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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Nov 29. 2023

찜질방에서 뽕을 뽑고 싶다면

찜질방 제대로 즐기는 방법

 엠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되는데 굳이 더 놀고 싶었던 혈기 왕성한 대학교 1학년 시절, 1박 2일의 엠티를 2박 3일로 자체 수정하고는 친구들과 근처 찜질방에 가기로 계획을 수립했다. 돈 없는 학생이었기에 검색에 검색을 거쳐 다른 찜질방보다는 무려 5천 원이나 저렴한 곳을 찾아냈다. 새로 생긴 곳이라 시설도 괜찮아 보였다. 다만 위치가 조금 더 골목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는데, 당시 믿을 건 튼튼한 두 다리와 마구 꺾어 대도 아프지 않은 손목과 목관절, 몇 시간만 자고 일어나도 멀쩡한 간이 전부였기에 그 쯤이야를 외치며 친구들과 찜질방으로 향했다. 

때는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 저녁이었다. 수건과 열쇠와 찜질복을 받아 들고는 잠깐 안녕을 외치고 남자는 남자 탈의실로 여자는 여자 탈의실로 흩어졌다. 황토방과 수정방과 아이스방과 안마방과 게임방을 실컷 즐기고 또 모여서 엠티에서 수도 없이 했던 시시콜콜 진실게임을 다시 재방송하고는, 수면방으로 가서 잠깐 꿈나라에 빠졌다가 달걀과 식혜로 에피타이저를 즐기고는 야외에 나가 해가 뜨는 것을 보며 청춘을 논하고 이제는 돼지국밥 한 그릇 채워 넣으며 조식을 할 시간이라며, 사우나를 즐기고 찜질방을 나가 해장을 하기로 했다. 새벽녘 락커 키를 반납하는데,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느닷없이 추가 요금을 내라는 것이었다.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날이 바뀌었기에 하루치의 요금을 더 지불해야 한다는 것. 이미 가진 돈은 식혜와 계란과 오락기에 내어주고 고작 5천 원짜리 해장국 비용과 버스 카드가 전부였던 우리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어찌할 바를 몰라 우왕좌왕하는 와중에 평소 수완 좋은 s군이 앞으로 나오더니, 훈훈한 얼굴에 넉살 좋은 웃음을 장착했다. 그러고는 아직 들어온 지 12시간도 지나지 않았다며 애교로 사장님을 살살 달래기 시작했다. 중년의 아줌마 사장님은 원래는 안 되지만 학생들이니 봐준다며 다음부터는 이래서는 안 되며, 소문을 내어서도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고는 우리를 그냥 보내주었다. 아마 우리가 가진 돈이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으리라. 그날 이후로 그 친구는 더 수완 좋은 친구가 되었고 더 넉살 좋게 웃고 다녔고 우리 사이도 그 친구 얼굴처럼 더 훈훈해졌다. 



이토록 찜질방을 제대로 뽕뽑고 싶다면,

첫째, 찜질방에 가려거든 화창한 날에 가라. 비가 오는 날에는 찜질방이 미어터진다. 이게 찜질방인지 클럽인지 북새통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찜질방에도 명품샵과 같은 제도가 있어서 적정 인원만 들어오면 좋으련만, 그렇게 제어한다고 말하는 곳도 사실 방문해 보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어,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고 요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히며 예민하기 그지없다. 진짜 찜질방을 즐기고 싶다면 비 오는 날 보다는 벚꽃이 휘날리는 봄날, 여의도 대신 벚꽃이 만발한 여의도 상황이 나오는 뉴스를 틀어주는 찜질방으로 가자. 사실 벚꽃이야 자신이 사는 동네가 제일 예쁘지 않은가. 단풍놀이에 설악산 케이블카가 휘청거리는 때에 드론으로 내려다본 단풍 절경이 방영되는 찜질방으로 가자. 1인 1방으로 여유롭게 누릴 수 있도록 말이다.



둘째, 처음에야 이방 저 방 돌아다니며 방 구경도 하고 향기로운 냄새도 맡고 사람구경도 하고 재미있지만, 계속 다니다 보면 이 방이 이 방 같고, 저 방이 저 방 같아 옮겨다니기도 귀찮아진다. 그럴 때는 거실로 나아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선조들의 지혜를 몸소 경험하면 된다. 락커 키를 들이대며 맥주와 치킨, 오징어와 땅콩을 시켜놓고는,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어느 부분에서 보아도 이해가 쏙쏙 되는 나쁜 놈을 마구 때리고 싶은 드라마를 안주 삼는다. 요럴 때는 모두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저 호랑말코 같은 눔의 시키'를 외치며 마구 욕을 한다. 누군가 대신해주는 욕이 왜 이리도 시원한지, 마음치료까지 가능한 찜질방 매점 투어다.



셋째, 맥주는 참 맛있는데, 그래서 계속 계속 들어가는데, 이대로 누워버리면 영영 못 일어나 버릴 것 같은데, 그럴 땐 벌떡 일어나 액티비티 한 활동을 해보자. 아무리 찜질방이라지만 가만히 누워있다가 찜 쪄지기만 하다 나가면 돈이 아까우니까, 사용하라고 만들어 놓은 것들 모두 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일단 오락실부터 방문한다. 가만히 앉아서 하는 것보다는 몸을 움직이는 게임을 추천한다. 찜질을 마치고 넉넉한 찜복을 벗고 사우나에 들어갔을 때 '안 본 눈 삽니다'와 같은 예능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다면, 농구, 볼링, DDR 등의 게임을 적극 추천한다. 다음 코스는 코인 노래방. 역시 동전 잡아먹는 귀신이지만 최대한 길이가 긴 곡으로 선택하여 1절과 2절 그리고 클라이맥스까지 한 없이 소리를 질러본다. 공일오비의 <이젠 안녕>은 나의 단골곡. 에너지를 모두 쏟아내어 더 이상 움직이는 활동이 힘들다면 이제 보드게임을 하러 간다. 두뇌 활동만큼 배를 꺼트리는 건 없으니까. 스트레스받으면 배고파지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진리니까. 머리가 많이 아픈 게임을 꺼내 너도나도 멘사 회원이 되어보는 거다.



그러다 지치면 다시 보석방으로 들어가 뒹굴뒹굴하다가 다시 또 금강산도 식후경을 즐기다가 다시 또 액티비티 한 활동을 하고 다시 또 뒹굴뒹굴을 하다가 디시 또 치맥파티를 열고 드라마 수다를 즐기다 다시 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다시 또.... 이렇게 할까 봐 요즘은 일 요금제, 12시간 요금제도 아니고, 최대 6시간 정도로 제약을 두었다고 한다. 대학 시절 우리가 지금의 찜질방을 간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는. 이제는 젊어서 쓸데없이 애를 쓰는 20대가 아니기에 요렇게 즐기기는 어렵지만 오랜만에 찜질방에 드러누워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해보고 싶다. 추억 속 그 시간을 안주 삼아 맥주 한 잔 걸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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