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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Aug 24. 2023

운다고 달라지는 세상

이제 맘놓고 우세요

+그림책으로 글쓰기 3기 중
그림책 <모두 가 버리고>에서 주인공 프랭크는 눈물로 마멀레이드를 만들죠. 너무 묽지도 너무 뻑뻑하지도 않게, 적당히요. 그 장면을 보면서 '나의 눈물로는 무엇을 만들면 좋을까?'라는 상상 글쓰기를 제안했습니다. 상상이 너무 멀리멀리 흘러가 100여 년을 훌쩍 넘겨버렸지만, 뭐 상상은 어디까지나 상상이니까요. 한편으론 언제든지 현실로 다가올 수 있으니까요. 기분 좋은 상상으로 해보았습니다. 혹시 알아요, 이루어질지도.



G.M :'운다고 뭐가 달라져?' 이 말은 어릴 때 할머니가 정말 많이 듣던 소리란다. 할머니의 아빠, 그러니까 너에게 외 증조할아버지는 우는 걸 극도로 싫어하셨어. 왜 울어서 무언갈 해결하려고 하냐고, 운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왜 우냐고, 나약한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지 말라고 하셨지. 그땐 왜 그렇게도 감정 표현에 인색했는지 모르겠구나. 하긴, 할머니의 아빠는 살아내느라 바쁜 세대였고, 감정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어. 육이오 때 태어나셔서 엄마 얼굴도 모른 채 살아오셨으니, 입에 풀칠하며 사는 거, 자식들은 잘 배우게 뒤치다꺼리하는 거에만 신경이 다 가있었지. 강한 모습으로 살아남아 힘을 가지고 잘 사는 것만이 그 시대의 공통 목표였으니 어쩔 수 없었다는 생각도 드는구나.


C:  그럼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바람대로 울지 않았어요?


G.M: 울지 못하게 한다고 해서 감정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잖니. 몰래 울곤 했지. 혼자 걸으면서도 울고, 주로 잘 때 소리 없이 베갯잇을 적시곤 했어. 근데 사회에 나가보니 다들 그런 말을 듣고 자라서 그런진 몰라도 할머니의 아빠가 말씀하시던 것처럼 이야기 하더구나. 울면 뭐가 달라지냐고. 울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왜 우냐고. 무언가를 해결하려고 우는 건 아닌데 왜 다들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지. 눈물이라는 게 감정이라는 게 한 순간에 올라와 밖으로 표출되는 건데 그걸 꽁꽁 싸매야 한다고, 그게 맞다고 옳은 거라고들 말하는 거야. 어쩔 수 있니. 사회생활하려면 맞추는 수밖에. 할머니도 울고 싶은 일이 있으면 혀를 깨물어서라도 꾹 참고, 그러다 안 되면 화장실로 달려가고, 그렇게 눈물을 아끼고 누르며 살았어. 그런데 이런 날이 올 줄이야.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라는 옛말이 딱이구나.


C: 지금은 귀하고 값진 눈물이 예전에는 천덕꾸러기였다니 참 신기해요. 저도 할머니를 닮아서 눈물이 많잖아요. 예전에 태어났음 엄청 힘들었을 것 같아요. 요즘 세상에 살고 있단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눈물수가 개발되어 너무너무 행복해요.


G.M: 그러게. 참 신기하구나. 100년 전에 할머니가 그림책을 보며 사람들과 글을 쓰는 모임을 했는데, 그때 상상으로 글쓰기를 하면서 눈물로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면 무엇을 만들까라는 주제로 글을 썼어. 그때 할머니가 사람의 마음을 낫게 하는 눈물수라는 게 있으면 좋겠다는 글을 썼는데 그 상상이 이루어질 줄이야. 상상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세상이 참 신통방통해.


C: 눈물이 사람을 치유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라는 걸 그때 이미 알고 계셨던 거죠.


G.M: 그 당시에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들이 많았어. 돈이면 다 되는 세상, 1등만 살아남는 세상 속에서 다들 최고의 기준에 맞추어 살아가느라 아픈 줄도 모르고 살았지. 그러다 점차 곪아가던 상처가 하나둘 터지더니, 대낮에 칼부림이 나기도 하고, 묻지 마 폭행이 줄을 이었어. 그 모든 게 감정보다 현실과 상황에 우선하고, 세상이 정해놓은 정상이라는 기준에 맞추어 살아가던 태도가 만든 부작용이었어. 물론 함께 사는 사회에서 어떠한 기준은 필요하지만 맞다 틀리다가 아니라 다르다로 바라봐주고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게 필요한데 말이지. 그때는 감정을 드러내면 틀리다고 말했으니,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고 억압받던 사람들이 병들어 사회를 더 아프게 했던 거지.


C: 이제는 눈물수가 대중화된 덕분에 그런 뉴스가 잘 안 보이는 것 같아요. 아플 때는 쓰담쓰담 눈물수를 먹으면 어루만져 주는 것 같고, 혼자라서 외로울 때는 두손꼬옥 눈물수를 먹으면 함께 있는 것 같고, 기쁜 날은 콸콸콸콸 눈물수를 먹으면 더 큰 감동과 기쁨이 느껴져요. 진짜 신통방통해요. 더군다나 우리의 눈물로 만들어진다는 게 신기하고요.


G.M: 그래. 내 눈물이 누군가에게 약이 될 수 있다는 게 참 든든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또 나도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 있다는 게 진짜 함께 살아가는 것 같아 훈훈하구나. 누군가는 갈수록 세상이 피폐해지고 어려워진다고 했는데, 살아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아. 방식은 변하더라도 서로를 위하고 함께 살아가려는 인간의 마음은 늘 생생하게 자라고 있어. 그런 마음을 더 마음껏 펼치고 나눌 수 있는 장을 첨단 시스템이 만들어주면 더 좋은 세상이 될 것 같구나. 그런 날이 올 때까지 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C: 아이 할머니 왜 또 약한 말씀 하세요~ 할머니가  140살까지 살 줄 누가 알았겠냐고요. 세상이 변해가고 발전하고 더 나아지고 있어요, 기술도 의학도 또 사람들의 마음도요. 그런 말씀 마시고, 오늘치 눈물 우리 안 받았잖아요. 우리 슬픈 영화 보러 가요. 제가 엄청 슬픈 영화로 준비해 놨어요. 할머니 좋아하시는 강냉이도요.


G.M: 너 때문에 슬픈 눈물 대신 감동 눈물이 먼저 나오려고 하는구나. 얼른 할머니 눈물캡슐 좀 가져다 주렴.





*눈물수

2020년대부터 감정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커졌으나 사회에서는 여전히 억압받고 힘든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을 치료하기 위해 감정코칭연구자들을 필두로 연구를 시작했으며, 2025년 타인의 눈물이 마음을 어루만지는 데에 커다란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2030년에는 국민들의 눈물을 모아 눈물수를 제작, 대중화하였으며 대한민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적으로 커다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 공을 인정받아 노벨상 의학상과 평화상을 동시 수상하기도 했다. 급격히 늘어나던 정신적 환자들을 치료하고, 틀린 세상이 아닌 각자만의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서로 인정하며 살아가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어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의약전문음료. 자신의 눈물을 매달 일정량 기증하면 눈물수를 구매할 수 있는 쿠폰이 지급되는 형식으로 경제적 상황과는 관계없이 누구나 눈물수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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