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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Oct 24. 2023

우리 집에는 죄책감이 산다

목살 두 판을 굽고 치열하게 먹고 나니 남은 건 뱃살, 아니 흥건한 기름이었다. 십여 년 전에는 아무런 생각 없이 기름을 하수구 구멍에 쏟아붓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재활용 분리수거에서 못쓰는 통을 하나 찾아온다. 여기저기 튄 기름을 닦은 휴지들을 한데 모으고, 쓰다만 휴지가 모자라면 쓰레기통에 멀쩡히 버려진 휴지를 꺼내 통에 꾹꾹 눌러 담고는 흥건한 기름을 들이붓는다. 그러고는 여기저기 튄 기름을 닦기 위해 걸레를 찾다가 못 찾은 척, 못 이기는 척 물티슈에 손을 내민다.


이제야 설거지를 하려고 수세미를 집어 들고 바(baar) 형태로 된 세제를 마구 비벼 기름때를 닦아보지만, 속수무책 어림없다. 고기를 먹고 난 기름을, 그것도 돼지고기 기름을 친환경세제로 닦기란 여전히 어렵다. 팔이 부서질지도, 어쩌면 비누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핑계 대고는 플라스틱 통에 담긴 액체 세제를 한 번, 두 번, 세 번 쭉쭉 눌러댄다. '어쩔 수 없지 뭐'라는 후렴구를 중독성 있게 읊조리며. 


점심 먹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저녁 먹을 시간이 다가오자 만만한 반찬 콩나물 무침을 준비한다. 뜨거운 물에 잘 삶아 건져 올린 콩나물에 참기름과 깨소금을 팍팍 뿌리고는 손맛을 더할까 비닐맛을 더할까 고민하다가, '아유, 이런 건 비닐을 쓰는 게 더 위생적이라고' 외치며 애써 합리화한다. 아무렇지 않게 비닐장갑을 뽑아 든다. 


저녁을 먹고 나서 샤워를 하는 딸아이에게 바 형태로 된 샴푸를 쓰라고 하려다가 사춘기에 접어들고 나서 강력해진 정수리 향 때문에 시중에 파는 액체 샴푸를 건넨다. 펌프질 적당히 하라고 괜히 말해보지만, 여전히 플라스틱 통은 우리에게서 멀어지지 않는다. 내가 먼저 손절하면 되는데, 필요하다고 편리하다고 둘러대며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질척거린다.


내일 소풍 간다고 말하는 아이, 쓰레기봉투 만들지 않게 과자를 챙겨 오라는 선생님의 당부에 과자를 옮겨 담는다. 유리통에 담고 싶지만, 아이의 어깨가 무거워지는 게 안쓰러워 패스. 플라스틱 통에 담고 싶지만 괜히 부피를 차지하는 게 싫어 패스. 양심을 살짝 구겨 넣고는 비닐봉지를 꺼낸다. '쓰고 가져와 재활용하면 되지'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며 무거운 마음을 덜어낸다. 


얼마 전 선물 받은 고체치약을 꺼냈다. 오늘 돼지고기를 먹으며 새우젓 듬뿍 들어간 부추김치를 마구 먹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거품이 적게 나서 그런 건지 개운해지지 않는 입안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보통의 치약을 꺼내 든다. 구강 위생을 지키는 게 그래서 병원에 덜 가는 게 결국은 환경을 지키는 거라며 치약을 듬뿍 올린다. 한번 즘은 괜찮아라고 말하면서.





우리 집에는 죄책감이 산다. 내가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죄책감. 환경을 지키겠다고 말해놓고서는 언행불일치하는 삶에 대한 죄책감이. 그 행동이 다가올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걸 알면서도 죄책감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꽤 생각 있는, 깨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산다. 기후 환경, 기후 위기, 지구 멸망이라는 키워드로 환경의 심각성을 논하고, 변화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편리하고 어쩔 수 없다는 논리로 환경 보호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다. 나 역시도 죄책감이라는 친구만 옆에 둘 뿐, 그다지 변화 없는 매일매일에 익숙한 생활패턴을 가동한다. 



사실 지구는 괜찮다. 지구는 별일 없다. 큰 일 난 건 지구별에서 생활하는 우리 인간들일뿐. 우리 집에서 죄책감이라는 녀석이 하루아침에 방을 뺄 수는 없겠지. 다만, 터줏대감에서 하숙생으로, 하숙생에서 가끔 놀러 오는 손님이 되기를 바란다. 이 모든 것은 나의 선택, 나의 행동, 나의 매일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한마디 던져본다. 당신 집에는 죄책감이 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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