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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Dec 07. 2023

낭만이 없어도 괜찮아

크리스마스니까

식탁 위에는 빨간 레드 와인이 흔들리는 촛불과 어우러져 있다. 노오란 조명 아래 겉만 검게 그을린 스테이크는 뜨끈한 김을 뿜어낸다. 나이프를 대고 사선으로 곱게 썰어 입에 넣으니 샤베트 마냥 사라지고 만다. 하얀 생크림 케이크는 눈 내린 마을을 연상시키는 듯 폭신폭신하다. 크림을 푹푹 퍼먹을 때마다 눈 쌓인 거리에 푹푹 발자국을 남기는 것 같아 미소가 머금어진다. 식탁옆으로 알록달록 오너먼트를 가득 안고 웅장하게 서 있는 크리스마스트리, 그보다 더 높이 쌓인 선물상자. 하하 호호 웃음이 끊이질 않는 크리스마스 식탁 풍경이다. 그야말로 성냥팔이 소녀 책에서 훔쳐보던 나와는 거리가 먼 크리스마스 풍경이다.




낭만과 무드와는 담을 쌓고 사는 현실적인 분위기의 집에서 자란 나는 어릴 적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며 본 적이 없다. 당시에 트리는 꽤 비싸기도 했거니와 청결을 중요시하는 엄마는 부스러기가 떨어지는 눈 쌓인 트리를 사줄 의향이 전혀 없으신 듯했다. 집안에 들여놓은 한껏 여름스러운 아레카야자나무에 알록달록 전구를 칭칭 휘감아 놓고서는 전기세 아깝다며 그 조차도 잠깐 켰다가 끌뿐이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예쁘지도 않은 트리 장식이 귀찮아져서는 그마저도 하지 않았다. 그런 유년 시절을 보낸 나였다.




아이를 낳고 나서 트리를 살까 알아보았더니, 보고 자란 게 무섭다고 트리가 너무 비싸게 느껴졌다. 꼭 필요한 것도 아닌데 굳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에 미루어 두었다. 큰 아이가 제법 커서 트리를 사달라고 하자 큰 맘먹고 내 키보다 조금 작은 사이즈의 트리를 샀다. 하지만 트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초록과 하양 먼지를 만들어냈고 세월이 흐르자 곳곳에 전구가 망가졌다. 시즌이 지나고 창고에 들어갔다 나오면 꼭 한 군데씩 고장 난 곳이 있어 애물단지가 되고 말았다. 아이들이 크면서 창고의 여유가 줄어들자 얼른 트리를 오이마켓에 팔아 처분했다. 



트리가 없어도 크리스마스 느낌은 낼 수 있으니까. 음식을 공략했다. 두꺼운 스테이크를 사서 요리했다. 온 집안이 미끌미끌해지고 버터 냄새가 진동하고 나서야 왜 사람들이 비싼 돈을 주고 스테이크를 밖에서 사 먹는지 알게 되었다. 그렇게 힘들게 한 양식인데 칼보다는 가위를 찾아대는 아이들 앞에, 느끼하다며 청국장과 제육볶음과 파김치를 찾는 식구들 덕분에 음식의 크리스마스 무드도 고이 접어 넣었다. 



그래 그럼 뭐 한식으로 밥을 잘 챙겨 먹고, 케이크에 불을 붙이며 와인으로 분위기를 내면 되지 생각했다. 그때는 진짜 크리스마스스러운 캐럴을 크게 틀어놓고 빨강 초록한 후끈후끈한 분위기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천생연분이 아닌 것은 틀림없는데, 신랑은 현실 주의에 확신의 T성향이라 와인보다는 맥주를 맥주보다는 소주를 선호한다. 당연히 안주로는 케이크보다는 치킨을 치킨보다는 해장국을 선호한다는 사실.  




올해 크리스마스에도 우리는 곱창전골을 끓이고 토닉워터를 넣은 하이볼을 만들어 먹을 예정이다. O팔 소곱창 곱창전골은 이미 주문 완료! 아이들에게 주는 선물 역시 낭만은 없다. 두근두근 선물포장지를 뜯으며 무엇일까 설렘과 기대를 누리는 대신, 선물 포장지 없이 있는 그대로 건네며 환경친화적인 사람이라고 포장해야지. 꼬부랑 말을 들으며 머리 아파하기보다는 힙한 영어가사가 들어간 최신곡을 즐기기보다는 구수한 옛 노래를 들으며 우리만의 색깔이 담긴 크리스마스를 즐길 테다. 크리스마스가 꼭 이래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 거추장스럽고 불편하고 격식을 차리기보다는 내 식대로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며 가족의 사랑을 전하는 시간을 만들어야지.




그런 내가 추천하는 나만의 크리스마스 캐럴은 강수지의 '혼자만의 겨울' 

https://youtu.be/kHhUaesafSg?si=cvdy9Rm-C2CthbY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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