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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Sep 05. 2023

바다가 그리워지는 순간이 있을까?

살다보니

"저는 고향이 부산이라...."

는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이런 말이 돌아온다.

"우와 좋겠다, 완전 부러워."

그럼 나는

"그다지 좋을 건 없어요. 여기서 너무 멀어서 가기만 힘들 뿐이죠. 도대체 뭐가 좋죠?"

라고 되묻는다.

한결같은 대답은

"바다가 있잖아."였다.



사람들은 내가 부산이 고향이라고 하면 바다를 볼 수 있어서 좋겠다고 한다. 나는 도무지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바다가 뭐라고. 바다는 나의 직모 머리카락을 바람과 함께 마음대로 변주하는 엉터리 지휘자에 불과했다. 바다의 소금기 덕분에 나는 매우 자유분방한 헤어스타일을 하곤 했으니까. 바다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고등학교 복도 창문을 열면 철썩철썩 파도 소리가 들려오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는 항구의 불빛이 감성을 자극하곤 했다. 대학시절에는 3차, 4차까지 갔는데 돈은 없지만 열정은 많을 때 광안리 바닷가 모래사장에 자리를 잡고는 새우깡에 맥주를 한잔 들이키곤 했다. 다음 날 집안에 굴러다니는 모래 때문에 진절머리가 난 적도 있었다. 바다는 내게 그저 길가에 있는 가로수 같은 모습이었다. 데이트는 물론 남사친과 만나는 순간에도 우리는 자연스럽게 바다를 걷고 바다에 널린 비둘기와 갈매기에 소리를 지르곤 했다. 낭만보다는 현실의 공간이었다.



그땐 살면서 바다가 그리워지는 순간이 있을까? 생각했다.



꿈 하나를 바라보고, 열정 하나 믿고 서울로 상경한 20대의 어느 날, 바라만 보던 꿈도 믿었던 열정도 흐릿흐릿 형태가 사라져 가던 어떤 날이었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신도림에서 지하철을 갈아타고는 서울역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차창밖으로 펼쳐지는 회색빛 강물은 나로 하여금 바다를 떠올리게 했다. 누군가 그랬다. 한강이 자살률을 높인다고. 강물은 바다와는 또 달라서 우울한 심연으로 우리를 끌어당긴다고. 내 마음이 그래서 그렇게 보였겠지만 강물은 바다에 비해 너무나 답답했다. 회색빛 강물은 마치 지금의 내가 그냥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바다에 가고 싶었다. 바다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부산 앞바다는 강원도 바다처럼 푸르지도 않고, 제주도 바다처럼 맑지도 않지만 작고 아담했고 사람의 향기로 복작거렸고 추억의 온기가 피어오르는 곳이었으니까. 바다가 도대체 왜 좋다는 거야라고 반문하던 나도, 세상이 만들어 놓은 장애물에 걸려 작고 작고 작은 생채기가 쌓인 날에는 바다에 가고 싶었다. 그저 멍하니 바다가 들려주는 변주곡에 취해 바람과 함께 요술처럼 부리는 헤어스타일 지휘에도 흠뻑 취하고 싶었다.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나고, 엄마를 보기 위해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몸을 실었을 때,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바다를 기다렸다. 바다를 보러 가야지. 파도소리를 듣고 바다 내음을 맡고 모래사장을 밟아야지 하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동안 가로등에 살짝 비친 밤바다는 차갑기보다는 따듯했다. 포근히 나를 안아주었다. 반짝반짝 빛나며 내게 빛을 보냈다. 물론 버스에서 막상 내렸을 때는 바다와 바람의 합작에 다시 현실을 살짝 직시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바다를 보니 좋았다. 희미해졌던 꿈이 선명해지고 식었던 열정이 뭉게뭉게 피어오르지는 않았지만 그대로도 괜찮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그냥 좋았다.





우리는 힘들고 지칠 때면 그래서 누군가 내 말을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날에 이렇게 말한다.

'우리 바다 보러 갈래?'

이번 추석에 부산에 가면 부러 바다에 가야지. 그리고 그림책 『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의 표지처럼 그이와 함께 모래사장에 털썩 앉아 내 마음에 안부를 묻고 싶다.  마음의 이름도 불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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