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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Dec 12. 2023

미리 감사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크니까 아픈 거라고, 아프면서 크는 거라고 했다. 초등학생이 되면, 고학년이 되면 그렇게 아프지 않을 거라고들 했다. 작고 작은 가슴을 쌕쌕 거리며 40도의 고열 속에서 바이러스와 싸우던 작고 작았던 나의 첫아기는 그런대로 잘 견뎌내고 별 탈 없이 성장하여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다. 싱글침대에 누우면 발이 튀어나오지는 않지만, 제법 차는 모양새가 어린이와 성인의 몸 중에서 성인의 모양새에 더 가까워졌고, 어느덧 발 사이즈는 나의 것보다 커지기 일보직전이 되었다.



몸은 성인에 모양새에 더 가까워졌지만, 아이의 마음은 여전히 아이다. 그리고 내게는 여전히 작고 작은 아기 같은 존재다. 그런 아이가 아프다. 추석 이후에 끊이지 않던 기침이 A형 독감을 거쳐갔다. 이른 독감 치레에 이번 겨울이 시작하기도 전에 액땜을 제대로 하는구나라고 애써 나를 위로했다. 독감 한번 앓았으니 괜찮을 거라고 독감주사도 맞았으니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거라 홀로 합리화를 했다. 초등학생 그것도 고학년이 되었으니 그렇게 아프지는 않을 거라고. 다들 말하는 것처럼 그럴 거라고 믿었다. 믿고 싶었다.



그런데 또 아프다. 쏟아지는 콧물에 정신을 못 차리고 귀까지 막혀 음식을 삼킬 때마다 눈이 빨개진다. 커다란 눈은 하도 힘을 주어 핏줄이 터져가고, 붉은 금이 갈라지는 눈은 나와 마주칠 때마다 그렁그렁 촉촉해진다. 엄마 얼굴을 볼 때마다, 아프다고 힘들다고 그래서 펑펑 울어버리고 싶다고 어리광을 부린다. 여전히 작고 작은 아기의 엄마인 나는 여전히 모든 걸 감당하기에 서툴고 서툰 엄마라 어리광을 받아주지 못한다. 포근히 감싸 안아주면 되는데, 괜찮다고 나을 거라고 다정한 손길을 건네면 되는데, 언제 나을지 의사도 아닌 엄마가 어떻게 알겠냐며 얼른 자라는 매정한 소리만 해댔다. 아이가 듣고 싶은 말이 그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 



기어코 남은 숙제를 더 하고 자겠다며 책상 앞에서 코를 풀어대는 아이를 보니 답답한 마음이 밀려와 며칠공부 안 해도 죽지 않는다며 얼른 자라고 위로의 가면을 쓴 모진 말을 했다. 침대에 누워 바로 곯아떨어진 아이의 숨소리가 키보드 소리 사이사이 들려와 마음이 아릿하다. 애가 아프면 엄마가 힘들다고 하는데, 엄마도 힘들지만 사실 제일 힘든 건 당사자 아닐까. 조금 더 다정하게 돌봐줄 걸, 괜찮다고 내일이면 싹 나을 거라고 마음먹기에 달려있으니 푹 자고 일어나 내일은 이 모든 병균을 털어버리자고 희망찬 목소리로 말해줄걸. 한숨 쉬지 말고 별일 아닌 것처럼 웃어줄걸. 더 걱정하고 더 답답해하고 더 아파하는 나는 아직도 모자라고 부족한 엄마다.



간절한 마음으로 신에게 기도를 드린다.

푹 자고 일어나면 낫게 해 주세요.

2024년에는 찐 고고고학년이 되었으니 안 아프게 해 주세요.

미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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