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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Sep 27. 2023

안녕, 나의 작가들

기억할게요. 당신의 이야기를

9시 15분.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마실 커피와 따뜻한 물도 넉넉히 챙겼다. 그림책 한 권과 키보드, 그리고 종이말이 뭉치도. 10시까지라 시간이 넉넉했지만 얼른 시동을 걸었다. 비 오는 날 혼자 차창밖을 바라보는 분위기는 어떨지 느껴보고 싶어서였다. 드디어 도착했다. 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들이치지 않을 정도로 약하게 내리는 비 덕분에 한 동안 문을 열어두었다. 보슬보슬 부슬부슬 소리에 취해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스팔트에 스며드는 비 냄새가 있겠냐마는 마치 향긋한 흙내음이라도 느껴지는 듯 시원하고 신선한 향이 마음을 적시는 듯했다. 멍 때리는 동안 잠깐 꺼내두었던 정신머리를 챙겨 준비해 온 다과를 세팅했다. 가져온 접시에 과일을 담고 쿠키를 담고, 뜨끈한 물을 담은 보온병도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아두었다. 조용하고 잔잔한 음악을 틀었다. 



비 내리는 화요일 오전, 통창 유리를 자랑하는 책방에서 조용한 노래를 들으며 쓰는 글쓰기 모임이라니!

낭만이라는 말은 이럴 때 사용하는 거지 고개가 끄덕여졌다.  



곧이어 감귤처럼 상큼한 차림으로 윰작가가 등장했다. 글쓰기 모임에 1등으로 신청하고는 1등으로 오고 1등으로 숙제를 올리는 모범생 윰작가는 오늘도 다정한 미소를 장착하고 인사를 건넸다. 뒤이어 솔직한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어 주는 용기롭고 털털한 매력의 달섬작가가 어여쁜 보조개를 드러내며 등장했다. 자신만의 언어로 자근자근 오독오독 글을 씹어 먹는 봄바람 작가는 향기로운 봄바람 대신 그윽한 가을바람을 몰고 들어왔다. 모두 입장완료.


<우리의 모든 날들> 그림책을 낭독했다. 함께 보는 힘이란. 혼자 볼 때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닌다. 외계인이라는 존재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일기를 써서 손녀에게 유산으로 주고 싶은, 오랜 세월의 때가 묻은 물건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글을 써야 할 시간이다. 평소와는 다르게 글쓰기 복불복으로 각자의 글을 쓴다. 종이말이 뭉치를 골라 끈을 풀고 서로의 글감을 탐내하는 것도 잠시, 자신의 이야기 속으로 액셀을 밟기 시작한다. 타닥타닥타다닥. 잔잔한  BGM위로 입혀지는 키보드 소리가 토닥토닥 마음을 두드려준다. 살짝 찌푸린 미간과 한 곳을 오랫동안 응시하는 눈동자, 그러다 죽죽 그어지는 선, 글쓰기에 진심을 내어주는 작가들과의 이 시간이 오늘 하루 우리의 아름다운 순간이다.



책방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글을 쓰던 글쓰기 모임이 오늘로 끝이 난다. 세 사람과 삼 주간 나눈 세편의 글로 그 사람을 단정 짓고 판단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글로 만난 사이기에 비밀 아닌 비밀들을 공유하는 느슨하고도 끈끈한 사이가 되었다. 비록 이 시간이 끝나 다시 만나지 못한다 해도, 함께 나누었던 대화들이 때때로 내 귓가를 두드리고 마음을 울릴 것이다. 만화책을 펼칠 때, 전래동화를 읽어줄 때, 드라마를 볼 때, 설거지를 할 때, 노을을 마주할 때, 아이와 투닥거릴 때, 누군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을 만날 때, 벼락치기 능력자가 되고 싶을 때, 무작정 걷고 싶을 때, 화장실에 붙은 시 한 구절을 만났을 때. 함께 나눈 수많은 이야기들을 가슴에 묻고 오늘은 이만 안녕을 고한다. 다시 볼 그때까지. 글로 또 만나기를. 안녕.



성남시 수정구 고등동에 위치한 서몽 그림책방에서 <그림책으로 글쓰기> 모임을 진행했습니다. 3주간 함께 한 작가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이 글을 씁니다. 여전히 글을 쓰며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며 살아가기를 응원합니다. 짧은 휴식을 마치고 글쓰기 모임은 다시 돌아옵니다. 10월, 익어가는 가을 정취에 스며드는 글쓰기 모임, 같이 하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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