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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Jul 17. 2023

하지만 글은 써야 하니까

꾸중도 벌칙도 손실도 없지만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게 2021년 1월이니까 이제 2년 하고도 반년이 더 지났다.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하루도 빠트리지 않고 글을 쓰지도 않으면서 감히 글을 쓴다고 말하기도 뭣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두꺼운 낯짝을 들이밀며 글 쓰는 삶으로 익어가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신기하게도 글이라는 건 쓰지 않으면 쓰고 싶어 졌다가, 막상 하얀 화면을 마주하고 앉으면 세, 네 줄 아무 말 대잔치를 하다가 '쓰고 싶지 않아!'를 외치게 되는 마법 같은 것이다. 그다지 변덕이 심한 스타일도 아닌데, 글을 쓸 때만큼은 하고 싶은 이야기도 변덕이 되고, 쓰고 싶은 마음도 변덕이 된다. 때때로 쓰고 싶다와 쓰고 싶지 않다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는 왔다리 갔다리를 할 때도 있다. 연애할 때 못하던 양다리를 글을 쓸 때 하면서, 연애할 때 못하던 밀당은 왜 여전히 못하는 건지. 그저 밀어내기만 하거나 그저 당기기만 하는 이 무식한 사람보소. 



책을 쓰고 나니 내 안에 꿈틀대던 이야기가 껍데기처럼 홀랑 빠져나왔다. 신문고에다 대놓고 소리치듯 하고 싶어 안달이던 이야기를 뱉어내고 나니 후련한 마음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더 깊은 곳에 있는 나의 무언가를 꺼내야 한다는 생각에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고 그래서 살짝 주춤하기도 하다. 때로는 쓸만한 글감이 떨어진 것 같아 괜스레 글을 멀리 하게 된다. 그럴 때는 함께 쓰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 약속을 하면 쓰게 되니까. 마감이 있으면 글을 쓰게 되니까.



어겨도 누구 하나 무어라 하지 않는, 어떠한 벌칙도 손실도 없는 약속을 혼자 정해놓고는 백일 쓰기를 했었다. 명절에 시댁에서 전을 부치다가도, 여행을 가서 술을 거나하게 들이켜고서도 노트북을 켜서 약속을 지켰다. 글을 쓴다는 건 언제나 나와의 만남이고 나와의 약속이고 나와의 싸움이니까. 백일 쓰기가 끝나고 다시 글쓰기가 뜸해진 나를 보며 어떠한 약속을 하고 싶었다. 모르는 놈이 용감하다고 해보지 않았을 때는 백일을 하겠다고 큰소리쳤는데 막상 한번 하고 나니 두 번 약속을 하는 게 어려워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글쓰기를 처음 시작하며 그림책 에세이를 쓰고 싶었을 때, 그림책을 보며 떠오른 단상들을 나누고 싶었을 때, 이런 글을 함께 쓰고 티키타카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하곤 했다. 인간은 누구나 외롭지만 함께 글을 쓰는 동안은 그리 외롭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즘, 운 좋게 도서관에서 '그림책으로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하지만 무료로 진행되는 도서관 수업은, 언제나 그러하듯 열성적으로 임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참 어려운 법. 그래서 그냥 그렇게 흐지부지되었다. 나 조차도.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바라던 그림책을 보며 글을 쓰는 모임을 직접 만들었다. 적극적인 참여를 위해 참가비를 받고 함께 쓸 사람들을 모았다. 참여하신 분 들이 글쓰기의 매력에 조금 빠진 듯하여 보람되었던 1기 모임을 끝내고, 누구보다 내가 다시 또 글을 쓰고 싶어 2기를 모집했다. 오늘은 그 2기 모임의 첫날. 오전의 바쁜 일정과 돌아와 집안을 건사하느라 정신이 없어 글쓰기를 패스하고 싶다는 유혹도 잠깐 느꼈다. 하지만 글은 써야 하니까. 컴퓨터 앞에 앉았다.



안 쓰면 그만이고, 안 써도 아무 지장 없는 삶을 살면서 나는 왜 그렇게도 쓰는 환경을 만드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멋들어지게 좋은 글을 발견하면 나도 글을 써서 나누고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그 글이 너무 멋져 내가 초라해 보일까 봐 글이 쓰기 싫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글은 써야 하니까. 쓰면 쓸수록 느는 정직한 글을 보면서 나는 오늘도 이렇게 의식의 흐름대로 아무렇게나 - 쓴 척하지만 나름 고심해서 -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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