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닮녀 Dec 11. 2023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도대체 어른은 언제 되는 거냐고 왜 이렇게도 세월은 더디게만 흘러가냐고 불평불만을 하던 어린 시절의 내게, 삶의 속도는 나이와 비례한다는 이야기를 누군가 해주었다. 3살은 3km/h로 달리는 격이고 30살에는 30km/h, 60살에는 60km/h로 인생을 달린다고. 그래서 어릴수록 삶은 더디게 흘러가는 것 같지만 조금씩 나이가 들수록 순식간에 사라지는 시간들을 붙잡고 싶어질 거라고. 그러니 너무 불평불만하지 말라고.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이냐고 나이 많은 사람들의 궤변 같은 소리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도 진짜 그럴까 하는 물음표가 머릿속을 가득 채우곤 했다. 이제 고작 삼십몇 킬로미터의 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지만, 누군가 해주었던 인생의 카더라 법칙은 결코 틀린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오른쪽으로 향한 세모 두 개가 그려진 FF버튼을 꾸욱 눌러 휘리릭 감고 싶었는데, 이제는 왼쪽을 향한 두 개의 세모가 그려진 REW버튼을 누르고 싶은 마음까지는 아니지만, 점점 빨라지는 인생의 속력을 그대로 감당하기 힘들어 막대 두 개가 그려진 버튼을 누르고 싶어질 때가 많다. 잠깐 졸음쉼터에 차를 세우고 기지개를 켜고는 지금 이대로 달려도 괜찮은지 나를 살피고, 다시 쉬어갈 곳은 어디에 있는지, 혹시나 갈아탈 수 있는 길은 어디인지를 둘러보고 싶어 진다.



태어나 자신의 나이의 속력에 맞게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 취직 그리고 결혼과 출산까지 쉼 없이 달려왔다. 그러던 중 2023년은 거의 처음으로 스스로 일시정지를 누른 시간이었다. 빨리 가야 한다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을 심어준 해였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아직 그러한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잠깐은 쉬어도 된다고, 그렇게 둘러보고 또 다른 길을 탐험해 보아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작은 마음의 쉼터를 마련해 준 해였다.



해내야 한다는 오로지 버텨내야 한다는 생각 속에서는 그렇게 찾아보기 어렵던 존재가 잠시 쉬어가기 시작하면서부터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대단하지 않은 내 곁에서 대단한 무언가를 얻어가는 감사한 사람들이 있었다. 수업을 하는 동안 작게나마 귀 기울였던 나의 정성을 알아봐 준 사람들, 어디 함부로 내세울 수 있는 글솜씨도 아닌데 내 글을 읽어주고 힘이 되었다고 말해주는 사람들, 그리고 함께 쓰고 싶다고 찾아와 주는 사람들. 내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그들은 많은 것을 찾아간다. 외롭고 힘든 사회 속에서도 자신에게 다정하게 내밀어 줄 수 있는 작은 용기를 찾아가고, 스스로를 보듬어주는 사랑을 채워간다. 내가 주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놓고는 나에게서 얻었다고 나에게서 받았다며 감사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 2023년 꽤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그들 덕분에 꽤 괜찮은 사람이 되었고, 꽤 멋지게 살고 싶었는데 그들 덕분에 꽤 멋지게 살았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이 상투적이고 진부하고 별 의미가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감사하지도 않은데 감사하다고 해야지 라는 한국사회의 감사 강요 교육을 받아온 우리니까. 하지만 정말 이 말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수업으로, 책으로, 글로 연을 맺었던 사람들, 그리고 내게 말 걸지 않았지만 멀리서 지금처럼 지켜봐 주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진심을 담은 인사를 건네고 싶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묵직하고 따수운 겨울이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