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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Aug 01. 2023

오늘의 아름다움

어쩐지 책 읽는 인간은 아름다워

방학을 어떻게 하면 조금 수월하게 보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이번 여름방학에도 찾아왔다. 늘 그러하듯 도서관 강좌에 신청할 만한 것이 있는지 샅샅이 뒤져보는데, 5학년, 3학년이 동시에 하는 수업을 찾기란 쉽지 않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는 무려 20개 정도의 도서관이 있는데, 그 도서관들의 방학특강을 일일이 뒤져 5학년과 3학년이 함께 수업하는 강좌 두 개를 찾아냈다. 




둘 중, 집에서 가까운 곳에 먼저 신청을 했는데, 두 아이를 동시에 신청하다 보니 한 명은 선착순에 들어가고 한 명은 그만 마감이 되어버렸다. 결국 신청된 아이도 취소를 하고, 조금 멀지만 다른 도서관의 특강 접수 날짜를 기다렸다가 남편과 동시에 접속하여 쟁취하였다. 그렇게 어렵게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얻어낸 방학 특강이 바로 오늘부터다. 둘이 함께 수업에 들어가니 낯을 가리는 아이들도 서로 믿는 구석이 있어 좋고, 나 역시 안심하고 보낼 수 있어서 좋다. 더구나 이번 주 목요일까지 4일 동안, 매일 2시간의 자유가 내게 주어지니, 방학도 아름답다는 걸 느낀다.




주차장에 자리가 없을까 봐 일찌감치 도착하여, 도서관에서 보고 싶은 책을 빌리고 여유롭게 강의실로 갔다. 아이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강의실에 들어가고, 나는 문헌정보실로 올라와 빈자리를 찾았다. 흔히들 말하는 명당자리는 모두 사람들이 먼저 앉아 있었고, 몇 남지 않은 빈자리 중에 적당한 곳 하나를 골라 앉았다. 핸드폰을 들어 올리는 순간, 집중력이 떨어지기 마련이기에 곧바로 책을 펼쳤다. 




꽤 오랫동안 책을 읽다가 잠깐 고개를 들었을 때, 옆 테이블 대각선에 집중하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무언가를 끄적이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며 책을 읽었다. 희끗희끗한 머리가 끄덕일 때마다 살랑살랑 춤을 추며 그 순간을 즐기는 것 같았다. 다른 한쪽에는 젊은 여자가 책을 읽고 있었고, 노트에 필사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소중한 무언가를 한 땀 한 땀 옮겨 적어 자신의 내면에 저장하는 중이었다. 들썩들썩 어깨는 신이 나 보였고, 눈꺼풀은 책이 떨구는 메시지를 주섬주섬 주워 담느라 빠르게 깜빡거렸다. 반대편 구석에는 모자를 쓴 남자가 있었는데, 푹 눌러쓴 모자 때문에 눈이나 표정이 전부 보이지는 않았지만, 책을 읽으며 입술이 일자가 되었다가 살짝 위로 향했다가 힘이 빠졌다가 하면서 씰룩씰룩 책의 리듬을 타는 모습이었다. 그 옆쪽으로 책을 읽다 말고 멍하니 바깥을 내다보는 내 또래의 여성이 보였다. 주차장 어딘가를 응시하는 모습이었다. 책을 앞에 두고 깊은 공상의 호수로 첨벙 뛰어든 모습에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했다.






책을 읽다 말고 도서관을 빙 둘러보고 찬찬히 하나하나 살펴보니, 책 읽는 인간은 참 아름답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싶어 하고, 새로운 것을 열망하며, 나와 같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고. 나와 다른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그래서 때로는 설레고, 때로는 기뻐 춤을 추며, 때로는 실망하기도, 때로는 위로를 받는, 때로는 휴식을 취하는, 때로는 타인을 배우고, 때로는 자신을 탐하는 그 모습들이 아름다웠다. 


늘 보는 풍경이지만, 방학 시간 중 갖는 귀한 2시간의 여유가 가져다준 오늘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 속에 나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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