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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Nov 01. 2023

"엄마, 눈이 와. 함박눈이 와"

내 인생에 눈이 있는 풍경은 그리 많지 않다. 따뜻한 남쪽나라 부산에서 나고 자란 나는 어려서 눈을 본 기억이 별로 없다. 눈이 온다고 해도 쌓이지 않는다. 땅에 닿는 순간 사라지는 눈이라 눈사람을 만들거나 눈싸움을 하거나 눈천사를 만들거나 그런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맛이라도 보려고 손바닥에 눈을 올리는 순간 사르륵 물방울로 변신하고 마는 눈이 내가 아는 눈의 전부였다. 어릴 적 내가 7살 정도 되었을 때 즈음, 부산에 엄청나게 눈이 왔다는 사실을 그때 내가 눈을 본 적이 있다는 사실을 사진첩 속 활짝 웃고 있는 내 모습을 통해 알았다. 



그러다가 20대가 되어 서울로 상경했고, 나는 첫겨울을 맞이했다. 마법처럼 사라져 증발해 버리던 하얀 눈은 바닥 위에, 나무 위에, 지붕 위에 켜켜이 쌓여 두터운 층을 만들었다. 내 신발이 지나간 자리에 깨끗하고 선명한 눈발자국이 남는 게 신기해서 빙그르르 돌며 발자국을 남기곤 했다. 20대가 혼자 바닥에 누워 눈천사라도 만들면 손가락질이라도 받을까 봐 차마 그렇게 하지는 못하고 괜히 요리조리 삐뚤빼뚤 왔다리 갔다리를 반복했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서부터는 눈이 그렇게 반갑지 않았다. 눈이 오는 날 아이 유치원이라도 데려다주려면 길을 서둘러야 하고, 아이는 괜히 나가자 하고, 나갔다가 감기 걸리면 또 등원을 못하고. 그래서 눈이 오면 아주 아주 작은 핑계를 대서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아이들의 목소리가 작을 때 말이지, 이제는 시커먼 머리가 제법 커서 눈 오는 날은 무조건 나가고야 마는 아이들이다. 동네 앞에 혼자 내보내도 되는 나이지만 가끔씩 첫눈이 내리는 날은 나도 따라나간다. 여전히 부산에서는 볼 수 없었던 하얀 풍경에 감탄하며 혼자 어린 시절의 나를 발견해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넨다.



눈이 있는 장면을 더듬어 보니 그 장면 어디에도 엄마가 없었다. 물론 어린 시절 부산에 내린 폭설 속 나의 환한 미소를 찍어 준 건 엄마겠지만, 그 사진 속에는 엄마의 모습이 없기에, 설경 속 엄마는 상상이 잘 안 된다. 딸내 집에 정말 안 오는 엄마지만, 더구나 눈이 오는 때에 서울에 절대 오지 않는 엄마지만, 펑펑 내리는 함박눈을 엄마와 함께 맞고 싶다는 상상을 한다. 



소녀 같은 엄마에게 하얀 눈을 던져보기도 하고, 하얀 눈 속에 엘사보다 아름다운 엄마를 사진으로 꼭 남겨두고 싶다. 자연을 좋아하는 엄마는 꽃이 피는 봄이 오면 늘 나에게 저 꽃 너무 예쁘지 않냐고 하셨다. 여름에는 푸른 나무 그늘 아래에서 나무가 참 싱그럽다고 하셨다. 가을에는 어떻게 이런 단풍이 있을 수 있냐고 신비롭다고 감탄하셨다. 이러타할 장면이 없는 부산의 겨울 풍경 속에 엄마의 기억 남는 말이 없어 아쉽다. 알록달록 꽃을 보면, 푸르른 초록을 보면, 화려한 단풍을 보면 소녀 같은 얼굴로 자연을 느끼던 엄마 얼굴을 떠올리는 것처럼, 하얀 눈을 보면서도 엄마 얼굴을 그릴 수 있으면 좋겠다.



아직 젊디 젊은 엄만데, 왠지 모르게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24살에 엄마를 떠나와 일 년에 두 번 얼굴 보는 것이 전부라는 사실에 마음이 아린다. 늦었다 생각할 때부터 잘하면 된다지만 여전히 엄마와 나는 400km 떨어져 있고, 나에게는 곁에서 돌봐야 할 가족들이 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느라 시간이 여의치 않다. 핑계 같아도 그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눈 오는 날, 엄마와 팔짱을 끼고 발맞춰 걸어가며 하얀 눈 위 우리의 흔적을 남기는 상상을 해 본다.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거니까. 핀란드가 되든 훗카이도가 되든 서울시가 되든 간에 언젠가 한번쯤 눈을 맞으며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는 날이 있기를. 그때 이렇게 말해야지. "엄마, 눈이 와. 함박눈이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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