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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Nov 03. 2023

나에겐 처음인 너를 보내며

이젠 정말 안녕

며칠 전부터 낌새가 이상하긴 했다. 8월 즈음 갑자기 길 한복판에서 차가 멈추고 난 이후부터는 차의 미세한 변화도 두렵고 무섭게 느껴졌다. 이번에는 전처럼 아예 멈추지는 않았지만 예전과 같은 바이브로 덜덜 거리는 게 꺼림칙했다. 그날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조금 이상하다고 증상을 설명했는데, 15년을 달리고 달린 차라 오래되었으니 노후로 인한 문제가 생긴 것 같다며 일단 조심히 쓰자고 했다. 그렇게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그냥 두었다.


오늘 오전에 다소 멀리 떨어진 동네에 가야 할 일이 있었다. 대중교통으로 갈까 생각도 했지만, 시간이 두 배나 걸리는 걸 확인하고는 선택의 여지없이 차키를 들었다. 시동을 걸고는 부러 전진과 후진을 하며 차의 느낌을 느꼈다. 다행히 별 탈 없는 것 같아 살포시 액셀을 밟았다. 오랜만에 한적한 고속도로를 달리며 질주 본능을 만끽했는데 거의 도착할 때 즈음 퍽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주변에는 차도 없었고 별 다른 이상도 없어 모르고 지나쳤는데 빨간 불에 잠깐 정차를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시동이 꺼져버렸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았던 식은땀 흐르는 장면에 나는 또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두 번 째라 그런지 아주 아주 침착하게 비상등을 켜고는 다시 시동을 걸었고 그다음부터는 매우 천천히 운전하며 최대한 정차하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차 밖에서 난다고 생각했던 소리가 차 안에서, 그것도 차가 달릴 때만 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너무너무 무서워졌다. 갑자기 차가 폭파하지는 않을까 하는 기우가 나를 덮치며 어느새 차 안은 불안으로 가득 찼다. 어렵사리 주차를 하고 볼일을 보고는 다시 운전대에 앉았다. 다시 멈춰 설까봐 불안하지만 멀리 떨어진 낯선 동네에서 수리를 받기에는 곤란하다보니 동네 수리점으로 곧장 갈 계획이었다.



다행히 시동이 걸려서 천천히 주행을 하는데 갑자기 오토바이 한 대가 내 옆에 서더니 빤히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말을 건넸다. 세상이 흉흉해서 헬맷을 쓰고 보이지 않는 얼굴을 한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게 무서웠지만 창문을 살짝 내리곤 무슨 이야긴지 물었다. 알고 보니 내 오른쪽 뒷바퀴 타이어가 터진 사실을 알려준 거였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알려주어서 감사하다는 말도 못 하고 황급히 갓길에 차를 멈춰 세웠다.



보험사에 전화해서 타이어 응급처치를 신청했더니 곧 긴급처치 정비사가 와서는 차를 살폈다. 이리저리 해보았지만 구멍이 커서 땜질이 불가능하다고, 결국 견인조치를 신청했다. 견인 차량을 기다리고 있는데, 차 아래 왼쪽에서 물이 뚝뚝뚝 떨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하.... 느낌이 좋지 않았다. 타이어 하나만 교체한다면 낯선 동네에서 교체하고, 직접 운전하여 돌아오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지만, 앞부분 결함이 있는 상태에서 직접 운행을 한다는 건 너무 위험해서 견인 비용을 더 들여서 결국 동네 카센터로 데려왔다.


돌아오는 길에 왠지 모르게 이번에는 그만 놓아주어야 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몇 백만 원씩 수리비가 계속 든다면 차라리 잠깐 차가 필요할 때 쏘카를 쓴다거나, 할부비를 내서라도 새 차를 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의 준비를 어느 정도하고 카센터에 보냈는데, 아니나 다를까 현재 발견함 결함만 100만 원 가까이 수리비가 나오고, 더 많은 결함이 있는데 원인을 찾기가 어렵다고 했다. 노후 차량이니 복합적이라는 말을 했다.




신랑이 20대 시절, 그러니까 나를 만나기도 전에 구매한 차량으로 명의도 신랑 명의이고, 오래 운행을 한 것도 신랑이다. 5년여 전 쯤 아이를 멀리 떨어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어야 할 일이 생기면서 내가 차를 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도 대부분 남편이 주로 차를 썼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좀 더 큰 차를 구매한 3년여 전부터 거의 온전히 내 차가 되었다. 물론 명의는 여전히 신랑의 명의지만. 차에게 나는 첫 번째 주인도 아니고 베스트 드라이버도 아니겠지만, 나에게 이 차는 첫 번째 차였고 베스트 카였다. 작고 아담해서 내가 운전하기에도 딱 좋았고 당황해서 뻘뻘 땀을 흘리던 초보시절 나를 안전하게 지켜준 그런 특별하고도 소중한 차였다.





오늘 그 차를 진짜 보내주었다. 최근에 멀리서 하는 수업을 다니며 제발 이 수업이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차가 버텨주면 좋겠다고 그렇게 해달라고 기도하곤 했는데, 내 기도빨이 잘 받는 건지, 그럴 줄 알았다면 좀 더 넉넉하게 기도하는 거였는데, 지난 수요일 그 수업이 끝나자마자 차는 안녕 작별을 고했다. 짐을 정리하고 차주인 신랑의 신분증을 넘기고 마음속으로 작별의 인사를 건네고 돌아왔다. 이제 정말 안녕이라고.



생각해 보니 바퀴가 터지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결함의 증상을 무시하고 계속 차를 탔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내가 대단히 다쳤을 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주었을지도 모른다. 뒷바퀴가 터진 덕분에 견인을 하게 되었고, 수리를 맡기게 되었고, 덕분에 나는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었다. 나의 첫 차는 그렇게 나를 끝까지 지켜주고 나를 행운아로 만들어주었다. 초보이고 초보이고 또 초보인 나를 그래도 뭐 제법 괜찮은 운전자로 만들어준 나만의 첫 차에게 마지막 인사를 보낸다. 고마워, 그리울 거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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