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고마워
"왜 엄마는 나를 8월에 낳았어?"
댓 발은 나온 입을 여섯 발 가까이 내밀며 엄마에게 심통을 부렸다.
"더운데 니 낳는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나. 그때 하꼬방에 살 때, 니 낳고 너무 더워서 찬물에 손발 막 담그고, 찬바람 쏘이고 했더니. 그래서 지금도 팔다리가 시려서 한여름에 긴 팔 입는 다이가. "
언제나 묻는 말에 대답은 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부터 하는 엄마는 그때도 그랬다.
"아니, 왜 하필이면 8월이냐고! 7월도 있고, 9월도 있는데"
더운 여름 아이를 낳고 젖을 물리는 게 얼마나 고욕스러운 일인지 눈곱만큼도 모르던 초등학교 시절, 나는 그저 8월의 태어난 아이라는 게 원망스러웠다. 요즘이야 8월에도 개학을 하고, 또 개학을 하지 않더라도 핸드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언제든 친구와의 만남을 약속할 수 있는 초등학생의 세계가 열렸지만, 당시에는 방학이 되면 한 동네에 사는 친구에게 편지를 부치기도 하고, 집으로 전화를 걸어 OO이 공부하니까 전화하지 말라는 말을 듣고는 수화기를 내려놓아야 했다.
방학에 태어나서, 그것도 방학의 정중앙에 태어나서는, 단 한 번도 교실에서 친구들에게 축하를 받아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정말이지 화가 나고, 비통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학기 중에 생일을 맞은 친구들은 우르르 떡볶이 집으로 몰려가 파티를 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아이를 생일날 집으로 초대하는 방법으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학년이 올라가니 아이들은 돈을 모아 초코파이 케이크를 만들어 교실에서 조촐한 파티를 해주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이 부러웠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생일이 방학이라 억울했던 나는 엄마에게 또 묻곤 했다. 도대체 나를 왜 8월에 낳았냐고. 당시 나로서는 투덜 댈 수 있는 상대가 엄마밖에 없었다. 엄마가 되고 나서야 엄마의 어떠한 의도도 없었음을 알게 되었지만. 하고 싶은 말부터 늘 하는 엄마지만, 그때 엄마는 웬일로 질문의 핵심을 찌르는 답을 했다.
"나중에 네가 엄마 되고 하면 더 좋다. 8월이면 애들도 방학이니까 가족들 다 같이 놀러도 가고. 여행도 가고. 네 자식들이 애를 낳아도 방학이니까 할머니 생일이라고 올 거 아닌가베."
아니 무슨 귀신 시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나는 당시에 생각했었다. 그게 뭐가 좋냐며. 그딴 시시한 게 뭐가 좋냐며. 나는 지금 10대인데 70대 때 좋으니까 참으라는 게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이냐며. 그리고 나는 독신주의인데 내 자식에 손자라니 이게 웬 말이냐며.
8월에 태어난 아이. 곧 나의 생일이 오겠지. 그것도 아이들 방학에.
8월에 태어난 덕분에 아이들이 태어나고도 늘 생일을 기념하여 특별하게 보낼 수 있었다. 멀리 여행을 가기도 하고, 가까운 곳으로 나들이를 가기도 하고, 아니면 멋스러운 곳에서 기분을 내기도 하고, 그것도 아니면 집 앞 공원을 가족과 함께 발맞추어 걷는다. 물론 방학이 아니라도 어느 때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방학이라서 좀 더 여유롭고 더 특별하게 가족과 함께 보내고 있다. 서른의 느지막이 되어서야 그때 엄마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진다.
어린 시절 나의 생일은 조금은 외로웠지만, 괜찮다.
훗날 나의 손주들(?)이 생일 축하의 총량을 채워줄 테니까.
+덧: 딸아! 아들아! 뜻하지 않게 결혼, 출산 강요해서 미안. 너희의 뜻을 존중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