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순간의 기억

운전대를 잡고 처음 휴게소를 들어갔던 그 날

by 책닮녀

작년 여름, 천안에 다녀왔다. 수도권에 살고 있는 내게 천안은 그리 먼 곳은 아니다. 기차로는 1시간, 자차로 운전을 하면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비교적 가까운 곳이다. 얼마든지 갈 수 있는 곳이지만 그날 나의 천안방문기는 내 인생의 커다란 획을 그었다.



평소 친분을 있는 지인이 특별한 행사를 기획하는데 참여도 하고, 또 찾아와 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의 진솔한 이야기도 좀 해주면 좋겠다고 부탁을 했다. 누군가의 앞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린 시절 꿈이었던 나는, 꿈을 이룬 것처럼 기쁜 마음이 들었다. 남편에게 말했더니 자신이 운전하여 데려다주겠다며, 아이들과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겠다고 했다. 늘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내가 운전을 하는 것을 불안해하는 남편이 그렇게 나올 것이라 예상했지만 썩 내키지 않았다.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으면 행사에 참여하는 동안 불편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마음이 딴 데 간 사람처럼 집중을 못할 게 뻔했다. 남편을 설득하고 아이들을 구슬려 집에서 재미있게 놀 스케줄과 맛있는 점심 메뉴를 정해주고는 나 홀로 떠날 계획을 했다. 운전실력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아 동네에서만 운전을 하는 나는 차를 가져갈까 말까 고민했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는 차를 가져가는 것이 훨씬 더 좋기에 큰 맘 먹고 직접 운전을 하기로 했다. 첫 장거리 운전이었다.



행사 당일, 나는 차에 몸을 싣고, 차는 고속도로에 얹었다. 잔뜩 긴장한 채로 가다 서다를 반복했지만 콧노래가 흥얼흥얼 흘러나왔다. 친절한 내비게이션 언니는 마지막 휴게소를 알려주었다. 그냥 갈까 고민하다가 나는 휴게소 방향으로 차선을 갈아탔다. 늘 운전석 옆자리에서 휴게소를 맞이하던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면허도 없던 내가, 면허가 있어도 운전을 못하던 내가, 운전을 해도 동네만 하던 내가 고속도로에 몸을 싣고 1시간을 달려 휴게소에 주차를 하다니 내가 뻗어나갈 영역이 한 층 더 확장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좁고 좁은 동네에서만 맴돌던 내 인생이 허들을 뛰어넘어 경계를 허물고 바운더리를 넓히고 있었다.



유유히 주차를 마치고 화장실에 들렀다. 넉넉한 시간적 여유를 확인하고는 커피 한잔을 샀다. 시원한 커피를 손에 들고 차로 돌아와 다시 액셀을 밟았다. 그 순간 스르르 번지던 그 미소가 지금도 눈앞에 그려진다.






천안으로 떠났던 여행은 내게 새로운 세상을 펼쳐주었다. 운전석에서 바라보는 휴게소의 정취를 맛보게 했고, 운전석에서 느낄 수 있는 브레이크등 불빛의 향연을 선물했고, 내비게이션 속 다정한 언니와 더 친한 인연을 맺게 해 주었다. 누군가는 그게 뭐 대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늘 작은 공간 안에서 맴돌던 내게 그날의 시도는 충분히 센세이션 했고, 오래도록 각인되었으며, 두고두고 벅찼던 순간으로 남아있다. 정말 신기하게도 그날 이후로 고속도로를 관통해야 하는 강의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날, 내가 직접 장거리 운전을 시도하지 않았다면 선뜻 OK 할 수 없었을 테다. 한 걸음 내디뎠더니 더 큰 세상이 성큼 다가와준 것 아닐까.



언젠가 고향 부산에 오로지 나만의 힘으로 운전해서 가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음, 그건 너무 피곤할 것 같지만, 언젠가는 언젠가이니까 상상 속에 남겨둔다. 내가 사는 작은 새장의 문을 열고 날아가 보았던 그날의 기억은 내 여행의 순간 중 가장 찬란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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