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웠던 그해 여름

by 책닮녀

6학년, 나는 성당 생활에 무척이나 열심이었다. 어릴 적부터 갔던 편안한 공간이었고, 6년 동안 지내오며 친구들과도 정이 많이 들었다. 다른 학교에 다니지만 주말마다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함께 했다. 당시 나는 성당에서 전례부 활동을 하고 있었다. 미사 시간에 신부님이 미사를 드릴 수 있도록 진행을 맡는 역할이었는데, 목소리가 예쁘다는 칭찬에 죽고 못 사는 때인지라, 마이크 앞에 서는 걸 정말 사랑했다. 당시 10대 1 정도의 경쟁률은 뚫고 전례부가 되었기에 자부심도 상당했다. 그땐 내 생활에 있어서 전례부 보다 소중한 것은 없었고, 집안 행사와 모든 일정은 나의 성당 스케줄에 맞춰질 정도였다.



여기까지는 우리 가족들과 친구들이 아는 사실이고. 진짜 내가 그렇게 모든 걸 제쳐두고 열심히 성당에 나갔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앞서 말한 이유도 맞긴 하지만 가장 큰 이유가 누락되었다. 바로 내가 좋아하는 C가 함께 전례부를 하기 때문이었다. 같은 성당에 다니며 오래 봐왔지만 다른 학교에 다니고 있어 접점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전례부를 하면서부터 따로 모여서 연습도 하고, 특별한 활동도 많이 했다. 당시 전례부 인원이 5명이었기에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황금 같은 시간이었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으니 나는 늘 성당에서 개근하는 아이였다.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좋아하는 마음이 커져갔다. 그때는 내가 무얼 먹었길래 그렇게 용기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밸런타인데이를 맞이하여 나는 C에게 사랑 고백의 편지를 썼다. 뭐라고 썼는지는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무려 A5크기 편지지 두장에 걸쳐서 주저리 주저리 썼다. 아마도 나의 글쓰기 DNA는 그때부터 시작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부러 그런 것인지, 아니면 아이들이 어쩌다 발견한 것인지 나의 진심을 한 땀 한 땀 눌러쓴 편지는 성당의 모든 남자아이들이 돌려보게 되었다.



부끄러워서 성당을 그만두고 싶을 정도였지만, C에게 너무 실망해서 화를 내고 싶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성당을 그만두기에는 C를 너무 좋아했고, 실망해서 화를 내기에는 C를 정말 좋아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참는 수밖에.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듯 나는 성당에 열심히 나갔다. 그리고 이내 그 소동은 잠잠해졌다. 모두들 내 마음을 알아버렸지만. 그 후부터 C군과는 조금 데면데면하게 지냈다.



그 해 여름, 여름 신앙학교에 참가하게 되었다. 2박 3일 동안 성지순례를 하는 코스였는데, C도 당연히 참여했다. 신앙학교는 조별로 많은 미션을 수행하는데, 나는 6조 조장을 맡았고, C는 5조 조장을 맡았다. 하필 어색한 이때 바로 옆 조 조장이라니. 그런데 더 곤란했던 것은 산행을 할 때는 1,2조가 한 팀, 3,4조가 한 팀, 5,6조가 한 팀이 되어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여전히 좋아하지만 실망도 했고 속앓이도 했던 나로서는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가슴이 요동치는 일이기도 했고.



아무렇지 않은 듯 조별, 팀별 과제를 수행하며 산행을 이어갔다. 성지순례를 하며 당시의 아픔을 느껴보는 시간이기에 5~6시간 동안 우리는 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며 험한 산을 넘었다. 정말이지 예뻐 보이려야 예뻐 보일 수가 없는 모습이었다. 땀에 찌글찌글 쩔어버린 몸으로 Cdhk 나란히 걸으려니 걱정이 되어 멀찍이 걷곤 했다. 얼른 이 시간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중, 산행 체험의 마지막 코스로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진짜 믿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었다. 두 사람의 손목을 한 밧줄로 묶고는 한 명의 눈을 가리고 한 명은 안내를 하며 산을 내려가는 미션이었다. 완만한 곳에서 안전하게 진행되는 것이었지만, 눈을 가리고 산을 내려간다는 건 결코 쉬운 게 아니었다. C와 나는 조장으로서 가장 선두에서 손목을 묶었다. 나의 마음을 이미 알고 있는 아이들은 손목을 묶자 '오오오~'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소리 지르는 아이들을 째려보았다. 그리고 나는 눈을 가리고 C의 안내에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눈을 가리니 C의 숨소리가, 나를 안내하는 목소리가 고막을 더욱 파고들었다. 더운 여름, 5시간 동안 고개를 몇 번이나 넘고 넘어 땀이 났다 식었다를 반복하며 풍기는 C의 냄새도 싫지 않았다. 몇 번 위험했던 순간마다 땀으로 코팅된 끈적한 나의 손목을 따스한 손이 붙잡아 주었다. 그때마다 쿵쾅쿵쾅 심장이 요동치는 소리가 내 귓가에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날치는 심장을 애써 부여잡으며 산을 내려왔다.



신앙학교의 일정이 모두 끝나고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C의 앞 좌석에 앉게 되었다. 힘든 산행으로 세상모르고 잠이 들었던 나는 계속해서 바깥 통로 쪽으로 고개가 하염없이 쓰러졌다. 그때마다 내가 너무 위험하지 않게 슬며시 고개를 일으켜 세워 살며시 받쳐주었던 손길이 있었다. 정말 호랑이가 와서 발을 깨물어도 모를 만큼 곯아 떨어졌던 나는 누군가 일으켜 세워준다는 것만 느낌으로 알아차렸는데, 알고 보니 그 누군가가 C였던 것. 버스를 내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친구가 알려준 그 사실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정말이지 나의 뜨거운 여름이었다.



그 후로 C도 나를 좋아한다더라는 카더라 통신이 퍼졌고 우리는 사귀지는 않지만 서로를 암묵적으로 좋아하는 친한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C는 우리 동네를 떠나 이사를 갔고, 거주지를 우선으로 하는 성당의 규칙으로 성당도 새로운 곳으로 옮겨갔다. 핸드폰도 삐삐도 없던 시절, C의 집전화번호를 캐려면 캘 수 있었지만 거기까지는 용기가 없었다. 그렇게 C와 나의 인연은 끝이 났다.




성인이 되어 문득 C가 궁금해진 나는 싸이월드에서 OO년생 OOO을 검색해 보았다. 그리 많지 않은 이름 덕분에 몇번의 클릭으로 C의 미니홈피를 찾을 수 있었다. 세월이 흘러 내가 변한 것도 있겠지만, '내가 얘를 좋아했다고?' 하는 생각에 그저 웃음만 나왔다. 그래서 그냥 창을 닫았다. 나의 여름을 뜨겁게 만들어 준 C를 그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싶어서.




언타이틀의 보컬을 닮은 C야. 여름 신앙학교에서 언타이틀의 '책임져'를 부르던 네 모습이 여전히 생각나.

그런 너를 따라 '내 인생 책임져'부분을 크게 따라 불렀던, 그때 그 순간을 내게 선물해 줘서 고마워.

그리고 겨울마다 그런 여름을 떠올리게 해 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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