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 유행의 선두주자를 꿈꾸며
대학 새내기였을 때였다. 어중간한 공강시간에 할 일이 없었다. 그날따라 같이 수업을 듣는 친구는 애인과 데이트를 즐기러 떠나고 홀로 외롭지만 외롭지 않은 척 배회하고 있었다. 그 시기의 여자 대학생들이 늘 외모에 관심을 갖고 쇼핑을 즐기는 것처럼 나도 윈도쇼핑이나 해야겠다며 골목골목 상가를 누비고 다녔다. 비싼 메이커 옷을 입을 정도의 형편은 아니었고, 적당한 보세 옷을 여러 벌 사서 월화수목금 겹치지 않게 입는 걸 좋아했다.
보세 가게들이 즐비한 골목길을 걸어 다니다가 평소에 좋아하던 가게에 들렀다. 청바지 코너에서 이것저것 둘러보고 있자 점원이 다가와 나에게 입어보라며 바지하나를 내밀었다. 그 당시에는 그래도 꽤 날씬한 편이었기에 내게 딱 어울릴만한 바지라며 추천을 해 준 것이다. 바지를 눈으로 쓰윽 훑어보는데 도대체 무슨 스타일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혼을 쏙 빼놓는 점원의 말에 홀려 탈의실로 들어갔고 자연스레 환복을 하고 나왔다. 그리고 거울 앞에 섰다. '그래, 바로 이거야!'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처음 보는 스타일이었는데 정말 마음에 들었다. 엉덩이부터 허벅지 종아리까지 딱 붙는 청바지였다. 다리가 길어 보이는 착시효과가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평소 입던 스타일과 달라 고민하는 찰나, 서울에서 요즘 유행하기 시작해서 없어서 못 판다는 점원의 말에 나는 바지를 입은 채로 나왔다.
지금이야 옷차림으로 왈가왈부하면 개인의 자유를 침범하는 것이란 의식이 자리 잡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보수적이고 여자후배 놀려먹기를 좋아하는 남자선배들은 그렇게도 꼬투리를 하나 잡아서는 놀려대곤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바지를 입고 나타난 나를 보고는 왜 집에서 엄마가 입던 에어로빅 옷을 입고 나왔냐는 드립을 날렸다. 나는 곧 유행하게 될 거라며 두고 보라고 꿋꿋이 입고 다녔었다. 나만 좋으면 되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의 대부분의 여학생들은 그런 스타일의 바지를 입고 교정을 활보했다. 그게 바로 대한민국 3,40대 여자라면 한 번쯤은 입어본 적 있을 스키니 진이었다. 내가 그 바지를 구매했던 때에는 스키니 진이라는 용어도 없을 때였고, 그런 스타일은 보기만 해도 물을 뿜을 정도로 어색했다. 바닥의 먼지란 먼지는 다 일으키고 갈 만큼 통이 큰 바지가 유행하던 때였으니까.
며칠 전, 옷장은 여전히 차 있는데 입을 옷이 없어 오랜만에 쇼핑을 나갔었다. 이 옷을 보아도 그냥저냥, 저 옷을 보아도 그냥저냥, 그다지 마음에 들지도 또 마음에 안 들지도 않아 무엇을 사야 할지 망설여졌다. 그러다 대충 적당히 편안하고 적당히 오래 입을 수 있고 적당히 아무 옷에도 어울릴만한 옷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다 문득 20대 시절 유행의 선도주자가 되고 싶어 '바로 이거야!'라고 외치던 내가 생각났다. 특별하고도 마음에 드는 옷을 눈에 불을 켜고 잘 찾아내던 내가 조금 그리워졌다. 늘 내면이 중요하지 겉치레가 무엇이 중요하냐며 대충 입어도 된다고 말하고는, 월화수목금 내내 똑같은 옷만 입고 다니는 요즘의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내면도 중요하지만 가끔은 티 나게 나를 사랑해 주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될지 안 될지 모르겠지만 다음 쇼핑에는 '그래, 바로 이거야!'하고 속으로 외치는 순간이 오면 좋겠다. 그때의 나처럼. 올 가을 유행의 선두주자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