연예인을 보러 가면 행복했던 10대에, 아빠는 연예인을 보는 것보다 일탈 없이 평범하고 무난하게 사는 것이 더 좋다고, 그게 너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거라며 어떤 덕질도 허락하지 않으셨다. 덕분에 그렇게 좋아했으면서도 젝키가 해체하는 드림 콘서트가 유일한 직관 무대였다. 심지어 그것마저도 가출의 모양새를 띠고 실행했던 것이다.
어른들은 정말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한다. 네가 행복하길 원해서 이런 말을 하는 거라고. 그러면서 내가 행복하지 않은 것들만 줄줄이 강요한다. 맵고 짜고 달고 자극적인 음식을 먹고는 어른들은 행복해하면서 건강이라는 행복을 위해 밍밍한 맛을 가진 음식을 권한다. '엄마도 어릴 때 그랬었지'라고 말하면서 똑같은 행동을 하면 버럭 화를 낸다.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라고 하면서도 시도 때도 없이 뽀뽀를 해달라고 하거나 아무 곳이나 뽀뽀를 하기도 한다. 핸드폰을 하지 말라고 하면서 어른이 하는 건 '핸드폰으로 일을 하는 거야'라는 말로 정당화해버린다. 정말 어른들은 왜 그럴까?
아이가 진짜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나의 생각을 강요하지 말자. 나는 하기 싫으면서 인생을 조금 먼저 살아봤다는 이유로 내 생각이 무조건 행복하다고 우기지 말자. 우리도 나보다 나이많은 어른이 나에게 행복은 말이쥐~ 라떼는 말이쥐~ 하면 꼰대라 손가락질 하고 답답함에 김이 끓어오르지 않는가? 행복은 개개인의 기준마다 다르다는 것을, 개개인의 순간마다 행복의 잣대는 달라진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아이들이 행복하길 원한다면, 아이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받아들이고 대우해주면 된다. 내가 아이였을 때 어른에게 바라던 것을 어른이 된 내가 해주는 것이다. 아이도 생각이 있다는 걸, 아이도 의견이 있다는 걸, 아이도 계획이 있다는 걸, 아이도 한 명의 독립적인 존재라는 걸 인정하고 바라봐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